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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30. 2020

그 말은 나한테 하나도 위로가 안돼

좋은 며느리 말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다 3

차례상을 차린다. 나는 딱히 할 줄 아는게 없으니 그냥 주는대로 상에 날랐다. 차례를 지냈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무릎을 꿇고 한참을 조아렸다. 절도 몇 번 했다. 상을 치우란다. 음식을 나르고 다시 반찬통에 담는 등 시키는대로 했다. 세배를 하란다. 세배를 했다. 밥상을 차리란다. 차렸다. 남편더러 앉아서 먹으란다. 나와 함께 먹겠다고 안 먹는단다. 다른 할 일이 다 끝나고나서 남편과 앉아서 먹었다. 사실 며칠째 소화가 안돼서 먹고싶지 않았지만,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속이 안 좋으면 임신했냐고 달려들까봐 그냥 꾸역꾸역 남기지도 않고 먹었다. 겨우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남편과 휴대폰을 했다. 내 휴대폰은 배터리가 없어서 남편의 휴대폰으로 번갈아가며 했다. 작은 큰어머니의 아들, 나, 남편이 앉아있었다. 남편과 그 아들이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으니 작은 큰어머니가 말한다. 

"아니 과일을 깎으면 갖다 날라야지 휴대폰만 만지고 있네."

큰며느리가 말린다. 

"왜 그러세요, 불편하게."

작은 큰어머니.

아니 이런 건 알아야지. 움직여버릇을 안 하잖아.


주어는 없지만 나한테 한 말이었다. 눈치 없는 남편도 알아차릴정도로. 나는 눈치보며 일어나 과일을 날랐다. 앉아서 밥 내와라 반찬내와라 식혜 내와라 커피 내와라 하고 있는 양반들에게. 

나는 과일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먹을 사람들이 가져다 먹으면 되지, 먹지도 않겠다는 나를 꼭 시켜야 성이 풀리나. 움직여버릇? 진짜 말버릇 한 번.. 나이 먹은 걸로 유세떠는 인간들 정말 별로다. 그래도 어쨌든 과일을 날랐다. 얼른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남편과 앉아 쉬면서 나가서 카페라도 가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 슬금슬금 일어난다. 재빨리 채비를 하고 그 집을 빠져나왔다. 시아버지가 데려다주겠단다. 

"아니에요, 저희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서 그냥 걸어가면 돼요."

둘러대는데 남편이 말한다.

"우리 커피 마시고 갈거야."

시어머니가 남편을 꼬집으며 말한다.

"으휴 우리도 커피 한 잔 사줘야지."

그럼 같이 가. 괜찮지?

나를 보며 묻는다. 안 괜찮다. 그 말을 시부모 보는 앞에서 어떻게 하나. 차마 못했다. 이 숨막히는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기어코 지 부모를 동행시킨다. 내 남편은 눈치가 없는걸까, 아님 정말 내가 지 부모와 커피 한 잔 마시는 건 괜찮을 줄 알았을까. 


어쨌든 카페에 도착해서 메뉴를 골랐다. 자리를 잡아 앉으려는데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말한다.

"다시는 작은 큰엄마 그런 말 못하게해. "

갑자기..?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게 불보듯뻔하다. 안 그래도 숨이 막히는데 머리가 어질할 지경이다. 

시어머니가 변명이랍시고 받아친다.

"아니 며느리가 원래 그런거 하는.."

"그니까 그런거 안한다고. 며느리라고 그런거 시키지 말라고."

"작은 큰엄마가 얘한테 시켰니? 그냥 좀 하라고 말한거잖아."

"엄만 모르겠어? 딱 봐도 얘한테 한 말이잖아. 한 번만 더 그러면 우리 안와."

역시나 화살은 나를 향한다.

그게 그렇게 힘드니?


돌고도는 레파토리. 내가 힘든 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그게 뭐라고 그걸 힘들어하냐는 타박의 의문문. 이 비아냥이 더 견디기 힘들다.

"그게 힘든일이 아니면 저한테 안 시키는 건 더 안 힘든 일이잖아요."

"아휴. 너흰 너희 둘만 좋으면 끝이니? 위아래도 없어?"

