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늙지 말아야지2
상담을 하며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오늘따라 유독 떠먹여줘도 안 씹어줬다고 성내는 분 덕에 매우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는데, 결국 상담 막판에 터져버린 것이다.
날 예민하게 만든 상담은 대략 이렇다. 피해당사자가 연락을 주셨다. 축 처진 목소리에서부터 정서적, 정신적 고충이 느껴졌다. 최대한 경청해서 듣고, 심리적인 지지까지 보내드렸다. 할 수 있는 답을 다 드렸는데, "어떻게해도 저는 힘든거네요" 하신다. 가만히 누군가가 내 권리를 지켜줄거라 기대할 수 있겠느냐, 입법적 혹은 제도적 한계일테고, 그런 부분에 대해선 죄송한 마음이지만 현행법으론 선생님이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혹시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시면 인근의 노동권익센터 등에 문의해보시길 권한다고도 말씀드렸다. 대뜸 노동권익센터가 자신 주변에 어디 있느냐, 뭐가 있느냐, 나는 모르니까 전화한거 아니냐, 선생님도 모르시니까 저한테 그 기관을 못 알려주는 것 아니냐고 한다. 와, 인터넷에 찾으면 바로 나오는 걸 내가 대신 찾아주기까지 해야되나. 회의감이 들었지만, 정보접근성이 낮은 내담자의 상황을 고려해서 직접 검색을 해드렸다.
-000이라는 기관이 있네요. 이 곳에 연락을 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전화번호는요?
여긴 114가 아니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씀드린다. 기관 이름까지 찾아드렸으면 전화번호는 본인이 찾아서 전화하셔야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내담자에 전속해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대리인도 아니고, 하수인도 물론 아니다. 나는 내담자가 본인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법적 자문을 드리는 역할을 한다. 나를 비서부리듯 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선생님, 제가 기관 이름까지 알려드렸는데, 전화번호 정도는 직접 찾으실 수 있지 않나요? 인터넷에 찾으면 바로 나올 것 같은데요.
전화가 뚝 끊긴다. 이런 무례한 경우가.. 30분동안 이어진 나의 친절과 지원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에게 필요한 Z를 얻지 못했다고 그런식으로 분풀이를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오늘따라 유독 상담전화가 많았다. 6-7번째 전화였던 것 같다. 한 중년 남성의 전화다. 제가 물어볼 것이 두가지가 있는데요, 로 운을 띄우는 회사 담당자였다. 이렇게 자신이 물어볼 것을 정리해서 전화주는 경우는 드물고, 회사 담당자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이곳까지 전화를 줬다고하니 마음이 한껏 누그러져서 상냥히 대응해드렸다.
-이건 이렇게, 이건 저렇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잠시 적겠습니다. 이..건...이렇..게...
내 상담을 흘려듣지 않고 받아 적으시는 것까지도 고마웠다. 그리고 문제는 다음 질문에서 시작됐다. 자신 회사의 자체 조사결과와 상급기관의 조사결과가 배치된다.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건 그 기관의 절차상의 문제지 법적으로 해결할 도리는 없었다. 법적인 기준이 있다한들 노동법의 영역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게 설명을 드리니 자신의 자체조사는 근로기준법을 충실히 따른 것이므로 자신의 결과에 위배된 상급기관 결과를 따라선 안되는 것 아니냔다. 노동법엔 명확한 조사절차가 나와있지도 않고, 법의 취지는 정상적인 근로환경을 회복하고 향후 피해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에 있다, 그 취지에 맞게 판단하시면 되지 자체조사결과를 절대적으로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고 안내했다. 혹시나 기존 관행상 상급기관의 결정이 권고수준으로 적용되었나싶어 물었다.
-기존에 유사한 상황에서는 상급기관의 결정을 따랐나요?
-당연히 따랐죠.
-그럼 이 사건에선 왜 따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선생님,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세요?
당황스러웠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전 선생님 회사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기존에 처리하셨던 절차를 여쭌거고, 이 사안에서만 그 절차대로 하시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거에요. 기존 관행이나 절차에 따르는 것이 법 취지거든요. 기존에 그런 절차가 있었으니 상급기관의 결정을 따를 수 없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면 결과서에 이러이러해서 자체적인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고 적으시면 될 것 같아요.
-결국 기관에서 알아서 판단하라는 거군요?
아니.. 내 말 어디에 임의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이 있던가.. 기존 절차나 관행이 존재하는 데 그걸 어길 지 말지가 임의판단의 영역일 수 있나? 합리적인 근거가 없으면 룰을 지키는 게 원칙 아닌가. 심지어 지자체 유관기관이었다. 나라에서 정해놓은 절차를 무시하겠다는 결정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할 수 있나.
