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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14. 2020

여성의 몸은 꼭 아름다워야 하나요?

건강한 몸을 위한 운동, 첫 주의 기록

흔하디 흔한 새해 다짐처럼, 나 역시 올 한 해 건강한 몸을 가져보고자 헬스장을 등록했다. 사실 그 전엔 대충 근처 천변이나 뛰고 올까 싶었는데 계기가 있긴 했다. 요즘 남편이 바빠 아주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온다. 혼자서 저녁을 차려먹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느날은 볶음밥이었나? 저녁메뉴의 소스재료로 굴소스가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굴소스를 꺼내서 뚜껑을 여는데, 여는데, 여는데, 안 열린다. 수건으로도 감싸고, 뜨거운 물로도 녹여보려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줬는데, 손목이 아플 정도로 힘을 줬는데도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평소같았으면 남편에게 가서 "이것 좀 열어줘"하면 뽕하고 열어줬을텐데, 남편의 빈자리를 이런 것으로 느끼니 침울해졌다. 나도 힘 세지고 싶다. 몸도, 마음도 강해지고 싶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여자니까, 나는 체구가 작으니까, 타고난 힘이 별로 없는 것같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라 생각해왔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남자 혹은 힘센 여자들이 꽤 있었다. 힘센 여자들을 보면 부럽긴했지만, 내 포지션은 그게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힘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상황을 생각하니, 밥 먹기 전에 힘을 다 빼서 밥 먹을 힘도 없을 상황을 생각하니 더이상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올해는 나도 힘 센 여자 한 번 해보자. 불룩 나와버린 배와 더불어 이런 목적으로 다짜고짜 헬스장을 등록해버렸다.


도보 10분거리의 회사와 집 사이의 작은 헬스장. 대체로 회사가 끝나고 운동을 갈 것이고, 집을 지나쳐야 하는 위치라면 분명 집에서 발길이 멈출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 바로 앞의 헬스장으로 픽. 다른 것도 좋지만, 헬스하고 개운하게 샤워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좋았던 3년 전의 경험(한 3-4달 다녔을뿐이지만)때문에 헬스를 택했다. 작은 헬스장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운영하시는 분들도 친절하셨다.


첫 날은 등록하고 혼자 운동을 했고, 다음날은 OT를 해주셨다. 여성 트레이너분이셔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오티를 받았다.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처럼 남자 트레이너라면 서로 민망했을 부위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말씀해주시니 편했다. 그런데 하나, 정말정말 친절하고 잘 가르쳐주시고, 다부진 몸이라 부러움에 운동 욕구를 뿜뿜하게 하시는 것까지 모두가 좋은데, 단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의 운동=미용'일거라 으레 단정지어 버리시는 것.


나는 정말로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다. 단단하고 튼튼한 몸을. 우락부락할 정도로 운동을 하지도 않을 거겠지만, 설령 내 몸이 사회일반이 원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모델도 아니고, S라인을 내세우는 연예인도 아니지 않나. 내가 원하는 몸은 건강하고, 단단한 몸이다. 나 하나 간수할만큼의 근육과 힘이 있는 몸.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트레이너분은 "한국여자들은 안그래도 가슴이 작은데 이 운동을 하면 가슴이 더 작아보일 수 있으니 1-2주에 한번만 하시는게 좋아요", "이 운동을 꾸준히 하시면 옷태가 훨씬 좋아질거에요", "훨씬 여성스러운 몸매가 되실거에요" 등의 조언을 해주신다.  무슨 동작하나 설명할때마다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을 거침 없이 드러내셨다. 이왕하는거 몸매도 예뻐지면 좋은 거 아니냐고? 나는 그 '예쁨'의 기준이 바뀌었으면 좋겠고, 그렇기에 그 기준을 따르고 싶지 않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치고 들어오니 '전 여성스러운 몸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몸을 원하지도 않아요. 그냥 건강하고 균형있는 몸을 갖고 싶어요'라고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타이밍을 놓치고도 말하자니 '굳이' 과민해보일까 걱정스럽고, 그렇다고 계속 듣고있자니 곤욕스럽다. 결국은 말하지 못했다. 뭐, 나쁜 사람 같진 않으니까,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일테니까.. PT까지 염두에 두고 등록했는데, 이런 경험을 하고나니 PT까진 받지 말까싶어졌다.


이미지 출처: 1boon, 퀴즈코리아, '초성만 보고 무슨 동요인지 맞혀보세요'


획일화된 몸에 대한 미의 기준들. 나의 몸은 사회일반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키가 크진 않지만 비율은 좋고, 말랐지만 허벅지와 골반은 다부지고, 가슴은 볼록 허리는 쌜록'의 공식과 애초에 거리가 멀다. 키도 작고 비율도 좋지 않은데다, 상체는 마르고 하체는 튼실하고, 가슴은 없고 먹는 족족 배만 나온다. 이런 나의 몸이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잘못된 자세때문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플때다. 옷태가 좀 덜 난다고, 남들이 원하는 몸매를 갖추지 못했다고 내 몸을 싫어했다면 안그래도 없는 자존감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나는 실수도 하고, 가끔 남들에게 피해도 주면서 살기 때문에 나를 미워할만한 순간들이 피하고 피해도 많다. 거기에다 타고난 내몸에 대한 부정까지 얹고 싶진 않다.


한때는 나도 일명 '쭉쭉빵빵'의 아이콘이고 싶었다. 배꼽을 드러내고 쫙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은 소녀시대의 몸매를 보면서, 되지도 않는 윗몸일으키기를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점점 깨닫게 되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그런 몸일 수는 없다는 것. 노력으로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의 몸은 칼을 대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칼을 댄다해도 비율 같은 선천적인 부분은 결코 달라지지 못한다. 무엇보다 쭉쭉빵빵은 결코 건강한 몸이 아니다. 적당히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을 섭취해주고, 균형을 유지할만큼 운동을 해주는 것이 건강함의 원천이다. 앞자리가 5만 되면 세상이 무너지는 여자아이돌들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순 없다. 심지어 그들은 많은 건강관리를 받겠지만, 다달이 수백만원씩 할 관리를 내가 무슨 수로 받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할 것이다. 덜 아프고, 덜 상하게 아껴줄 것이다. 옷태도 안 나고, 매력적인 몸매도 아니지만 맛있는 걸 거리낌 없이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기에 충분한 몸이다. 남들의 눈 보단 내 건강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여성스러운 몸 말고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야지.


아무쪼록 다음주에도 빠지지 말고 운동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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