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촌 Aug 05. 2024

Love & Free

#3 가기 싫은 여행(2)

떠나기로 결심한 지 10일이 지났다

T는 아직도 못 떠나고 있다

내일은 기필코 떠나리라 그는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오늘이다


일부러 그는 오늘은 떠난다는 것을 주위에 알린다


마지막 정리를 하고

J에게 어떻게 정리했는지, 어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리곤 어색한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녀, 고양이, 그의 공간이었던 곳을 뒤로하고 정말 나왔다


오후 3시였다



T는 주차장으로 갔다

차에 쌓인 짐들을 뒤로 한채

운전석에 기대어 가만히 그는 생각에 잠긴다


 


그가 무엇을 생각한 지도 모른 채 훌쩍 한 시간이 흘렀다


일단 움직이자


우선 계획하지 않았던 계획을 한번 구체화해본다

정말 이렇게 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었나

아니면 계획을 세우기 싫었나부터 시작한 계획 세우기에 대한 생각으로 또 한 시간이 흘렀다


사실 T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으로 많은 로드트립을 했었다

그래서 막상 떠나려니 가보고 싶은 곳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쪽 끝의 노바스코샤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그곳을 가보고 싶다기보다는 T는 그냥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까지만 정하고 일단 짐 정리를 시작했다

아예 준비가 안 돼있어서 차는 엉망이었다

더불어 T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은 차에 오만 것들을 싣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리를 하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정리의 힘에 대한 글이 나온다

물건에 너무 의미 부여하지 말고 버릴 때는 과감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떠나는 마당에 챙겨 온 물건들을 필요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버리는 건, 특히 T에게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행동이라 여겨졌다



열심히 정리하니 2시간이 훌쩍 흘렀다

T는 목이 말라왔다


근처 마트로 가서 생수, 바나나, 토마토 그리고 세일하는 베이글을 산다

날씨가 좋아 밖에서 짐정리를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도 모르게 그는 이미 주차장으로 다시 왔다


마저 짐정리를 하던 중 T는 문득 생각했다


5월 31일 날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일주일 넘게 떠나지 못했다

더불어 아무런 계획 세우기도, 짐정리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J와

고양이들과

그의 공간에서 그는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로써

이제는 그 행복이 끝이 난다


그래서 불행이 시작한다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이제는 나의 시간이 생겼다


즉,

정말 소중한 것들과 바꾼 시간이자

나의 행복과 불행을 다시 만들 수 있는 시간이다


정말 잘 써야겠다



그래서인지 T는 갑자기 야외 러닝을 뛰기로 한다


너무나 영화 같은 날씨와 마지막이라는 상황이

러닝에 그를 집중하게 만들었고

끝나고 아파트짐에서 근력 운동까지 열정 있게 해 버린다


그래서인지 그는 땀이 난다


집으로 들어가서 샤워만 살짝 할까 생각했지만

아파트짐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에 거기로 간다


집에서 코 닿을 거리지만

한번 나온 집으로 다시 가서 샤워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그는 거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말 그대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5분이 넘게 따뜻한 물을 틀어놔도 마치 로키산맥의 빙하물 같은 물만 나온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샤워만 바로 하고 나올까 하는 유혹의 5분은

그가 오늘 생각한 것들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인 것만 같다



샤워를 마쳤다


다행히 샤워장에서 했다


T는 꾹 참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

그 자신을 오랜만에 칭찬한다

이전 02화 Love & Fre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