-알아서 판단하시라는 내용이 전혀 아니고요, 기존의 절차를 따르는 게 원칙인데 그걸 따르지 않으시려면 근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후 내담자의 설교가 시작됐다. 내 말 좀 들어봐라(20분 넘게 듣고 있었다), 왜 날 가르치려 드느냐, 안내와 가르치는 건 구분해야하지 않냐, 내가 안내 받고 싶어서 전화했지 가르쳐달라고 전화한것이 아니다, 당신도 배울만큼 배웠겠지만 어쩌고 저쩌고.. 이 무례한 맨스플레인에 기분이 점점 상해간다. 몰라서 전화주시는 분들이 많고, 선생님처럼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모르는 분들께 알려드리는 게 내 역할이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을 바로잡아드리는 것이 저의 역할이다. 이걸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해도 어쩔 수 없고, 이건 명확한 내 업무 범위 내의 언행이다. 열심히 설명했다. 자기 말을 끊지 말라며 내 말을 끊는다. 확 화가 치민다.
-선생님도 제 말 끊으시잖아요, 선생님 말씀이 안 끝나는데 제가 말을 어떻게 안 끊고 제 얘기를 하겠습니까.
대뜸 내담자에 대해 예의를 갖추라는 둥 얘기를 한다. 전 상담자만이 예의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담자도 똑같이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의는 상호간에 지켜야 예의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까지 예의를 갖출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심지어 무료로 상담을 해주고 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하나 회의감이 몰려든다. 돌연 그 남자는 날 기분나쁘게 할 생각이 없었다면서 이해를 바란다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30분이 넘어가는 통화에 너무 지치기도 했고, 이런 통화로 인해 다른 전화를 못 받는 것도, 이 사람의 자기변명을 들어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네, 괜찮습니다.
최대한 누그러진 투로 얘기했고, 이 사람의 변명따위 안들어도 정말 난 괜찮았다. 이런 무례한 인간이 이 인간 하나도 아니다. 그때마다 매번 내담자에게 변명의 시간을 준다면 내 감정은 정말 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냥 더이상 아무말도 듣지 않는 것이 나의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의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또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자신이 이렇게 잘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나무란다. 자신이 나에게 강요한 것도 없지 않느냐고 한다. 이 뻔한 레파토리. 내가 뭘 그랬는데...? 자신의 할 말을 다 들어주기를, 자신이 원하는 화기애매한 결말을 내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전의 글에서처럼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강요였고, 난 그 사람의 의사대로 할 마음이 없었다. 왜 당신은 내가 원하는대로 그 지긋지긋한 일장연설을 끝내려고는 하지 않고, 자신이 할말을 나에게 다 주입해야만 성이 풀리는건데? 전형적인 꼰대질이 아닌가. 대체 이 사람은 뭘 원하는것인가. 알겠다고, 내 상급기관(원래 상급기관은 없다. 본인이 상급기관이라 생각하는 곳인듯.)에 연락해보겠다며 내 직장을 묻는다. 친절히 알려주고 끊었다.
성희롱을 당한 것과 같은 성적 굴욕감이 느껴진다. 내가 여자가 아니었어도, 내가 나이가 많았어도 이렇게 행동했을까? 결국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대로, 원하는대로 하고싶은데 내가 그게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 아닌가? 어린 여자 사람의 조언이 고까웠던 것 아닌가? 내가 중년의 남성이었어도 그런식으로,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고, 같은 질문을 다섯번씩 해가면서 무례하게 행동했을까. 모욕감이 스민다. 살아도 더 산 당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가진 전문성을 함부로 후려친 것 아닌가.
사실 전문성이라는 건 너무 우습다. 남편은 자신의 일에선 전문가지만, 내 분야엔 문외한이다. 나 역시 내 분야에선 전문가라 인정받지만 남편의 일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덜 산 나보다 아는게 많겠지만, 언제나 그렇진 않을 것이다. 정말 돌고 도는 게 인생이고, 누구나 전문가인 분야가 있겠지만 많은(대부분의) 분야에선 문외한이 되는 게 인생이다. 언제나 잘난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잘났으면 도움을 구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애초에 도움을 구하지 말고 본인이 서적이든 인터넷자료든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었어야지. 당신은 당신의 나이와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닌가. 나는 선뜻 내가 좀 더 알고 있었을 지식을 나누고자했다. 당신의 전문성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의 시간과 지식을 할애했다. 그런 나의 선의에 당신은 나이라는 무기를 갖다댔다.
상황도 맥락도 없이 나이 하나로 상대에게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이를 헛 먹은 것이거나, 전형적인 꼰대일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언제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건 살면서 당신이 배웠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는 것은 연륜이 주는 가장 큰 지혜일 것이다. 당신에겐 좋은 어른이 될 수 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그걸 놓치며 살아온 것은 당신의 선택이었다. 어린 아이들에 비해 당신의 언행이 더 많은 책임을 갖는 이유다. 꼰대는 결코 무고하지 않다. 나이들수록 겸손해져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점점 더 알기 어려워진다는 반증이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기 쉬워진다는 반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