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멜로가 체질' 추천 후기
최근까지 주말만되면 SNS 담벼락엔 지인들의 멜로가체질 추천리뷰가 줄줄이 이어졌다.
집에 TV가 없어서 드라마를 챙겨보진 않는데, 하도 호평이 많아서 티빙으로 챙겨봤다.
드라마 이름이 멜로인데 부제가 본격수다블록버스터다.
멜로는 잔잔하고 애절하고, 입 보단 눈빛으로 사랑이 오가는 느낌일 것 같은데, 수다라니?
멜로와 수다, 이 생소한 조합이 일을 낸다.
수다 블록버스터답게 배우들의 대사가 아주 찰지고 논리적이다.
"그래, 꽃길은 사실 비포장도로야"
하며 꽃길만 걷자던 다짐이 무너진 여주가 자신을 합리화 하는 모습이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죽을 수도 있다."
고된 노동에서 자신을 채근하다가도 현실감을 놓지 않는 모습 등.
배우들의 깔끔한 대사처리와 전달력을 높이는 연기력도 일품이다.
드라마에 대한 전문가들의 소견이 듣고 싶어 찾아봤다.
(출처: http://m.entermedia.co.kr/news_view.html?idx=9986#cb )
"무엇보다 주인공 외의 인물들을 하찮이 소비하지 않아서 더 좋다." -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아쉬웠던 인물은 단 한 명이다. 하윤. 한주의 직장 후배인 추재훈과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연인사이다. 하윤이의 서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연인인 재훈의 서사를, 재훈의 직장 상사인 한주의 서사를 중심으로 하다보니 서브의 서브인 하윤이의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극에선 하윤이의 행동(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재훈과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거나, 헤어지기 싫어한다거나, 재훈의 회사에 쫓아와 사무실을 뒤집어 놓는다)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두루뭉실 뭉개고 넘어간다. 무슨 이유..? 그 이유를 어림잡아 이해하기에 하윤의 비중은 너무도 작고, 서사는 미지의 영역이다. 하윤이 그토록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연인과의 신뢰를 깨트리는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이유가 있는지 하윤이의 입장은 누구도 대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윤조차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 타 드라마에선 마치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저 심성이 나빠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처럼 퉁쳐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에선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지는 인물이 한 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다른 인물들을 세심히 잘 그려냈다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여성 서사를 만들기에는 감독이 아직 남성을 너무 사랑한다." - 이승한 칼럼니스트
세 여성이 격앙되어 논쟁을 벌일 때 이성적인 말로 상황을 잠재우는 효봉이나 인국이,
자신을 괴롭히는 여자친구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재훈,
소민의 억지를 노련하게 받아주는 민준,
여자는 원래 그렇다며 합리화하는 여주에 비해 합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남주 등
여성 캐릭터를 감정적으로 몰고가는데 비해 남성캐릭터가 이성적이고 균형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상황들이 꽤나 있다.
"원래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들이 조금 더 애쓰고 살수 밖에 없어요.
그게 막 엄청난 손해같지만 나쁜 사람들한테 세상을 넘겨줄수는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거야."
마지막화에서의 남주 발언처럼 남성캐릭터들을 너무 멋지게 그려낸 점이 드라마의 한계라면 한계다.
그런면에서 약간의 여성캐릭터들이 소비되는 경향도 있다. 끝으로 갈수록 그런 대사들이 많아져서 약간 불편하긴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드라마에 비하면 준수한 수준이라.. 무턱대고 비난하기도 난감하다.
"육아와 생계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 차별 현실이 아니라 사랑의 실패로 인한 상처로 묘사되는 한주의 이야기는 이 작품이 여성 문제를 얼마나 둔감하게 대하고 있는지 잘 드러낸다." - 김선영 칼럼니스트
한주는 10년 가까이 자신의 아들을 책임져왔다. 그러면서도 시부모에게 최소한의 책임(때되면 같이 밥을 먹는다;;)을 다한다. 심지어 기저귀도 못 뗀 자식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여전히 '인국아빠'라고 저장해두고 있다. 인국아빠가 세기의 로맨티스트 싱글남성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안, 한주는 지각, 조퇴, 아이를 이유로한 '근태불량'을 하지 않으려 수 배의 노력을 한다. 그나마 함께 사는 친구들이 있어 육아를 분담할 수 있는 한주는 행운아다. 육아독박과 가계독박을 오롯이 견뎌내는 싱글맘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는 함께 가졌는데 왜 여자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걸까. 작가의 고민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듯하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면서도 너의 행복을 왜 나한테서 찾냐고, 함께 꾸린 가족에 대한 책임을 쉽게 외면한 승효. 너무도 당연스레 아이를 떠맡은 한주. "그때 그 자식을 죽였어야 했는데"하는 은정의 말은 웃플뿐이다. '남자 잘못 만난' 한주의 문제가 아닌데, 그저 승효 하나 나쁜놈 만드는 서사. 너무 뻔한 서사라 반박하기도 뻘쭘하다. 만약 은정마저 자신의 행복을 찾아 승효와 똑같이 아이를 버리고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애 아빠와 엄마 중 누가 더 욕을 먹었을까? 작가이자 감독은 그것까지 생각했을까?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 화를 다 보고 남편과 의견이 갈렸다.
나: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하다니, 뭔가 결론이 난 것 같진 않은데 왠지 속이 후련해!
남편: 왠지는 모르겠지만 결말이 별로야.
드라마 마지막화에선 지금까지의 서사들이 여주가 쓰던 드라마 속 서사와 교차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후 서사들의 전개를 예상하고 논의하면서 각 캐릭터를 정리해주기도 한다.
나는 시종일관 서사보다는 캐릭터를 그리는 데 집중했던 전개양상이 그대로 이어져서,
대단한 결말을 보여주기 보단 끝까지 시청자에게 캐릭터를 설득시키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식으로 빨래 개어 넣듯이 정리하는 게 집중도를 떨어뜨린다고 느꼈나보다.
아무렴, 드라마에 대한 만족도에 큰 영향은 없었다.
모두가 조금씩 찌질하고 어설프다. 서른이 되었건만 한밤중에 라면에 지는 나약함은 그대로다. 어른과 서른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삶의 1/3 분기정도를 지나는 서른, 딱 서른에 이 드라마를 본 나에겐 조금 위로를 준다.
'너의 서른만 그런 게 아니야. 모두가 이렇게 어설프게 서른을 보내고 있다고!'
약간의 비판의식을 겸한다면 더 좋을 드라마.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