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기 싫은 여행(3)
여행 첫날,
그는 집 주차장에서 잔다
잠도 잘 잤다
아직 그가 살던 곳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못다 한 볼일들을 보며 분주하게 보낸다
그리고 점심쯤 T는 집에 들어갔다
J에게 집 열쇠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간 김에 샤워를 한다
낡은 샤워실에서 한 샤워와는 차원이 다른 개운함이 느껴진다
샤워 후 점심 식사를 한다
집에서 먹는 식사가 이렇게 안락한 것이었나 하고 그는 새삼 놀란다
식사 후 잠시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바로 기절해 눈을 떠보니 2시간이 흘러있다
어젯밤 분명 차에서 잘 잤는데 그게 잘 못잔거였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 꿀잠이었다
어제까지는 그의 집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신세를 진 집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소일거리들을 도와주고 가기로 한다
이 집에서 모아둔 병을 팔고 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썼던 3층 침대를 분해해서 버리는 일의 요청이었다
재활용 병이 대용량 검은 봉지 5개가 꽉 차 있는 걸 보니 작년 가을부터 모아두고 시간이 없어서 처리를 못해 지금까지 쌓아둔 것처럼 보인다
고양이들 침대를 분해하려고 보니 한 삼 년 전쯤 핸드메이드로 일일이 만든 침대처럼 보인다
병을 팔고 받은 환급비용으로 T는 장을 보았다
저녁을 해주려고 것이다
혹은 저녁까지 해결하고 가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T의 머릿속을 스친다
—
잠깐만,
너
혹시 가기 싫나?
—
T는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녁을 먹은 후 후다닥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