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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1. 2019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해치지 않는다

우석훈교수의 '직장 내 민주주의' 강연 후기

 「88만원 세대」로 인지도가 높아졌던 우석훈교수가 작년 말 한겨레출판을 통해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책 공장이라고 불릴만큼 다작을 하고 있는 교수인데, 이 책은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쓰셨다고 한다. 기획 당시는 박근혜 퇴진집회가 지나간 이후 사회적으로 직장 갑질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강의는 조현민 갑질사건으로 시작됐다. 우석훈씨는 조현아의 폭력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조현민이 컵을 집어 던진 것이 자본의 법칙일까? 아니다. 자본이라면 컵을 던지는 조현민에게 Stop을 외쳤을 것이다. 조현민의 폭력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의 명예는 실추되어 주가가 떨어졌고, 피해 직원은 물론, 가해자 본인에게도 어떤 이익은 없었다. 사실 이전에도 조현민을 비롯한 조씨 일가의 폭행은 계속 되어 왔다. 누구도 이익보지 않으면서도 조씨 일가는 직원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왜일까?


서두에도 말했듯 책을 쓰던 시기는 촛불집회 직후였다. 나 자신도 정치적 주체임을 인지할만한 큰 역사적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의에 대해 얘기할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내가 일하고 있는 곳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갑질이라는 키워드가 사회를 풍미할만큼 많이 쓰였다. 우석훈씨는 이제 직장 민주주의(workplace-democracy)를 실현해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실 우석훈씨는 갑질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갑질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축소해버리는 단어라고 이야기한다. 왜 그런 행동이 구조적인 문제인가를 보는 것은 쉽다. 멀쩡하던 사람도 그 자리에만 가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한 사람만 처벌 받으면 만사오케이가 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듯 '너도 그 자리 가봐라, 결국 너도 똑같은 놈이야'는 사실이다. 웹툰 송곳에서 그랬던가.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그런 위계적인 행동이 비단 폭력의 문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도 너무 만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예전엔 상사가 우리 애들 잘 좀 봐줘, 라고 말하는 것을 챙김받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내가 왜 니 애야?"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했다. 단지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을 당연히 애라고 생각하고, 나보다 아래라고 서열정리해버리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수직적 계급사회가 왜 구시대적인가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헌법만 봐도 알 수 있고,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 인권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으니 구태여 덧붙이지 않겠다. 


공채라는 제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우석훈씨는 공채도 직장 내 서열주의를 강화하는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공채를 통해 기수가 정해지고,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순번이 매겨진다. 그 순번은 자연스레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정한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동료라는 관계로 정의되어야 한다. 단지 맡은 책임과 권한, 업무의 내용이 다른 것이지 누가 누구의 위거나 아래라는 개념이 본래 아니다. 하지만 수직적 조직구조에 익숙해져서 우린 너무도 당연스레 사람위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동료다. 당신의 아이가 아니고, 애가 아니고, 아랫사람이 아니다. 동등한 업무 주체로 존중받기를 바라고, 이제는 그래야하는 시대다. 


직장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우선 우석훈씨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직장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은 팀장이 너무 열심히 했거나,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팀장을 일 잘하는, 혹은 사내 정치를 잘하는 사람으로 선발한다. 그러다보니 제 일은 잘하는데 팀원 관리를 전혀 못한다거나, 업무능력은 1도 없는데 상급자들에게 잘 보이는 쇼잉만으로 능력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인 팀이 민주적이어야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팀장에겐 팀장에 맞는 교육을 해야한다. 우석훈씨는 팀장에겐 필수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직장 민주주의 교육을 받게 하자고 이야기 한다. 교육인증을 받아야 팀장 역할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은 팀장의 중요한 자질이고, 이는 민주적인 조직을 만드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ISO-9000 품질인증처럼 회사들도 직장 민주주의 인증을 받도록 하자고 이야기한다. 실제 여성가족부에선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에서는 ‘팀내 임금 격차가 심화되면 팀 성적이 향상되는가: 한국 프로야구 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2011, 김정우·김기민)라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프로야구는 양극화가 심한 동네다. 연봉으로 수십억원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가 있는 반면, 부러져 나가는 배트를 보며 속이 쓰린 선수도 있다. 결과는 이렇다. “골프 같은 개인 종목의 경우에는 인센티브 크기가 클수록 성과도 좋아지는 결과가 발견되지만 팀 스포츠의 경우에는 모든 실증연구에서 임금 격차 크기와 성과 사이에 마이너스 결과가 나타난다. 어느 정도 임금 격차는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고자 하는 동기가 되지만 용인하지 못할 정도로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 스포츠에서 중시되는 응집력과 협력이 와해되어 팀 승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겨레 '올 시즌 프로야구 1위는 기아? 아님 말고' 기사 중)


우석훈씨는 위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임금격차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임금은 곧 권력으로 직결이 되어 평등한 조직문화를 해치고 성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직장 민주주의의 발전과정과 젠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이 유사하다. 성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 모두 위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평등해야 없어진다는 면에서 지향과 발전과정이 유사한 것도 이해가 간다. 얼마 전 내한한 U2의 공연 도중 문구처럼 “모두가 평등할 때까지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와 같은 맥락이겠지. 그에 따라 미국의 젠더민주주의 운동의 하나를 제시한다. 미국은 매년 동일임금의 날(equal payment day)을 정한다. 동일임금의 날이란 남성과 여성이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여성은 얼마간을 더 일해야하는지 보여주는 날이다. 예를 들어 2017년은 4월 4일이었고, 2018년은 4월 2일이었는데, 남성이 1년간 번 돈을 여성이 벌기 위해서 다음 해 4월 4일 또는 2일까지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이 날짜는 임금격차를 반영하여 정한다. 이렇듯 직장내민주주의의 날을 정해서 그 날은 직장 내 위계문화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석훈씨가 직장 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을 추렸는데, 그 중 한 곳은 서울우유다. 서울우유는 대표적인 협동조합 기업으로 비교적 직장 내 위계가 적다고 한다. 서울우유는 채용을 외부에 전적으로 맡겨서 내부적인 압력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또한 이순신 퇴근(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우석훈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의 25%가 회사가 망하기를, 팀장이 죽기를 바란다고 한다. 또한 청소년의 꿈은 더이상 공무원도 아닌 '건물주'다. 내가 아닌 부모가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직장은 더이상 동경의 공간이 아니다. 최대한 피하고 싶고, 피할 수 없어 매일 같이 내 발로 찾아 들어가는 지옥이다. 직장이 더이상 자아실현이나 성장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아를 실현하기 전에 가면쓰는 법을 먼저 배우고, 성장하기 전에 소진되는 곳이다. 단지 일이 과중되거나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일의 어려움은 그래도 나의 발전으로 남는다. 하지만 남지도 않는데 감정적, 정신적으로 갉아먹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보상도 없는 감정노동, 상사에 대한 불필요한 대접을 해야하고 수시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다. 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필요 이상의 훈계는 인격모독을 수반한다. 


인격이 다치는 곳을 제발로 걸어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은 나를 지키려는 생존 본능이다. 민주적이고 구성원 모두가 존중받는 직장이라면, 돈도 주는 데 가기 싫을 이유가 있나. 요즘 사람들은 끈기가 없어~ 일하기를 싫어해서 큰일이야~ 라고 말할 게 아니라, 왜 가기 싫은지를 나타내주는 연구결과에 귀기울이고 개선책을 찾아가길 바란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조직이 망할일은 절대 없다. 조직이 잘 되려면 구성원부터 존중하자. 직장 내 민주주의가 어쩌면 기업의 생존을 위한 첫 번째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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