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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10. 2020

저, 사실 소심하거든요.

책 『소심해서 좋다』를 읽고 돌아본 나의 소심함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가 서재에서 몇 번째 마주친 덕분에 큰맘먹고 집어 온 책. 책의 소유자인 동생은 그닥, 이라고 했지만 표지가 예뻐서 혹해서 집어왔다. 소심한 사람 답게 저자는 필명을 쓰는듯하다. 이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차리셨나, 싶게 출판사 이름도 웨일북스. 커버의 일러스트는 파란 망망대해 한 켠에 자신을 지키고 선 한 사람을 작겨 그려놨다. 책 커버 안쪽 진짜 표지는 분홍 바탕에 소심한 태도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그려져있다. 대체로 일관된 책의 구성. 시작이 나쁘지 않다. 


마음을 쓴다. 정확히는 마음속 배터리를 사용한다. 우연히 이웃과 마주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 넘치는 지하철에서, 동료에게 인사하는 출근길에서, 입김을 나누는 회의실에서, 저녁 모임에서, 지인과의 대화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배가 고픈데 누구도 음식을 들지 않을 때, 눈을 맞추고 대화할 때, 입으로 생각을 뱉어낼 때, 귀에 상대방을 차곡차곡 담아 넣을 때, 소란스러운 무리의 옆을 지날 때, 점원이 뭔가 도와주려고 할 때, 그렇게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는, 마음을 쓴다. 그들이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그렇게 된다. 나는 소심하다.


책의 프롤로그 중. 나의 마음을 받아 적은 듯한 동질감. 나는 내가 심리적인 여유가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소심해서 그런 거란걸 처음 알았다. 10년을 만난 내 남편도 모르는 나의 성격 중 하나는 소심함과 낯가림이다. 최근 몇 년간 내가 페이스북에 남겨둔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또 하나의 큰 약점이 있는데, 내가 남들에 비해 긴장의 장벽이 낮은 건지 되게 사소한 것에도 엄청 긴장을 한다는 것. 누군가 기대를 가지고 나를 주목하는 것에 엄청난 긴장을 한다. 면접을 볼 때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설 때도 그렇고, 그냥 손들고 질문하는 것도 그렇고, 하다못해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것도 엄청 긴장한다. 이런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하기로한 강의는 잘하고 싶단 마음에 드립 하나까지 미리 준비해서 대본을 짰다. 거의 보고 읽는 식으로 해야 겨우 하려던 말을 할 수 있다. 
주무르면 주무르는대로 구겨진다. 찌르면 찌르는대로 와서 콕콕 박힌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 가는길에 역을 통과하는 열차 소리에 놀란 마음이 두세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가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이 근래 좀 잦다. 작은 말이나 행동들에도 마음이 쿵 내려 앉는 일들이 많아졌고, 좀처럼 용기라는 게 나지도 않는다.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무것도 아닌일도 작게나마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다. 마음에 코팅이나 방화벽이나 니스칠 이런거라도 할 수 있음 좋겠다. 


나는 어릴적 매년 몇 번씩 만나는 이모가 낯설어서 인사를 못하고 뒤로 숨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모인데도, '안녕하세요' 한 마디를 못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나는 소심해서 역할놀이를 할 때면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를 하곤 했다. 먼저 적극적으로 '피치할래!', '세일러문 할래!'라고 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심받지 못하고 '떨이'로 남은 그 아이가 왠지 나같기도해서, 그리 싫진 않았다. 나의 유년시절은 사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유치원에서 시장놀이를 하던날 찍힌 사진이다. 장바구니를 끼고 가장 끄트머리에 앉아 카메라라는 어색한 물건을 수줍게 쳐다보던 아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바닥을 찍고 하늘로 용솟음쳤다. 심장소리때문에 귀가 먹어버릴 것 같았다.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일은 없었다. 2학년쯤이었나, 담임선생님은 모든 아이에게 하나씩 원하는 상을 줄테니 골라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인기상', '친절상', '적극상'등 자신이 원하는 상을 말하곤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내 입으로 내 상을 달라고 하기가 너무 멋쩍어서 '개근상'을 달라고 했을뿐이다. 실제로 나는 개근상의 요건이 충족된, 결근이나 지각 조퇴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아이였으므로 내 기준에서 그 상만큼은 당당히 달라고 할 수 있었다. 선생님도 그것을 알았다. 선생님이 개근상 말고 다른 상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 뒤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봉사시간을 채웠으니 봉사상을 달라고했던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담임선생님은 모든 아이에게 일기를 써오라고 숙제를 내줬고 그 중에 잘하는 아이의 일기를 뽑아 읽어주곤 했다. 나는 선생님이 찍어주는 별 도장(잘하면 2개를 찍어줬다.)이 좋아서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다 한 번은 일기장에 '다음 수업에서 친구들에게 이 일기를 읽어주고 싶다'는 코멘트가 달렸다. 나는 쑥스럽기도 하면서,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키가 작아 맨 앞에 앉았는데, 선생님이 일기를 읽어주실 수 있도록 책상위에 일기장을 올려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내 일기는 읽혀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선생님은 까먹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상처뿐일테니 굳이 알려들진 말자.. 


