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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11. 2020

나는 조금 더 촘촘할 뿐이야

연례가 되어버린 심리검사 1

내가 너무 유별난가, 혹시 사회부적응자인가... 내 모난 성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최근들어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는 지금 몸 담고 있는 조직은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없는데, 간간히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들이 계속 내 마음에 콕콕 박혀서 묵직한 돌덩이처럼 얹어지는 기분이 든다. 전 직장과 지금 직장의 공통점은, 조직과 나의 괴리감이다. 두 조직 다 후원을 하는 회원들이 있고, 그 돈의 일부를 내 급여로 받는 구조다. 100%는 아니고, 나는 나대로 수익을 발생시켜 내 급여를 충당하긴 하지만, 다달이 후원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자체가 그리 쉽진 않다. 그들은 조직에 대한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으려하고, 그러다보니 그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는 나와는 다른 위치라고 느낀다. 사실상 사용자가 없는 조직임에도, 나를 뺀 모두가 사용자로 느껴진다. 원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순간 결정권자들의 의견에 묵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또 이직 뽐뿌가 치솟았고, 나는 왜 오래 버티지 못하는가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 구조의 조직 자체가 나랑 안 맞는걸까? 이런 구조가 아니면 뭐가 있지? 왜 나는 못 견디게 싫은 것들이 남들 보다 많지? 나는 왜 못 견디지..? 


내 탓은 하지 말아야지, 작은 문제를 못 견디는게 문제가 아니라, 작더라도 문제가 있는 게 문제지... 뭐 그런 주문을 되뇌어봐도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과연 나한테 꼭 맞는 직장이 있긴할까..? 다들 그런게 없어서 그냥 참고들 다니는걸까.. 원래 직장은 안 맞는건가.. 그럴바엔 돈이나 많이 주는 직장을 찾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직을 하더라도 나에게 맞는 일이 뭔지를 알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을 볼까? 사주를 볼까? 심리검사?


그러던 중에 지인이 "성격검사자 모집! 장소 대여비랑 검사비 정도만 지불하면 돼~" 혹하는 마음에 번쩍 손을 들었다. 검사자는 내가 2년쯤 전에 역할치료를 받았던 분이다.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고, 실습 시간을 채우려 무료로 진행해주셨다. 사실 나는 앞서 말했듯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라, 남들 앞에서 내가 아닌 역할을 연기하는 게 너무 낯설고 힘들다. 어찌어찌 과정을 마쳤으나, 검사자에게 후기로도 말했다. 나는 이런 역할극은 힘들다고.. 남들앞에서 내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 어렵다고.. 그런 내 사정을 감안해서 이후 1:1 심층상담을 해주겠노라하셨지만, 연극치료 직후라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또 인연이 닿아 1:1 상담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렵지 않게 일정을 잡고 첫 만남. 들어보니 성격검사보다는 심리검사에 가깝다고 하신다. 간단한 내담자 서약과 인적사항을 기입해드리고는 근황토크를 진행했다. 이번 심리검사는 현재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라서, 나의 최근 고민에 대해 오랜시간 들어주셨다. 총 4개의 심리검사를 진행할 예정이고, 현재 3개의 문항지를 받아왔다. 이 문항지를 분석해서 해설하겠지만, 그 해설은 내 고민들이 반영되어져야 더 효과적이라서 첫 상담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직장과 가족과 친구 등 장르를 망라하는 내 아무말 대잔치를 인내심있게 들어주시고, 맞장구와 위로의 말도 던져주셔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힐링이었다. 간만에 속이 시원하게 쏟아낸 느낌. 그거면 됐다고 하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을 위해 애써주시는 그 마음이 참 좋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한 거 맞아요. 그게 뭐 어때서요? 원래 세상은 예민한 사람들이 바꿔 온 거 아닌가요?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체가 촘촘한 거에요. 그냥 체의 모양이 다른 것 뿐이에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


첫 날 받은 진단(?)은 다른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기준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도 마음에 들고, 저것도 마음에 들다가도, 하나가 맞지 않으면 금방 걸러져버린다고. 나는 예민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촘촘하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과 기준이 다른 것일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체가 허술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촘촘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들이 물론 현저히 적겠지만, 그렇다고 잘못은 아니다. 물론 그럼으로 인해 더 외로울 순 있다. 그걸 원치 않는다면 기준을 낮추는 노력을 하면 된다. 


꽤나 날카로운 진단에 금방 수긍해버렸다. 그리고 덧붙인 하나의 진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좁은 틀을 다른 사람을 탓하고 마는데 나는 자꾸만 자기검열로 돌려버린다. 내 탓인가, 내 잘못인가. 어떤 상황에 닥쳤을때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행동이다. 그것 자체로 바뀔 준비가 돼 있다는 좋은 신호다. 하지만 전부 내탓으로 몰지는 말 것. 그것이 당부였다. 


간만에 마음을 터놓은 좋은 시간이었다. 몇 번 안 해본 초보 내담자의 입장에선, 누군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을 얻는다. 그게 치유의 시작인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상담사의 마음 건강이 염려스러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토해내는 내 얘기들이 버겁진 않을까.. 괜찮다는 말에 아주 조금 안심했지만, 그래도 염려스럽긴 하다. 상담사도, 나도, 건강하게 심리검사를 끝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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