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이란 이름의 폭력 1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11, "며느리도 있는데 네가 왜 하니?" 글에 댓글이 달렸다. 보통은 공감이 간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구나 등등의 동질의 언어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그 전에도 댓글 하나가 '그렇게 싫으면 시댁에 가지말지, 소설 쓰고 있네'의 내용인 적이 있었다. 부정. 그래, 얼마나 소설 같으면. 82년생 김지영 소설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이들의 괴리감의 표현이라 생각하면 화가 나다가도 만다. 이게 현실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네. ㅎ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이런 가부장적 질서의 유지를 여성의 탓으로 돌린다.
"여성이 <평생가장선언>하면 모든 가부장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됍니다 근데 안그러죠 가부장문화싫다면서 가장역할은 남자가해주는 가부장사랑찾죠. <이은영 아나운서>정도면 가장능력충분한데도 자산가찾아가지 평등 원하면서 가부장사랑은 포기못하는 여자들"
평생 가장으로 살아온 우리 엄마를 비롯해서 수많은 여성들의 노고를 단숨에 깎아내리는 발언이다. 여성이 세상의 절반을 이뤄왔음을 부인하면서, 심지어 가장 능력이 충분한 아나운서가 자산가와 결혼을 하는 것을 가부장에의 순종이라 폄하한다.
나는야 인류애 넘치는 인간. 이런 인간을 개종하여 보겠다고 친절히도 답변을 남겼다.
"IMF 이후 많은 여자들이 가장 노릇 하고 있습니다^^ 저나 남편은 맞벌이를 합니다. 가장의 역할이 뭔가요? 평생 사업한답시고 말아먹은 우리 아빠를 비롯한 많은 가장들을 봤을 땐 가오만 잡고 차려주는 밥 먹으면서 큰소리 치는 게 가장노릇 같던데요. 노점이며 보험팔이며 별거 다해서 집안 건사하고 가사에 육아까지 도맡은 엄마가 가장이라면 더 가장이죠. 제발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괜히 돈 많은 남자 만나는 여자들한테 피해의식 느끼지 마시고요."
물론, 그리 친절하진 못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계속해서 그놈의 가장 타령이다.
“이래서 새참문화의 부활이필요한거임 밖에서 아버지일하시는걸 안본 산업화시대 자녀들은 사업이 얼마나 심장졸이고 스트레스받는지 모르고 가장의 책무를 모른다”
이 인간의 논리회로에 새참이 여성의 노동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선택적 취사. 정말이지 상황판단이란 것이 되지 않는 부류가 있는가보다.
나는 사실 가부장의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는 상층부의 권력자들에게도 피로감을 준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더 강한 권력을 쥐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약해보이지 않기 위해 등등. 성차별의 기울어진 잣대는 “남자가 이정도도 못해?”라며 남성에게도 향하지않던가. 남자는 울지도, 무거운 걸 못 들지도, 누구에게 아픈 소릴 하지도 못하는 단단하고 냉정한 인간이어야만 한다. 그것보다 훨씬 많은 잣대들이 여성을 향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피해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가부장도 여성에게 비합리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남성에겐 불합리한 권력을 주지만, 그 권력의 이면에 책임이란 것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가계를 책임져야하는 불평등한 상황에 놓인 남성들도 억울할지 모르겠다. 내가 시댁 이야기를 글로 공유하는 이유는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을 확산하자는 것이다. 불편하다, 싫다는 목소리가 커져야 개선이든 대체든 일어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부러 글을 남기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힘든지 겨뤄보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런 글조차 ‘남자들도 힘들거든?’으로 응수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남성을 한두 명을 본 것도 아니고, 나만 겪은 것도 아니다. 저명한 페미니즘 도서에도 이런 사례는 무수히 등장한다.
모두가 힘들다. 잘못된 제도와 시선에 갇힌 이들은 모두가 힘들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 나는 저렇게 힘들어, 서로의 고충을 토로해야한다. 남의 고충에 추를 달아 자신의 고충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고충들을 모두 해결할 방법은 너무도 선명하고, 그걸 위해 함께 노력해야한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론 어떤 불평등도 해소되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노력으로 당분간 ‘가부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해서 써 볼 생각이다. 나에게 가부장은 아빠와 동의어다. 아빠는 가부장적 질서를 체화하고 우리와 엄마에게 강요했다. 그가 한 행동들, 대부분 나빴던 그 행동들을 돌이켜볼까한다. 이런 인간도 있다. 아빠라 부르고 싶지 않고,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그 질긴 인연을 끊고자 부던히 애쓰며 살았다. 나의 이런 경험들을, 고통을 글로 쓸 생각이다. 그리고 당신도, 본인의 경험을 써보시라. 새참이니 산업화시대니 하는 옛날 이야기 말고, 본인이 겪은 고충들을, 그리고 묘연하나마 이상을 얘기하시라. 비록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지만 종래엔 가부장제 철폐로 수렴될 그 이야기를.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가벼운 말들 말고, 모두의 행복을 위한 옳은 말들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