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옹호론을 옹호하기 위해서
타다에 대해 내 이해와 고민이 깊지 않은 것 같아 너무너무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드는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한 겨울.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한 남편이 30분 넘게 택시를 잡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심야 요금으로 15000원 정도가 나오는 거리였는데, 우리집이 외곽에 있어서인지 카카오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모범도 잡아보고 티 택시도 잡아보고, 스마트 어쩌고도 잡아봤다. 안 잡힌다. 부랴부랴 타다를 잡아타고 겨우 집으로 왔다.
언제한번 택시를 타고 집에 온 남편이 정말 죽을뻔했다고, 기사가 시속 180은 밟은 것 같다고(140정도 밟았겠지.. )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왔다며 간담을 쓸어내렸다.
어느날인가 혼자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고 목적지에 내렸다. 2만원 정도가 나왔다. 카드를 드렸다. 카드밖에 없어요? 아이.. 쌍욕 직전에서 말을 멈췄지만 불쾌한 기분이 한껏 전해진다. 죄송하다고 연신 말씀드리고 결제를 하고 내렸다.
내 돈 내고 내가 이용하는데, 특별히 그 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가끔 이렇듯 죄인 된 기분이 든다. 택시를 타는 건 돈도 돈이지만 여러모로 편치 않은 일이다, 여전히.
타다는 혁신일까. 내가 타다를 혁신이라고 생각했던건 이들은 승차거부를 하거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면서 무리하게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시간단위로 돈을 받기 때문에 먼거리든 단거리든 승차를 거부할 이유가 없고, 속도를 내서 급히 운전을 할 필요도 없다. 이건 기존에 '일한만큼 버는 것'의 환상으로 택시기사를 자기착취하게 만드는 구조, 기형적인 사납금 제도를 비튼 발상이었다. 우리 대법원은 택시기사들이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것조차 쟁의행위로 봤다. 그렇게하지않으면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법원도 알았고, 기사들은 더 잘알았고, 사업장은 더더 잘알았다. 그런 택시산업의 구조는 분명히 잘못됐다. 이걸 뒤흔든 발상은 기존 택시산업의 노동경시 풍토를 바꿔줄거라 생각했다.
물론 타다의 시간단위 근로형태, 플랫폼 노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난 이문제의 해결이 타다기사들의 노동권 쟁취로 이어지는 게 맞지 싶은 것이다. 그들이 온전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향유할수 있다면, 타다의 영업방식은 기존에 권리는 누리되 책임은 회피했던 택시회사들에게 경종을 울릴 거라 생각해서다. 타다가 혁신이다 아니다의 논쟁은 소모적이고 선동적이다. 타다가 혁신이라고해서 법체계를 뒤흔드는 악질적인 근로형태까지 옹호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타다가 혁신이 아니라고해서 승차거부나 속도위반처럼 노동자도 소비자도 불안한 지금의 택시관행이 정당화 되는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택시도, 타다도 문제는 있다. 타다의 영업방식은 개선이 필요한 대안이라는 생각은 계속 하게된다.
물론 타다의 덩치가 커져서 대기업화 되면 기존의 택시시장도 해칠 수 있을 것이다. 카카오가 끼어들었을때 한 택시기사는 분신까지 했고, 택시회사들은 집회동원령까지 내려 여의도를 채웠었다. 그렇다고 타다논쟁이 던지는 시사점을 깡그리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칼날은 날카롭고 그건 약한 곳을 정확히도 짚어냈다. 그리고 도태시켰다. 그 누구도 그 잔인한 과정의 희생양이 되길 원치는 않는다. 그렇다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는 기존 택시관행을 무조건 감싸고 돌 수도 없다. 구시대적 영업방식에 매몰되어 한 걸음도 나오지 않는 그들이 마냥 지켜야할 무엇이라 하기도 멋쩍다. 그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게하는 어딘가에 정말 필요한 혁신이 존재할 것이다. 타다의 혁신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론은 “타다”가 혁신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혁신이냐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