내가 이모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를 했던건 초등학교 4학년때쯤이었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인사를 먼저 한 것도 그래서였다. 나는 좋은 어린이였다. 학교를 빠진 적도 한 번도 없었고, 머리는 단발 아니면 하나로 질끈 묵었었다. 앞머리는 없었다. 그건 날라리들이 하는 건 줄 알았다. 숙제는 매번 했고, 시험에서도 어느정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고, 학교에선 공부잘하고, 집에선 엄마를 돕는 착한 아이. 나는 그런 아이이고 싶었다. 학교에선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좋은 어린이라고 가르쳤다. 학교에서 먼저 큰소리로 인사하는 친구들에게 선생님은 칭찬을 했고, 나도 칭찬 받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인사 잘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이 됐다. 나와 친하던 아이들은 다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반에 아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어른들에게 칭찬받으려고 인사하던 아이였을 뿐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한 치수 큰 교복을 단정히 입으며 흰 속옷과 흰 양말을 챙겨 입고, 까만 가방을 메고 까만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는 '다른 학생의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학생'일 뿐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라기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방과후면 학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아이들과 오며가며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리 친하진 않았다. 아무도 나를 따돌리진 않았고, 쉬는 시간 함께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수행평가를 앞두고 함께 준비하긴 했지만 내가 찾아가 모여 앉는 일은 없었다. 여느날처럼 나는 내 자리에 앉아 급식을 먹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책상을 움직이거나 자리를 바꿔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담임선생님이 그걸 봤다. '왜 아무는 혼자 먹나?' 해병대 출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담임 선생님은 강제 공동체마인드를 주입했다. 점심시간에 저 애를 혼자 두면 모두에게 벌을 주겠다고.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너무 아득했다. 나는 혼자 밥 먹는게 누군가에게 먼저 '함께 먹자'고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얼른 밥을 먹고 다른 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으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그 발언 이후 나의 성격은 '교정'돼야 했다. 적극적인척 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이 괜히 또 저러실까봐.... 여기서 같이 먹어도 돼?' 말을 하고 함께 앉아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첫날부터 온갖 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인싸인척을 했다. 나는 앞으로 절대로, 혼자 밥을 먹는 아이가 되진 않을거야. 생각 외로 나는 외향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을 잘했고, 외향적인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점점 더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로 변했다. 적극적인 성격은 사회가 모범이라 부르는 성격유형이었고, 내가 사회 주류적 성향으로 변했다는 게 내심 뿌듯했다.


대학교 1학년이 나의 인싸력이 극에 달했을 때였는데, 나는 같은 과 동기들(80명)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을 넘어서 경영대학의 최강 인싸로 거듭나고 싶었나보다. 온갖 학과 행사와 경영대 행사에 참여했고, 모임일정을 주로 잡았고, 어딜가도 내가 중심이어야 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게 내 존재감의 확인 같은 거였고, 그게 정말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점점 지쳤다. 거짓말은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부르듯이, 나의 과장된 적극성은 점점 더 당연스레 요구되었다. "아무는 항상 밝아서 보기 좋아." "아무는 에너지가 넘쳐서 옆에 있으면 덩달아 힘이 나" 그 좋은 칭찬들이 어느 순간 '밝아야만 좋은 사람', '에너지가 있어야 옆에 있고 싶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밝고, 에너제틱해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걸까.


 그즈음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는 미션이 유행처럼 번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말했고, 자기 소외나 감정노동이라는 개념도 드문드문 들려왔다.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내가 쓴 밝고 에너제틱한 가면 속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일때 나는 분명 행복하고, 들뜨고, 밝고, 힘이 넘친다. 하지만 매순간 그렇진 않다. 나에게도 에너지의 한계량이 있고(심지어 평균보다 적을듯), 힘이 나지 않는 때가 있다. 나는 밝은 사람인가, 아니면 혼자 사색에 빠지는 고독한 사람인가. 왠지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진짜 나인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이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요즘의 나는 부러 애써서 밝은 척하려하지 않는(으려 노력한)다. 항상 웃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말에 톤을 높여 맞장구치지도 않는다. 모든 모임마다 끼고 싶어 안달나지도 않는다. 2차는 기본이고 3차가 옵션이라며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임의 마지막 사람이 집에 갈 때까지 남아서 마치 내가 호스트인양 굴지도 않는다. 대단히 민폐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편했다. 이게 나였다. 


'버스엔 앞문 뒷문이 없다'는 말이 좋다. 모두 옆문일 뿐이다. 험담은 앞뒤의 정당함을 구분해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내가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지, 그 거리의 문제가 아닐까.
솔직하지 않아도 괜찮다. 솔직할 수 있는 상대에게 털어놓으면 되니까. 이따금, 뒷담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순간 그렇진 않다. 어떤 자리에서 나는 신나서 떠들고, 2차! 3차!를 외친다. 지칠 때쯤 쿨하게 '나 먼저 갈게' 말하고 돌아선다. 안 만난지 너무 오래됐다고, 날 잡자고 주도하기도 한다. 그것도 나다. 나는 하나의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소심해서 낯을 가리지만, 어떤 분위기에선 처음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편하다. 속내를 금방 드러내고, 웃고 떠든다. 어설프게 맺고 있는 관계가 더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런 불편한 경험들은 다른 편한 사람들과의 수다로 푼다. 나는 이토록 일관성 없는 사람이고, 그 둘 다 진짜 마음이 내키는 데 어쩐담. 소심한 사람이라고 항상 일관되게 소극적이고, 내향적이진 않다는 작가의 말이 위안이 된다.


프롤로그의 내용에 힘이 많이 실린 책인 건 사실이다. 책 초반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고, 뒤로 갈수록 쳐지긴 한다. 결론으로 치닫기 위해 무리하게 수렴해가는 과정이랄까. 약간의 억지와 자기합리화같은 구석이 있긴하다. 그래서 모두가 읽어볼만한, 소심인이라면 꼭 읽어야할 책이라고 추천은 못하겠다. 소심인이라면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보길 권한다. 책 초반만 읽고 지루해져서 덮는다하더라도, 조금의 위안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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