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이란 이름의 폭력8
초등학교 5학년때였던 것 같다. 2차 성징이 시작되던, 어색하고 혼란스럽던 때였다. 나의 성징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던 나는, 나의 변화를 숨기려 애썼다. 혼자 샤워를 할 때조차 누가 몰래 숨어서 내 몸을 들여다보고 내 변화들을 누설할까 두려워했던 때였다. 들여다보는 이가 잘못했다는 생각보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변하는 내 몸이 잘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였다.
정확한 날짜나 연도가 기억나는 것은 아닌데, 그날의 풍경은 여전히 선명하다. 집안의 조도, 색채, 그 느낌까지. 나는 연두색 추레한 반바지를 입고있었다. 티셔츠도 후줄근한 잠옷겸 생활복의 반팔티였다. 여름이었고, 대낮이었다. 아빠는 런닝셔츠를 입고있었다.
그날은 동갑인 사촌이 놀러와서 안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안방에 모여 게임을 즐기는데 아빠가 부른다. 게임을 하다말고 가기가 싫기도 한데, 왠지 느낌이 서늘하다.
“나 지금 게임중이야”
“빨리 안 와!!”
윽박을 지른다. 마지못해 갔다.
거실과 붙어있다고 말했던, 문을 떼어내서 거실 겸 방인 그 곳에 아빠가 모로 누워있다. 자신의 품을 열며 이리로 들어오라고 한다. 싸한 느낌이 한층 불안해진다.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방으로 돌아가야한다는 핑계로 머뭇거리니 또 한 번 윽박을 지른다. 아비의 품에 안겼다. 모로 누운 가슴에 딸을 안은 아빠는 그 딸아이의 가슴을 크게 주무른다. 싸하던 기분은 불쾌함과 불편함, 섬뜩함, 혼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던져진 아빠의 한 마디.
“별(동갑인 조카, 가명)은 가슴이 많이 커졌던데 우리 아무는 작네?”
상황이 이해가지 않은채로 안절부절하면서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은 간절해졌다.
“게임하다와서 애들한테 가봐야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 그렇지만 속으론 허둥대며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혼란스럽다. 이게 무슨 일인지, 잘못된 행동인지 아닌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했지만 아빠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하면 안된다고 평생을 들어왔던 나였다. 내가 아빠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괜한 분란을 만들지 않을까, 불효 아닌가, 그러다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났다. 넷째 동생이 내가 겪었던 때와 비슷한 나이쯤 됐던 때였다. 나와 언니, 셋째가 있는 자리에서 넷째 동생이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아빠가 내 가슴 만졌어”
내 가슴은 쿵 떨어졌다. 나한테도 그랬다고 말하려는데 언니가 급하게 말을 한다.
“내 친구들 중엔 아빠가 브래지어 사준 애도 있고 생리한다고 축하해준 아빠도 있어.”
언니는 브래지어를 사주는거나 생리를 축하하는 것 같은 별거 아닌데다, 심지어 자상하기까지한 아버지의 행동 중 하나로 그 성추행 사건을 축소했다. 그 말을 꺼낸 동생은 무고한 아빠를 의심한 것 같은 죄책감에 입을 닫았고, 동생의 호소에 내 경험을 얹으려던 나는 민망함에 입을 닫았다.
그런 일들과 비슷한거구나, 아빠는 그럴 수 있는거구나. 그 뒤로도 한참을 더 그렇게 생각하며 아빠의 행동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문제같은데, 언니가 아니라고 하니까 내가 이상한거라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선명하게 깨닫는다. 그때의 아빠의 행동은 여지없이 가정 내 성폭력이고 나는 무력한 피해자였다. 그리고 나의 침묵은 넷째동생마저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저 몰랐다고, 나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동생에게 드는 미안함이 나의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보다도 크다. 엄마에게도. 내가 그때 문제제기를 했더라면, 엄마에게라도 말했더라면, 동생에겐 안 그랬을텐데. 엄마가 진작 이혼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당시의 내가, 부모와 인연이 어긋나는 걸 상상조차 못하는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여전히 난 무력한, 부모의 부양이 필요한 미성년자에 불과했다.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말할 자신도 없었고, 그 말을 엄마가 곧이곧대로 믿어줄거란 기대도 하기 어려웠다. 엄마에게 아빠는 하늘과 같아 보였고, 지금도 엄마는 아빠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돌이킬 수도, 돌이켜도 어쩌지 못할 일에 얽매어 살아간다. 성인이 되어 첫 애인이 생기고 그가 내 가슴을 만지려했을때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애인 사이에 가슴을 만지는 일이 흔하다는 건 미디어든 주변인이든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나의 몸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가 싫었던 것도, 무서웠던것도 아니다. 어린 날의 그 기억이 섬광처럼 스치고, 트라우마처럼 다시 한 번 데었다.
내 아빠란 인간이 또라이라서 이런 일이 생긴걸까? 그 인간은 남의 눈을 무엇보다 신경쓰고, 고고한척 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그가 인자하고 호탕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성희롱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고, 엄마는 아빠 흉을 안 보고 다녔기에 집안의 가난이 아빠의 원인이라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크게 문제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아빠이자 남편일뿐이다. 나는 그가 남들보다 성욕이 많아서, 실수로 그런 짓을 했다고 절대 생각치 않는다. 그가 딸들마저 성적대상화로 삼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딸을 소유물로 여기던 가부장제의 표출이라 생각한다. 그가 우릴 동등한 인간으로 여겼다면, 우리집이 위계 없이 평등했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일그러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키는 것으로 나의 가부장에 대한 소회를 마치려한다. 남자가 힘들게 돈벌어 먹여살리는 데 좀 떠받들면 어떻냐는 가벼운 말들을 이젠 좀 안하려나. 가부장주의의 잘못된 문화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해치는지 이젠 좀 알려나. 문제적인 제도, 문화, 사고는 하나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절대 끝나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또다른 문제를 양산한다. 물론 점점 더 크고 질 나쁜 문제들을.
그러니 우리 가부장따위 때려치우자. 그게 언제적 사고인가. 더 이상의 문제들을 양산해서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멈춰야한다고 생각이 들 때 최선을 다해 멈춰야한다. 이미 늦었지만, 늦은 때 중에 가장 빠른 때에 멈춰내자. 한 두 사람의 비명이나 하소연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알지 않나. 남녀를 떠나 함께 외치자. 가장 크고 정확한 목소리로.
‘가부장제는 틀렸다. 가부장주의 사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