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Jan 20. 2023

2023년의 늦은 시작

호흡을 가다듬고, 흡흡흡흡파아아아

집중이 안 될 땐 머리카락을 만진다. 끝이 갈라진 머리카락을 찾아내서 끊어버린다. 피부에 올라온 여드름을 만지기도 하고, 괜히 여기저기를 긁기도 한다. 손톱을 물어뜯거나 튼 입술을 뜯기도 한다. 내 정신을 통제하는 게 힘드니 아마도 손에 잡히는 결핍들에 손을 대는 것 같다. 그런다고 집중력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간혹 매섭게 갈라진 머리카락을 떼어내면서는 약간의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난 집중력을 잃으면 티가 난다. 다른 이들 앞에서 머리카락을 만지고 손을 여기저기 몸에 대는 것은 분명한 신호로 느껴질 것이다. '나 지금 지루해!' 

집중력을 잃은 채로 머리에 뭔가를 쑤셔넣어야 하는 순간은 너무 곤욕이다. 장시간의 회의, 길어진 상대와의 대화.. 앉아있기도 힘들지만 최소한뛰쳐나가지 않게 잡아두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니, 이정도쯤 눈감아주기를. 안 그럼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야.

살면서 많은 순간 집중하기는 힘들다. 인생의 대부분은 산만한채로 보내고, 마감기한이 다가온 일을 처리하거나 냄비를 태워먹지 않기 위해 하루에 주어지는 집중력을 써버릴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집중력이 짧은데, 그 짧은 집중력을 온전히 내가 아닌 것들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이 조금 아까워서. 글을 쓰며 나의 일상, 내 삶에 집중해보고자. 그런데 이놈의 글쓰기는 정말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해서, 아무리 다짐을 해도 빈 페이지를 여는데 너무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틱톡이나 유튜브 숏츠를 보면 1분도 안되는 영상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1분 이상 잡아두는 것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 하다못해 2~3시간짜리 영화도 15분 요약본만 보는 사람, 10분짜리 영상도 답답해서 2배속으로 보는 사람도 얼마나 많아졌는지! 나조차도 긴 호흡의 영상이나 문장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기가 쉽지 않아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쓰겠다는 나의 포부가 짧은 집중력과 게으름에 밀려 실천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구차한 변명을 길게도 해봤다. 


구정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너무 순간의 즐거움에 매료되지 않기를, 잔잔한 기분으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n번째 새해 다짐. 올해는 과연!

작가의 이전글 엄마, 살아줘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