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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3. 2019

직장 내 괴롭힘 피해, 퇴사 말곤 방법이 없을까?

책 『건전한 기업문화의 핵심- 또라이 제로 조직』(로버트 서튼 저) 후기

『건전한 기업문화의 핵심- 또라이 제로 조직』은 로버트 서튼이라는 조직행동 전문가의 책이다. 상사로부터 선물 받아 읽은 책. 절판된 책 어렵게 구하셨다며 주셨는데... 재미가 없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찾아 읽을정도로 유익한 것 같진 않다. 물론 최근 이슈가 되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연구 내용이 담겨 있어 부분부분 유익했지만 말이다. 특히나 나는 직장 내 괴롭힘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지난 직장 내 민주주의 강의 후기에서 말했듯 누가 그 자리에 가도 그런 행동을 한다), 이를 한 사람의 또라이가 문제라는 식으로 문제를 축소하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조직행동 전문가라서 조직적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이 많지만,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듯한 서술이 있어 불편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분명 조직적으로, 그리고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지점들 덕분에 더 재미없고 무익하게 느껴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목부터 또라이제로조직이라서 내가 잘못된 기대를 품은 책임이 크긴하지만.. 괴롭힘 근절보단 진짜 또라이를 없애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니 그걸 원한다면 읽어봐도 좋겠다. 사실 괴롭힘 가해자의 심리나 이들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싶다면 심리학책을 읽는게 더 도움이 되겠지만.. 


또라이 제로 조직 목차



내 아들  테일러가  한  말이기는  하지만  "어떤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당신이  그  문제에  대해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177p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저)라는 책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비전문가가 전문가인 척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문제를 겪어본 이는 해결방법에 있어 실무적으로 잘 알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한 유형의 문제라도 디테일, 문제해결 기관이나 담당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을때 실마리를 줄 수 있는 건 그 분야를 정통으로, 폭넓게 알고 있는 '전문가'일 수 밖에 없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난 그렇게하니까 안 하던데?"라고 말하는 건 선택지를 넓혀주는 정도의 조언인 것이어야 한다. "너도 그렇게해봐. 난 진짜 그렇게하니까 안 하더라니까?"하며 같은 행동을 부추기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샬럿 레이너와  로레일리  키슐리는  일반적인  이직률이  5%인데  반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25%가  직장을  그만두고, 그  목격자의  경우에는  20%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추정한다. 

 186p         


직장 내 괴롭힘이 피해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괴롭힘은 보는 사람들마저 괴롭게 한다. 난 그 자체로도 가해라고 생각한다. 실제 상담을 해보면 보란듯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일부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준다거나, 다른 사람의 험담인양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는 발언을 하는 등. 목격자들은 안다. 지금은 타겟이 내가 아니지만, 피해자가 그만두고나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안전하지 못한데 나의 안전을 바라는 것이 과욕이라는 것을 안다.. 피해당사자가 괴로워서 그만두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목격자들의 이직률이 그에 못지않은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왜 또라이는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가?'

첫 번째 맹점은 꼴통이 대개 야비한 태도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이유로 성공하는 데도, 그 비열함이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

두 번째 맹점은 사람들이 권력을 쟁취하는 전략과, 팀이나 조직을 가장 잘 이끄는 전술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남을 위협하고 끌어내리는 일이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비열한 경쟁이 판을 치는 문화에서라면 말이다. (…)

세 번째 맹점은 또라이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 있다. 또라이를 겪어본 사람은 잔인한 보복을 피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또라이가 일으키고 있는 해악을 한사코 감추려드는 것이다. 듣기 좋은 소식과 말만 읊조릴 뿐, 또라이가 듣고 짜증이나 화를 낼 이야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이로써 또라이는 자신이 유능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꼴통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직원은 '쇼를 하라!'는 철칙을 결코 잊지 않는다. 

