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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04. 2019

커밍아웃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3

2018년 12월 28일


처음 이런 얘기(#심리 상태)를 하면서 울었던 상대는 남편이었다. 그 전에도 조언을 구할 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몸은 어떻게 아픈지를 많이 떠들고 다녔는데, 한 번도 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떠들고 다닐 땐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만큼은 아직 내가 건강하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남편의 출장과 야근이 잦았던 탓에, 가장 먼저 말했어야 할 남편에게 가장 늦게서야 말을 하게 됐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다가 지금이 타이밍이구나 싶어 졌다. 웬걸. 막상 말하려니 긴장이 됐다. 남편 모르게 호흡도 가다듬고, 일부러 목소리톤도 높여가면서 짐짓 별일아니라는듯이 얘기(하려) 했다.
“#정신과상담 을 좀 받아볼까 봐. 내내 #무기력 한 상태가 한 달 반이 넘었더라고. 쉽게 화가 나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도 나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상담 을 좀 받아봐야겠어.”
내 말에 남편은 의아하다는 듯 약간의 뜸을 들이고는, 대수롭지 않게, 너무도 무심하게
“그래, 뭐. 네가 필요하면 받아야지”
하고 대답했다. 내키진 않지만 네가 정 원하면 해. 남편의 완곡한 부정형 답변이다.


이상하게 #울컥. 혼자 거실로 나와 한참을 울었다. 왜 우는지 도대체를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쯤이면 다 울었다 싶어 다시 침실로 가니 눈치챈 남편이 품을 내준다. 힘든 거 몰랐어서 미안하다며, #상담  잘 받으라고. 그제야 내가 #서운해 서 울었다는 걸 깨닫고, 또 감정이 북받쳐 한참 눈물을 게워냈다. 남들이야 날 좀 이해 못해도 그러려니,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해도 어떠랴 싶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남편은, 날 이해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너무 #절망 적이니까. 그래서 그랬나 보다.


사실 난 조금은 남편을 겁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성격의 모난 부분들은 질리게도 닮았는데, 가치관이나 성향에서 너무도 상극인 부분들이 있다. 남편은 나 하나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나는 나 혼자서 잘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오지랖은 인류애라 생각하며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너나 잘하라고 말하곤 한다(농담투로 말하지만 진심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남들보다 많이 버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능력으로 번 것이고 돈은 벌어도 벌어도 적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이지만, 남편은 여성 혐오자다(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편 입에서 나오는 혐오표현들을 몇 번이나 바로잡아줘야 했다). 남편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게 거의 유일한 신조인데, 나는 정의를 위해 누구라도 조금씩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라지만, 나는 적게 벌더라도 워라밸이 지켜지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이런 상극의 만남이라 우린 연애 초반부터 아주 많이 싸웠다. 하루에 세 번씩, 밥 먹는 시간보다 싸운 시간이 더 많은 날들이 꽤 됐다. 지금도 우리는 ‘어쩌다 우리가 결혼까지 했을까, 1년도 못 버틸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하며 서로 신기해한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서로의 모난 성격 탓이 반, 가치 충돌이 반이다. 남편은 나를 상당히 유별난 사람으로 본다. 사회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오지랖이 넓고), 피해의식에 절은 페미니스트인지 뭔지 하는 애다.


이쯤 되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 것 같다. 내가 결혼을 앞두고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도 이거였다. 우리의 정치적 입장이 이토록 다른데, 사회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데, 가치관이 너무도 판이한데 과연 절충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1. 나는 자주적이지 못하다.

2. 내 본가와의 단절을 위해 나만의 가정이 필요하다.

3. 나에겐 안정적인 경제적, 정서적 환경을 제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4. 남편보다 괜찮은 남성을 본 적이 없다.

5. 내 지적 욕구를 남편과 채우려 하지만 않으면 부딪힐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평생을 기약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서약과 함께 시작했더랬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되도록 입장차가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지 않으려 하고, 싱거운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생활도 그리 나쁘진 않다. 나의 지적 허영엔 다른 숨구멍(책, 책모임,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 등)들을 터주었고, 그런대로 나의 이중생활(?)은 순탄하다 여겼다. 그럼에도, 일상을 공유하는 동거인의 사이이다 보니 말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심리상담이나 치료엔 돈도 들고(적지 않게), 과외 시간들에 상담 일정이 잡힐 것이고, 동거인으로서의 주의사항도 있을 것 같아 이 일도 남편에게 말해야 할 것들 목록에 올랐다. 그렇지만 나는 남편에게서 완전히 이해받지 못할 것이란걸 알았고, 그걸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더욱이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한층 더 ‘유별난 사람’으로 낙인 될 것만 같았다. 그 사실들이 남편의 무심한 한마디로 발화되었을 때, 나는 절망과 서운함에 처량히도 울었던 것이다.


이 남자와의 결혼을 결정한 것은 결국 나의 선택.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남편이라는 큰 산은 평생의 과제로 제쳐둘 수밖에. 이제 상담 받을 준비는 대충 끝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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