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
누구나 알아줬으면 하지만 아무한테나 말할 수는 없는 얘기들, 그런 얘기들을 각자의 19호실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원래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에 나오는 말인데, 본래의 용례와는 전혀 무관하다. 책에선 자신만의 공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공간, 사실은 그 이상으로 숨기고 감추고 싶은 공간으로 묘사한듯하다.(읽진 않았고, 드라마를 통해 건너들었다^^;;) 근데 왠지 누구라도 알아주길 바라지만 쉽게 얘기할 순 없는 나만의 공간 정도로 나는 19호실이란 표현을 빌려야겠다. 이유는, 단지, 이런 느낌을 대체할 말을 찾을 수 없던 와중에 괜히 맘에 와서 꽂혔기때문 ㅎ
난 사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19호실을 들여다봐줬으면 한다. 누군가 궁금해한다면 언제든지 열어준다. 나에대해 잘 모르기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처 조심하지 못해서, 조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해서, 정말이지 '본의아니게' 상처를 주는 일들은 너무 빈번한 인간사의 사고다. 내가 이런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
그동안 어긋난 관계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예방가능한" 사고들로 인한 것이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수많은 노력을 했던 이였음에도, 미처 주의하지 못한 단 하나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 특히나 내가 신뢰하고 애정하는 관계일수록 그런 사고로 인해 관계가 어긋나는 건 더 순간이더라. 그 사람에겐 더 이해받고 싶었고, 그럴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니까.
물론 미리 말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란건 아니다. 이해받는 건 어려운 일이고, 이 관계에 대해 상대방도 나만큼 소중히 여기는지 확신할수도 없고, 꺼내보이기 어려운 얘기일수록 공감에 이르는 과정이 힘들테니.. 그렇기에 말하지 못한 것일테고.
그치만 인권감수성이란 말조차 어색한 이 사회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 일은, 적어도, 내겐 쉽지 않다. 그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줌으로 인해 학습되기도 하고, 상처를 받은 경험을 통해서 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그 과정에서 오는 관계의 상실이다. 한 번 어긋난 관계를 돌이키는 것은 너무도 어렵고, 그렇게 당신을 잃는 일은 너무도 아프다.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 난 더 소중한 사람일수록 나의 19호실을 보여주려 한다. 당신을 느닷없이 버겁게 만들진 않을까 겁은 나지만.
오늘도 이렇게 느닷 없이, 당신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건 잘 포장하면 나름의 용기인지도, 서툰 배려인지도, 솔직히 말하면 달갑지 않은 응석인지도, 어쩌면 오지랖인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다만 당신을 잃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