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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31. 2020

나를 아프게하는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해

좋은 며느리 말고,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다 4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를 여전히 좋아한다는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뭘까. 그게 정말 나한테 위로가 될거라고 생각했나. 그리고 관계가 빨리 돌아오도록 하라는 주문까지 얹어졌다. 한 번 틀어진 관계가 돌아오는 게 쉬운 일인가. 하다못해 나에게 용서를 구한 적도 없고, 마지못해 스스로 중재안을 내놓은 것 뿐인데. 내가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해야할 아무런 이유도 아직 찾지 못했는데, 저걸 위로랍시고 같이 뭉클했어야 하나. 관계회복을 원한다면 노력해야할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잖아. 


남편이 바람을 쐬겠다며 나를 두고 간 후에도 나는 혼자서 엉엉 울었다. 전화를 걸어 하소연할 사람도, 기댈 곳도 없다는 게, 내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외로워서 또 한참을 울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시부모와 싸웠다는 얘기를 들으면 자식 잘못 키워 죄송하다며 속앓이를 할 것이다. 언니와 동생들은 "네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래도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바뀌겠냐"며 공감 반 만류 반 할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내마음이 또 안쓰러워 한참을 울고, 돌이켜보며 또 울었다.


내가 뭘 잘못했어? 정말 도무지 모르겠다.


니가 가고나서 나는 또 한참을 울었다. 나는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았고, 나만 빼고 모두가 한 편이라, 이겨도 내 모든 걸 빼앗긴 기분이었다. 혼자 남겨진 내가 너무 가여워서 나는 한참을 울고, 누가 봐도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멍하니 울고, 눈앞이 가려져 휘청이면서도 딱히 멈춰설 곳이 없어 정처 없이 걸었고, 기진맥진한데 어디에도 기댈 수 없어 그게 또 서러워 울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온몸엔 힘이 하나도 없는데 넌 여전히 네 부모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마음을 일순간 풀지 않은 내게 서운해서 돌아와서도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언제쯤 네가 내편처럼 느껴질까. 언제쯤 네가 날 온전히 이해해줄거라고, 내 힘들다는 한마디에도 언제든 마음을 다 열고 들어줄거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날이, 기약 없는 그 날이, 오기는 할까. 언제쯤 이 마음이 다시 힘을내려나. 얼마가 지나야 난 또 전처럼 살이 찔 정도로 먹고, 자도 자도 졸리다며 눕기만 하면 자고, 드문드문 너를 보며 설레면서 스킨십을 기다릴까. 


며칠을, 가만있다가도 수시로 눈물을 흘리는 내가, 아직도 매 끼니 소화제를 먹는 내가, 두통이 심해서 밤에 잠을 설치는 내가, 나는 제일 불쌍하다. 나의 상처는 아직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무는 상처인지 가늠도 안되는데, 실망을 돌이키기에 너희 부모의 그 말은 너무도 작고 작은데, 그들이 애정이란 이름으로 강요하는 역할들이 싫은 건데. 니 눈엔 아직도 날 좋아하는 네 부모만 불쌍하니. 


나와 엄마의 관계를 남편이 매끄럽게 해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고,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가까워도 매순간 붙어있고 싶진 않을 수 있다. 남편을 많이 사랑하지만, 가끔은 나도 혼자 있고 싶다. 그렇게 서로 내키는 만큼 조금씩 가까워지고, 필요한 거리를 존중하는 게 관계맺기의 기본 아닌가. 남편에게 30년간 맺어온 모녀의 관계만큼 우리 엄마와 가까워지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처럼.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에겐 생고생하며 인정 받지 못하는 가장으로 살아온 우리 엄마와 남편을 통해 만난 시부모가 결코 같지 않다. 남편에겐 자신의 어려운 시절 내내 고생해준 엄마겠지만, 나에겐 아니다. 그만큼의 유대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데 시부모는 자신들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임의로 정해두고, 거기에 맞추라고 강요하고 있다. 내가 필요한 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그런 관계가 틀어지는 건 너무 예견되는 일 아닌가. 


만 하루를 아무 말 없는 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나한테 하고싶은 말 있어?”

“아니 없어.”

“나한테 할말있으면 해줘.”


한 세번쯤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시도하다가 지쳐서 말했다.

“아무 문제 없는거지 그럼?” 

너는 아무말 없이 운동을 한다며 나갔다. 한참만에 돌아와선 네 밥을 챙겨먹고 영화를 보러가지 않겠냐고 한다.


니가 돌아오기 전에 난 몇번이고 다짐했다.

나를 숨막히게 한 만 하루가 넘는 시간을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돌아와서 아무 일 없던듯 말을 붙이면 “아니 난 할 말 없어”하고 되받아치고 널 무안하게 해버리겠다고. 그런데 당장 나가서 영화를 보자는 네 제안에 난 망설이지도 않고 “지금? 그래”하며 목소리까지 높여 대답해버렸다. 나는 아직도 널 밀어내는 방법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너를 숨 막히게 할 방법을 모른다. 싸울때마다 몸이 떨리도록 울고, 혼자 몰래도 울고, 베갯잇 적시며 울던 날이 부지기수인데,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러운데도 어쩌다 한 번 주륵 흐르는 니 눈물이 또 너무 가여워서 미안하다며 부둥켜 안고 함께 울어버린다. 이번에도 나는 숱한 다짐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너의 한마디에 스르륵 없었던 일인척 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만큼만, 그만큼만 더 이겨내보려고 한다. 아직은 널 밀쳐낼만큼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다. 이렇게도 미련한 내가 밉지만, 그래도 아직은 네가 좋다. 좀 더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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