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것을 아는 것 뿐이에요
대학을 나오고 이 나이가 되고보니, 주변에 전문계고(실업계, 특성화고?) 출신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공통수학, 국어, 사회문화, 영어 정도를 배웠다. 진도를 나갈 의지는 선생과 학생 모두에게 없었으므로, 학년이 끝나도록 교과서를 반절도 떼지 않았다. 딱히 대단한 의지가 있지도, 성적 이외엔 별 관심도 없었으므로 혼자 독학을 하지도 않았다. 그외엔 회계원리, 전자상거래, 무역영어 같은걸 배웠다. 2학년 이후엔 국영수사과를 거의 배우지 않았다. 대학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므로 남는 시간은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에 썼다. 세상 사는데 필요한 건 중학교까지의 과정에서 대충 배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까진 성실했으므로 어느정도 배짱도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바람이 불어 대학을 가기로 했다. 수능과목을 위한 학원은 문턱도 가본적이 없었고, 수능을 마칠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수능 준비를 시작한 스무 살의 봄, 나는 수학기호 읽는법부터 찾아봐야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천사 왼쪽 날개모양(∑)은 뭐라고 읽어? 그럼 작은 날개(기호를 못 찾겠다)는? 공공도서관에서 독학으로 준비한 나에겐 EBS가 유일한 강의였고,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두 동생이 학급친구였다. 바로 밑 동생은 같은 해 수능을 치러야해서 괴롭히기 어려웠고, 고2였던 동생은 이과여서 문과공부를 준비하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긴 어려웠다. 친구들은 한창 대학 신입생이라 많이 괴롭히긴 어려웠다. 그렇게 1년간 사실상 혼자만의 수험생활을 거쳐 아주아주 운이 좋게 대학이란 곳에 가게 되었다.
대학에오니, 동기들과 배경지식이 달랐다. 도서관 열람실, EBS교재가 수험생활의 전부였던 나와 달리, 동기들은 다른 학교를 나왔음에도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다. 고등학교 야자의 추억, 무슨무슨 재수학원, 00학원의 모 강사, 모의고사 어쩌고.. 문학책에 나온다는 무슨 작품이나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온다는 무슨 사건들.. 종종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러려니하려 했다. 다른 경험과 절대적인 공부의 양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딱히 부끄러울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연스레 질문하는 일이 줄었다. 그러다보니 내내 모르고 지나는 것들이 생겼다. 뒤에서 남몰래 찾아보는 것도 한두번이지, 점점 아는척만하고 알려는 노력을 안했다.
"그게 뭐야? 난 잘 몰라" 라는 말을 그때그때 입 밖으로 낸 건 근 5년쯤? 나름은 꽤 큰 맘을 먹었다. 모른다는걸 인정하는건 부끄러운일, 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 별일이 아닌데, 20년이 넘게 고착화된 사고틀을 깨는건 꽤나 별일이었다. 특히나 자존감이 바닥치는 시기엔 더 큰 용기를 내야하고, 반응에 더 과민하다. 그냥 잠자코 있을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걸 물어봤을까. 자책타임을 지내고나면 그 다음 상황엔 더 머뭇거리게된다. 용기마저 갉아먹고 살고있달까.
주위에서 오가는 언어들이 낯설게 느껴질때면 소외된 기분이 들곤 한다. 이방인같은 기분이다. 나만 모르는 세상이 있는걸까. 자격지심을 떨쳐내기위해 부단히 책을 읽기도 했다. 세미나나 책모임, 스터디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엔 모르는 것 투성이고, 평생이 지나도 다 모를 것 같다. 이대로는 평생이 가도 자격지심을 벗어버릴 수 없을테고, 끊임없이 채근당하는 나만 안쓰러워질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은 단지 나의 노력 부족때문이라 생각하고 나의 잘못이라 여기는 일은 그만해야겠다.
그냥 알아지는만큼 알고, 모르는대로 받아들이고, 그러고 살아야지. 내가 아는 모든 걸 남들이 알지 못하듯이, 남들이 아는 모든 걸 내가 알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가끔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상황들이 상처로 남을때가 있지만, 그것까지도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별 수 있나. 인생은 원래 자로 잰듯이 딱딱 그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