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누구에게 허락되는 것일까
어쩌다 서초역3번출구, 이름도 유명한 사랑의 교회 앞을 지나게 됐다. 무단으로 국가의 땅을 점유했다는 그 교회 앞에서, 갑자기 포이동재건마을이 떠오른다.
사랑의 교회의 높이 솟은 시계탑처럼 단층짜리 판자 주택이 전부인 포이동재건마을에도 2층짜리 건물이 솟아 올라있었다. 그곳은 망루였다. 구청 철거 용역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주민들은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밤낮 돌아가며 입구와 망루에서 마을을 지켰다. 그럼에도 마을 청년보다 많은 수의 용역은 포이동 재건마을을 찾아오고 철거 위협을 하고, 강제 철거를 했다. 마을 공동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일은 속전속결이었다. 구청장, 어쩌면 그 이상의 권력이 단칼에 그들의 삶을 베어내며 공무집행이라 했다.
포이동 주민들은 88년 강제 이주를 당해 불모지였던 땅을 힘겹게 가꾸고 터를 잡아 살아왔다. 부랑자를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국가의 지시에 따라 풀도 나지 않는 돌무더기 땅에 내버려졌던 이들이다. 관광객들 눈에 띄어선 안 됐기에 낮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밤에서야 재활용품들을 줍고 수퍼를 가곤 했다. 어렵게 돌을 고르고 땅을 다듬어 집을 짓고,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은 삶이지만 나름으로 살아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가의 땅이니 나가라고 한다. 그 사이 서초구, 강남의 땅값이 치솟았다. 더이상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는 노른자위 땅이 된 것이다. 불모지였을 때나 그들을 가두느라 내어준것이지 이젠 아니다. 88년도에 버려졌던 그들은 국가로부터 또 한 번 버려졌다. 한 겨울에 어딜 가느냐고 겨울 철거만이라도 말아달라고 했지만, 국가는 그들이 안중에도 없었다. 치우면 그만이니까, 그 이상은 생각조차 안했을테다.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있었고, 유혈충돌이 있었고, 세간살이가 다 부서졌다. 낡은 컨테이너 가건물처럼 그들의 삶도 무참히 부서졌다.
그렇게 냉정한 국가가 국가의 땅을 무단 점유한 사랑의 교회는 방치하고 있다. 당장 그 땅 위의 건물, 교회 일부를 철거한다고 교회가 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얼어죽을 신도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 벽돌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자의가 아니었고, 기존의 터전을 빼앗기는 대신 주어졌던 것이고, 그럼에도 20년 넘게 가꾸어 살아왔는데 아무런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 누구는 일부러 점유하고 배 째라는데도 알겠단다. 오히려 천년만년 건재하라고 구청장이 나서서 옹호한다. 구청장은 구민의 대변인일뿐 그에게 땅의 소유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 불공평한 현실이 기가 막힌다. 평생을 바쳐도 내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이들이 포이동에도, 개포동에도, 언덕배기 어디에도, 연립주택촌에도, 원룸촌에도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너무도 쉽게 제 것으로 우겨버린다. 무기력하다. 이런 현실이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떠올리는 말 하나가 있다. 1학년 경영학 수업때 교수가 했던 몇 안 되는 옳은 말 중 하나. “세상은 변한다는 명제 빼곤 모든 것이 변한다” 그 말은 여전히 옳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세상은 필연적으로 변화해 갈텐데, 그 변화의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게 할지가 중요한 것이다. 과연 정의는 무엇인가. 무엇을 정의로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두 발 딛고 선 이 곳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사랑의 교회도, 판자촌도 들여다 보며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