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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Dec 17. 2019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단치는 못해도 그저 버젓하게 살아내기를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회 평균에 비해 머리가 좋은 편에 속한다는 생각을 잠깐한 적이 있던것도 같은데, 전문자격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일을 하면서 진작에 거뒀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멍청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고만고만한 애들 사이에서 지냈던 초중고땐 덜했던것 같은데, 전국구로 날고 기는 애들이 모이는 대학때부턴 자존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학교 시험 점수만으로 평가받던 때가 편했다는걸 알게됐다.


난 나의 부족하지 않음을 다방면에서 증명해보여야 했다. 일종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문 자격사 시험을 준비하려던 때에 동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언니는 그걸 왜 하는데?"

"난 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는거야"

"그런 자격증에 자존감이 달려 있으면, 그건 자존감이 없는거 아니야?"

얘가 대체 무슨 소릴하는거야, 자격증으로 내 수준이 높아지면 자존감이 따라 올라오는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동생의 말이 백번천번 맞다. 그건 아스피린 같은거였다. 학교 성적이 조금 잘나오거나 무슨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자격증을 따거나 등등.. 그 순간뿐이었다. 이것만 얻으면 아무일도 없던듯 회복될 줄 알았던 자존감은 새로운 곳을 다시 파고들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잘 나온 애들 사이에서 내 점수를 평가하며 작아졌고, 상을 받으면 더 좋은 상을 받은 아이들과 나를 비교했으며, 자격증을 따면 자격증 딴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덜 가진 것들만 보게됐다. 1을 회복하면 2, 3을 떨어뜨렸다.


세상일에 연연하지 말자는 다짐을 가지고 내딛는 첫 취업시장의 문턱. 이력서를 한장 두장 쓸때마다, 자소서를 한장 두장 쓸때마다 점점 작아지고 위축된다. 나를 증명할 말과 숫자들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동안의 난 뭐였나 싶어진다. 그 하얀 종이에서 나는 까발려지고 또 까발려지지만, 제대로 된 부스럼 하나 없다는것이 더 수치스러워진다.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나를 내놓고 그나마 괜찮은 값에 사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처량하다. 젊은 세대의 자살률이 높다, 청년실업이 문제다, 취업 문턱 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남의 얘긴줄만 알았는데 당해보니 만만하지가 않다. 내가 대단한 걸 바랐나.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대단한 곳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가려던 곳도 월 200만원 언저리 주는, 민원처리라는 이름의 고강도 감정노동을 하는 말단직이었다. 내가 가진 이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그래서 대단한 곳들은 쳐다도 안 봤다. 그런데, 그런데.... 


웹드라마, 나는 취준생이다


그나마 내 또래들에 비해 가진 무기가 더 많다는걸, 유리한 출발선에서 출발한다는걸 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채용공고와 이력서와 자소서로 싸운다. 다른 또래들은 오죽할까. 면접에서 처음 떨어졌다는 얘기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 대학친구. “난 반년동안 떨어지고 다시 쓰고 면접보고 떨어지고 서류에서도 떨어지고... 그러다 겨우 됐어.” 이력서만 백 군데도 넘게 넣었다고. 수십, 수백번의 고배를 마셔야만 일할 자격을 부여받지만, 그런 '자격자'들도 막상 보면 그리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저 인사담당자의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합격하는 건데, 그걸 알고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나의 이력에 절망하고 만다.


그렇게 힘들게 들어가도 열악한 조건에서 소모되고 소진된다. 제발로 고생고생해서 들어가서 고생고생하며 일하다 더 할 고생도 없을 즈음 제발로 나온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가 없다. 작심삼일 열번으로 30일을 채우듯이 작심취업을 모자이크해서 겨우 생계를 끼워맞춘다. 빚 져서 자기 장사하면 무모하다고 하고, 그렇다고 받아달라고 내놓으면 거둬주지도 않고. 카페며 마카롱가게며 ‘핫’하다는 아이템에 너도 나도 뛰어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나..? 그거말곤 없다. 나 하나 지키기 위해선 그거라도 해야한다. 나라도 내 존재의 가치를 찾아줘야한다. 얼마못가 또 무너질걸 알지만 행여, 벼락맞듯 내 존재가치가 빛날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요행을 바라면서. 점점 꺼져가는 불씨를 조금이나마 태우면서.

나만 빼고 다들 대단한가, 나만 대단히 못났나..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취업하고 성공하는건가 싶어 억울했다. 그런데 보니까,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것같다. 간혹 저런 사람이?? 싶은 대단한 사람도 있긴하지만, 세상의 99%는 대단치 않은 사람들이다. 취업 실패에, 사업 실패에, 진학 실패에 너무 낙담하지 말자. 대단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과정들이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몇 안되는 평범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데 그 자리가 거저 얻어질 리가 있나.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노래의 가사처럼, 어느 곳에도 없는 내 자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거라는 천진한 낙관따위 늘어놓을 생각 없다. 다만 당신의 자리가 없는 건 당신이 지지리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대단하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평범한 탓이라고만 생각하면 좋겠다. 너무 무너지진 말기를, 다시 일어날만큼만 아프기를 바랄뿐이다. 대단하지 않은 우리가, 대단치는 못해도 그저 버젓하게 살아내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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