#1 프롤로그
오월의 마지막날이다
T의 오후 수업이 취소된 날인데 하필이면 회사도 점심쯤 끝이 난다
—
오늘은 꼭 짐을 빼라는 하늘의 뜻인가
—
집으로 돌아온 그는 샤워를 한 후 점심을 먹는다
그리곤 낮잠을 잔다
T의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요 며칠 그는 잠도 편히 자지 못했다
관리받지 못한 그의 왼쪽 눈이 이제는 심각하게 부었다
올해 초 살인적인 스케줄에서 부었던 오른쪽 눈의 경험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되돌아봐도 이렇게 부은 눈이 시야에서 어렴풋이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낮잠을 자고 난 뒤 그는 무언가에 쫓기듯 짐을 정리한다
며칠 전 짐을 정리하기로 결정했기에 우선 그의 짐들은 당분간 집 창고에 넣어두기로 했다
그러려면 창고에 짐부터 빼야 한다
거실에는 창고에 짐과 그의 옷들이 산더미를 이루었다
아무 상황도 모르는 고양이들은 가득 쌓인 짐들이 재미있는 장애물인 양 짐들 사이로 요리조리 신이 나서 달린다
마치 어릴 적 그를 보는 것 같아 T의 마음이 짠해진다
짐정리는 자정이 되어서야 얼추 끝이 났다
5년을 함께한 공간
5년을 함께한 가족
지난 크리스마스의 결혼 약속과 오늘의 헤어짐까지
T는 반나절만에 짐이 정리가 된 게 다행이면서도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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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히려 잘됐지 뭐
원하던 여행도 하고
밀렸던 글도 주구장창 쓸 거야
이거 내가 원했던 거잖아
소리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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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에선 기다린 만큼 더라는 노래가 T의 기분을 어루만져 주지만
눈치 없는 고양이들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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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고양이들 어떡하지
—
T의 가슴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