"어머니 저 결혼하기 전에는 라면만 끓여먹어도 되니까 너희 둘만 행복하라면서요. 어머님이 저 결혼 전에 너희 둘의 행복보다 집안 어른들 맞춰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으면 저 결혼 안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너 안 그랬다. 나는 니가 이렇게 변한게 너무 실망스러워."

"어머니도 저 결혼전에 안 이러셨어요. 결혼 전엔 아버님이랑 술친구다 뭐다 재밌게 잘 지냈는데, 저 이젠 어머님아버님 얼굴도 보기 싫어요. 남들이 왜 '시'들어간건 시금치도 안 먹는지 이제 이해가 가요. 제가 뭘 그렇게 못했어요?"

너 나 아플때 전화 한 통 안했잖니?


대단하다. 1월에 네번 있는 주말 중에 두번을 1박 2일로 생일을 챙겨드렸다. 그러고 또 설에 얼굴을 봤다. 생일 몇일 전 아팠던 거 전화 안했다고 이런다. 아무리 잘해봐야 못한 것만 세고 있다. 이런데 누가 잘하고 싶나. 애초에 생일도 안 챙기고 모른 척 살았으면, 명절에 전화 한통 넣는걸로도 고마워했으려나. 우리 엄마는 파킨슨병이다. 몸이 눈에 띄게 퇴화되어 간다. 행동이 점점 느려지고 있고, 몇달새에 작은 퍼즐 조각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매일 시간을 지켜 약을 먹는다. 그런 엄마한테도 1년에 전화 몇 통 하지 않고, 별 일 없음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런 엄마가 붙잡아서 자고 가라고해도 남편 불편할까 한끼 먹고 집에 온다. 엄마가 보고싶으면 혼자 가서 보고 온다. 다녀올게. 응, 잘 다녀와. 같이 가잔 소리도 안하고, 굳이 같이 갈 필요도 없다. 엄마를 보고싶어하는 건 나고, 엄마에게 말을 걸고 함께 고스톱을 치는 것도 내가 하면 되는 일이다. 

얘는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요? 저희 엄마는 매달 병원가요. 아시잖아요. 근데 얘가 우리 엄마 건강상태 챙길 것 같아요? 안 그래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도 말라고 했어요. 지 부모는 지가 챙겨야죠.


"얘?"

3살 많은 남편한테 얘라고 한다고 또 트집을 잡는다.

"네, 얘요. 저 결혼 전에 이런거 요구 안하셨잖아요. 그땐 명절마다 큰 집에도 안 갔어요. 저도 결혼 전의 관계가 틀어진 게 누구보다 아쉬워요. 저 결혼 전처럼 대하세요. 남처럼요. 저희 혼인신고도 안했어요. 실제로 남이잖아요."

"아휴. 그래 정 힘들면 담부턴 오지마."

굳이 저 소릴 이렇게 밉게 할 수가 있나 싶다.

"나 먼저 갈게."


혼자 카페를 나왔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내내 울었다. 눈 앞이 흐릿해서 몇 번이나 닦고, 또 울고, 몸이 휘청하도록 계속 울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한참을 울었다. 남편의 전화가 온다. 거기로 갈게. 남편이 와서 함께 버스를 타고 친정으로 가는 길. 남편이 손을 꼭 잡는다. 

"그러게 알아서 연락드리라고 했잖아, 이런 말 안나오게."

"했어. 나한테 말했는데 네 연락이 없어서 저러는 거야."

아휴. 지 아들이 챙겼는데도 나한테 이중으로 챙김받으려는 심보는 대체 뭘까. 내가 요양보호사라도 되는 줄 아시는걸까.

"눈치 없이 왜 커피 먹으러 간다는 소리는 해서 이지경을 만들어."

남편의 잡았던 손이 풀린다. 이 사단이 안났으면 눈치 없이 커피 먹으러 간단 소릴 왜 하냐고 욕지거리를 하려고 했는데 그나마 순화한 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려는데, 아직도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울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말한다.

"그래도 우리 엄마가 너 안 밉대. 그냥 관계가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대."

이런 얘길 나한테 왜 하는걸까.

그 말은 나한테 하나도 위로가 안돼.


내 말에 남편은 몇날며칠을 토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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