 251p-         


첫 번째 맹점과 관련해서, 나는 경영학자들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단 하나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탈 수도 있고,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될 수도 있고, 소비자의 욕구를 잘 파악했을 수도 있고.. 같은 조건의 기업이 왜 똑같이 성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경영학자들은 결국 케바케(case by case)라는 대답만 내놨을 뿐이다. 그걸 상황이론(Contingency theory)이라고 하는데, 이렇듯 성공의 답을 알려달라는 요구와 그걸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어거지 성공요인을 가져다 붙였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같은 옷만 고집하고 직원들에게도 그러도록 요구했다는 괴짜스러움이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보그 편집장의 실제 모델의 안하무인이 그들의 성공요인이라도 되는듯이 부풀리는 것 말이다. 


두 번째 맹점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과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사내 정치'로 권력을 획득하는 일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지적으로 보인다. 나와 내 남편이 겪은 상사들의 경우 정말 일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지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성과를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채고, 정당한 문제제기에 대해 권력으로 찍어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윗 상사 앞에선 온갖 자신에 대한 공치사를 해대고, 아부를 하며 정치력만 키웠다는 것도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이러다보니 실제 직급에 맞는 역량을 가진 상사는 정말 손에 꼽기도 어렵다. 


세 번째 맹점은 상담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낀다. 피해자들은 엄청 위축되어 있고, 싫다는 의사를 내비치기 어려워한다. 찍히면 어쩌죠, 제가 문제제기한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요? 그냥 네, 네, 하고말면 또 그런대로 지낼만은 해요.. 이렇게 위축되어 있는 피해자를 상담하는 것은 정말정말 심리적인 부담이 큰 일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책임소재가 나인 것만 같은 생각에서도 잘 헤어나오지 못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심각하게 결여된 상태라 이 곳을 그만두고나서도 이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지거나, 이 곳을 그만두면 갈데가 아무데도 없을거라며 미리 절망하곤 한다. 그런 얘길 듣다보면 제3자가, 나에게 아무런 불이익도 없도록 전지전능하게 해결해주길 원하는 듯하다.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이 없을 뿐더러, 피해자가 나서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할 방법이 없으므로 함께 무력감에 젖게 된다. 일단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시키고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를 갖도록 심리적인 지원을 한다. 노동상담은 단순 민원처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일까지 맡게 되어 더욱 소진이 많이 되는듯하다. 나는 심리전문가가 아니라 노동전문가인데... 하는 혼란스러움이 매순간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독재자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능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사실 그것은 부하 직원을 시야에 잡아두는 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데도 말이다. '또라이 사장'을 겪어본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잘 알고 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질책과 굴욕, 비난을 모면할까, 그 궁리에만 몰두한다.              


그런 경우 그 상사는 자신의 오류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결정을 해서 조직에 피해를 주게 된다. 또한 피해자는 언제든 회사를 나갈 궁리를 하게 되고, 애사심이나 충성심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그건 필연적으로 일의 효율로도 직결되고, 조직의 생산성을 저하하는 문제로 번질 수 밖에 없다. 피해자의 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기도 하지만, 조직의 생존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제임이 명확하다. 



엄밀한 연구에  따르면,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즉,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자기  운명을  스스로  타개해  낼  힘이  있다는  자각-만큼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다고 한다. (…) 

해군  중장  스톡데일이나  요양원  환자들의  사소한  변화가  시사하듯이, 통제하고  있다는  자각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줄일  수  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괴롭힘상황에서 피해자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때문에 더 심한 정신적 내상을 입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 조차 없었을 때에, 피해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버터기나 나가는 것 뿐이었다. 내가 최근 상담한 300명 정도를 통계내어 봤을 때, 내담자 중 퇴사를 했거나 희망하는 비율이 20% 가까이였다. 물론 상담 중에 퇴사의사를 밝히지 않은 잠재적 퇴사희망자는 더 될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퇴사는 물론 패배감을 안겨줄테지만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사실상 차악인 퇴사를 고려하지 않게하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어야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외)을 통해 그 실마리가 생긴 것같다. 아직은 초기 법안이라 부실하지만, 실효적으로 정책·제도적 보완을 해나가면 된다. 그 방향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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