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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Nov 08. 2019

'나는 강요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요한 사람은 없는데 왜 강요 받은 사람만 있는 걸까?

"내가 언제 강요했니?"

"난 강요한 적 없어."

"강요하는 건 아니야."


뭐가 강요일까.

"아니, 그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니?"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강요하는 건 아니고."

"사람이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좀 긍정적일 필요가 있어."


 라고 말해놓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위성을 부여해놓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본값을 정해놓고, 그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수차례 권유하면서도 강요는 아니라고 한다. 아닐까.


이미지출처: 한겨레

나는 노동법 언저리에서 일을 하는데,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부지기수다.

"그럴거면 나가지." 라고 말해놓고 해고는 아니라고 하고, "너 내 눈에 한 번만 더 띄면 죽는다."라며 협박까지 해놓고도 자진 퇴사를 강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불리한 근로계약서를 들이밀면서 사인 안하면 재계약을 안해준다든지, 성과급을 안 준다고 했는데도 사인을 강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 회식인데, 못 오는 사람 없지?"라고 말해놓고,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회식에 참여했다고 얘기한다. 행여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하면 "회식 같은데 빠지면 사회생활하기 힘들다"는 훈수를 두면서도, 회식 참여를 강요한 적은 없다고 한다.

도저히 오늘 안에 할 수 없는 일들을 퇴근시간 무렵 주면서 "꼭 야근을 할 필요는 없고, 내일 오전까지만 줘"라고 한다. 야근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그 일은 내일 오전이 되면 일 요정이 나타나서 해주나?

"휴식시간엔 자유롭게 쉬어. 그래도 손님 오면 잠깐씩 내다볼 수는 있지?"라고 말을 하고는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손님때문에 쉬지 못해도 보상도 안해주거니와 쉬는 시간에 일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을 한다.


학교 다닐때도 그런 애들이 있었다. 뒤에서 신랄하게 담임욕을 해놓고 스승의 날이라고 선물 사야하니까 돈을 모으자고 한다. 내켜하지 않으면 "그거 얼마된다고, 그게 그렇게 아까워?" 말을 하곤, 돈을 내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른의 말과 아이들의 말 어디에도 '난 너에게 이런 걸 강요해'라는 표현은 없다. 내 생에 '강요한다'는 표현을 직접 쓰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강요받은 사람들은 많고, 강제된 일들도 많다. '더러워서',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하는 이들은 이렇게 많은데, 그럼 그들은 대체 뭐가 드러워서, 왜 억지로 참아가며 일을 하는걸까?


강요의 형태는 다양하다. 눈짓으로, 말투로, 다른 위협으로, 혹은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압박으로.. 사람들은 강요라는 게 나쁜 말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강요라는 워딩만 피해서 에둘러 강요한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강제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이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잘 따르는 것을 대단한 리더십인양 생각한다.


강요는 분명한 워딩이 없어도 이루어진다. 강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무언가를 강요받은 사람이 존재했다는 반증이다. 정말 강요가 아니었을까. 한 번쯤 돌이켜보길 바란다. 난 그 사람에게 내 의도대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지 않았나, 그 사람이 정말 내 요구와 다른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나. 그 사람이 내 요구를 거부하는데 심적인 부담이 크지 않았을지, 노력이나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을지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이어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을때 '아니'라는 답이 내려진다면 나는 아직 자가치유가능한 수준이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 사람이 강요받았다는 걸 공감하지 못한다면, 자가치유는 어려운 수준일지 모르겠다. 제3자의 입을 통해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은 누구의 기준으로도 돌아가지 않고, 대단한 선인들의 말씀도 한낱 자기주장일뿐이다. 훌륭한 식견과 혜안들은 분명 존경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정답으로 여기고 살 순 없다. 그러니, 제발 강요하지 말자. 강요라는 말이 없어도 그건 강요다. 한번정도 '이런 방법도 있어~'의 말은 따뜻한 충고나 조언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이 있는 걸 알아도 안 하겠다는 사람에게 수차례 말한다면, 아무리 좋게 말한다해도, 그건 강요다.


나는 당신에게 강요한다, 당신의 강요를 한 번 돌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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