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Mar 09. 2020

내일은 조금 더 평등해지기를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이미지출처: 엠네스티

오늘은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글이 올라가는 시간은 3/9 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3/8이니 ‘오늘’시점으로 쓰여진 부분은 감안해주시기를 바란다.


#metoo

성차별 문제에서 여전히 큰 영역은 바로 성폭력과 성희롱, 즉 성을 이유로 한 폭력과 괴롭힘이다. 지지난해에는 전세계를 관통하는 미투의 흐름 속에서 내가 속한 단체도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성폭력 실태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약 500여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다섯명에 한 명꼴로 성희롱/성폭력의 직접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말도 안된다. 응답자 20%가 넘게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반도 넘지 않았기에.


정말 들춰낼 수 조차 없어 설문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 여러차례 자신의 경험이 처참히 짓밟힌 기억들로 인해 설문에 대해 비관하며 참여하지 않았을 이들, 아직은 용기를 내지 못한 이들, 그리고 사후조사가 그렇듯 이미 직장에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서 배제되었을 이들도 얼마쯤 있었을테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본인의 경험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임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경우였으리라. 연일 미디어를 사로잡는 미투의 고백들은 물리적 강간이 기본값인 것 같다. 마치 강간정도는 당해야 성폭력인듯이.

'직접 신체접촉은 없었으니까 성폭력은 아니겠지'

그럼 그 불쾌함과 모욕감은 뭐였을까?



내 인생은 성차별의 역사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내가 있던 조직을 되짚어 보는 게 내 성희롱/성폭력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과 같은일일만큼 난 어느 공간에서든 최소 한 번은 그러한 경험을 했다.


아주 어릴땐 딸인 죄로 할머니집에 가면 남자친척들의 시중을 들어야했고, 초등학교땐 귀에 인이 박히도록 여자가 조심해야 험한꼴(!) 안 당한다는 소릴 들어야했다. 뭘 더 조심했어야하나 싶지만. 중고등학교땐 가슴으로 불쑥불쑥 손이 날아와 가슴을 주무르고 브래지어 사이즈를 저들끼리 가늠해보기도 했고,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는 이유로 H라인 치마가 들춰지고 허벅지에 매질을 당했다. 대학에 들어와선 여자가 있어야 술맛이 난다, 선배들(10학번이 넘게 차이나는) 비위 잘 맞춰줘라, 너는 교수님 옆에 앉아라, 애교를 부리면 학점을 잘준다.. 별의별 소릴 다 들었다. 알바하던 마트에선 화장기가 없다고 주의를 받았고, 살아온 날들만큼 여자가, 여자니까... 따위의 소릴 들었을테다.


여성으로 살면서 순간순간 굴욕감을 경험해야했고 잘못도 없이 난처해야했다. 이 모든게 성희롱, 성폭력이다. 내가 경험한 성적 자기 결정권의 침해, 성적 수치심들이 모두 다. 여자가 타준 커피가 맛있다, 어리고 예쁘니까 보기 좋네, 여자가 있으니 분위기가 다르다.. 칭찬이겠거니 사람 좋게 넘기고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던 말들. 내가 모나고 유별나서 불쾌했던 게 아니다. 잘못된 언행이었기때문이다.



당신이 절대 지지 않길 바라요.

최근의 나는 속한 조직, 그리고 맡은 일로 인해 이런 문제를 훨씬 가깝게 접하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다섯시로 향해가는 시간. 업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담을 마무리하는 홀가분한 시간. 못다한 업무들을 마무리하는 개운한 시간에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마지막 내담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쏜살같이 말을 뱉어냈다.


- 제가 상담을 좀 받고 싶은데요! 아! 뭐부터 말해야되지?


- 천ㅊ(ㅓㄴ히 말씀하셔도 돼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 아 제가요! 혹시 녹음이나 기록이 되는건가요?? 전 신고는 말고 우선 상담만 하고싶은건데요, 저는 제가 어떻게하면 되는지 도움을 받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내담자는 성희롱피해자였고, 내담자의 경험은 듣는 내 몸이 다 떨릴 정도로 끔찍했다. 씩씩하게 뱉어내는 말은 끄트머리마다 조금씩 떨렸다. 그걸 숨기려는듯 자신의 말꼬리를 잡고 또 잡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높이면서, 그러면서도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상담이 길어졌고, 조금 마음이 느슨해진건지 내담자는 애써 숨겼던 두려움을 토해냈다.


- 회사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쩌죠? 소송으로 가야하나요?  


소송 전에도 방법은 있고, 고용노동부도 갈 수 있다, 그보다 너무 먼 걱정을 미리 하진 마셔라, 막연한 두려움만 생기더라, 당장은 눈앞의 것들을 보고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확신은 없지만,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 녹음해도 될까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끝까지 씩씩한 그녀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혼자 사무실에서 펑펑 울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겪어도 힘들 일이라고, 억지로 참지 말라고, 운다고 지는 건 아니라고, 울고 욕도하고 화도 내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말은 못했다. 다만, 이 사건은 명백히 성희롱이고 가해자의 중징계도 가능하다고, 혹시나 원하는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처리가 잘못된 걸거라고, 너무 주눅들지말고 그때가서 다시 한 번 전화주시라고, 생각보다 도움 받을 곳이 많다고, 혼자 외롭게 싸우는 상황은 없을 것이니 너무 걱정말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능력은 없고, 확신은 더더욱 없다. 커녕 현행 법체계에 대한 신뢰도 없다. 다만, 이런 사람이 지는 건 정말 잘못된 거니까, 그건 너무 별로니까, 그것만은 아니길 바랄뿐이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가해자는 그저 또라이일까? 

또라이가 한둘이면 개인의 문제일수 있지만 지천이라면 아니다. 미친놈의 미친짓이 아니라 미친 사회의 미친 단면인거다. 나의 사례들에서 가해자는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이들이었다. 남성이기도, 여성이기도 했지만, 그 공간안에서의 권력관계에선 나보다 높았다. 그렇기에 저항하지 못했다. 아니 저항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걸 알기에 그랬던거다. 남성-여성, 지위 고-하의 권력구조를 지탱해온 미친 사회가 성희롱 성폭력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조금 더 다르기를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오늘, 나는 사랑하는 두 여자조카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 두 여자어린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 나는 물론 나의 엄마 보단 좀 더 평등하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존중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며느리로, 딸로, 부인으로, 여성노동자로, 어린 여자사람으로 살아가는게 힘에 부친다. 나는 내가 여자라서 겪는 고통은 생리로 끝이면 좋겠다. 피할 수 없는 건 그거 하나뿐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그렇지 않고, 아주 빠른 시일내에 그렇게 될거라는 낙관도 그리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두 여자어린이가 자신들의 두 발 딛고 서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여성이란 이유로 용인되는 불합리한 요구들을 거부하고, '좋게좋게' 넘어갈 일을 '좋게' 넘기지 않는다. 왜이렇게 예민하게 구냐는 듯한 눈빛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꿋꿋하게, 끝까지 내 의사를 전달한다. 이게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금과 다르게, 지금보다 낫게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여성의 삶 뿐만 아니라 세상은 여성이 상당 부분 바꿔왔다. 

나는 여성이 만들어 온 역사에 감사하며, 여성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지지하고, 여성이 만들어갈 역사를 응원하고 함께하려 한다. 나의 작은 노력들도 새로운 역사에 먼지만한 기여가 되기를.


#우리는_연결될수록_강하다
#우리의_분노가_세상을_바꾼다

작가의 이전글 90년생만 그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