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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Feb 20. 2020

여성의 노동은 왜 저렴할까?

자이언트펭수 [EP.91] 펭수 선생님 되어뜸미다!!!!!!!! 후기

좋아하는 콘텐츠인 자이언트 펭수가 돌봄전담사를 체험한 에피소드를 올렸다. 펭수의 컨텐츠는 되도록 챙겨보는데, 더 관심있던 내용이라 유심히 보게됐다. 


나는 돌봄전담사들의 처우와 관련된 일을 했었다. 학교에서 일하지만 교사는 아니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겐 '선생님'이다다. 임금은 최저임금이고, 심지어 초단시간(주15시간 미만)으로 부려지기도 한다. 일명 '메뚜기 뛰기'를 하면서 여러 돌봄교실을 동시에 돌보는 이들도 있다. '멀쩡한 직장'으로 여겨지는 학교, 아이를 맡아 돌보는 학교, 점점 더 큰 책임을 요구받는 학교, 그곳에서 '고작 애나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돌봄전담사는 방과후-부모가 퇴근하기 전 보호자가 없는 공백을 메우는 사람들이다. 정규 교육과정이 오후 12시반에 끝나면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하교를 한다. 부모 중 한 명이 집에 있다면 집으로 가겠지만, 맞벌이부부가 50퍼센트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부모가 퇴근해서 1시간이 넘는 거리의 직장에서 돌아올때까지, 아이들은 어디서 뭘하며 그 시간을 보내야할까?


1. 육아보조원에게 부탁한다. 

대부분이 조부모일테고,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서 공동육아를 하거나, 베이비 시터를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다.


2. 학원을 보낸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학원으로.. 최소 2-3개의 학원 수업이 끝나야 퇴근시간이 맞춰진다.


3. 둘 중 한명이 육아휴직을 한다. 

법상 육아휴직이 1년까지 보장되는걸 감안했을때, 혼자 집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 아직도 7-8년이 남는다.


4. 둘 중 한명이 그만둔다.

누군가는 경력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게된다. 성별임금격차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걸 감안했을때, 경제적인 여건을 감안해서 비교적 저소득인 여성이 그만둘 확률이 높다(아이로 인해 경제적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돈을 더 많이 버는 쪽이 그만두기란 쉽지 않은 결정). 설령 남성이 그만두더라도, 둘 중 한명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야한다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5. 재량근로를 통해 부부가 번갈아 아이를 돌본다.

이게 가능한 회사가 우리나라에 몇군데나 있을까 싶다.


6. 내버려둔다.

이건 방법이 아니고.


7. 학교에 맡긴다.

맡아주기만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까?


그런 이유로, 가능한 아이들은 방과후 돌봄교실로 향한다. 그곳에는 돌봄전담사가 있고, 아이들이 학원 또는 집에 갈 때까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보안관이나 경비 등 치안 유지가 잘 되는 편이고, 환경적 유해요인도 통제가 된다. 아이가 돌봄교실에 가면 돌봄전담사는 방과후교실을 때 맞춰보내주거나, 숙제를 봐주거나, 별도의 놀이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시간맞춰 학원에 보낸다. 이러한 돌봄교실은 대기수요가 있을만큼 학부모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정책이다. 


돌봄교실 존재의 중요성은 부모들이 가장 잘 알고있다. 최근 한 동료가 돌봄교실에서 아이를 데려갈 시간을 놓쳤다. 돌봄교실이 끝나는 시간보다 15분정도가 늦어졌다. 돌봄전담사에게 15분만 더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상 거의 사정을 했다. 하지만 그 돌봄전담사는 자신의 일정때문에 어렵다고 했나보다. 그 동료는 전화를 끊고나서 “책임감이 없”다며 돌봄전담사를 비난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보호자가 없는 15분은 그렇게 중요한 시간이다. 그 사람이 노동자임을, 그 사람에게도 근로계약의 내용이 중요한 것임을, 그것외의 책임을 지울수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아이가 혼자 있어야하는 15분을 생각하니 애가 타서 한 말이다. 돌봄전담사에게 책임을 운운하는 행동을 이해 못할 부모가 어디있으며, 그 돌봄전담사가 퇴근이후에 자신의 시간을 반드시 할애해서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어디있나.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이 상황의 해답은, 돌봄교실이 좀 더 확대되는 것 뿐이다. 이렇듯 아이를 믿을 수 있는 기관(학교)에, 믿을 수 있는 사람(돌봄전담사)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펭수는 돌봄전담사를 하며 넉다운이 되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스무명 남짓의 아이들을 혼자 보는 일은 모든 기력을 소진하는 일이다. 한여름에도 인형탈 속에서 춤을 추던 펭수조차 힘들어 주저 앉았다. 고작 애 좀 보는 게 뭘 그리 힘드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영상이라도 좀 봤으면 싶다.

https://youtu.be/DoMTrkTVcFg


하지만 이렇게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는 너무도 낮게 평가된다. 일명 ‘천대’받는다. 30년을 유치원, 어린이집, 돌봄교실, 요양원 등에서 일해도 임금은 항상 최저임금 언저리다. 심지어 휴식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무급 초과노동을 당연시하니 따지고보면 최저임금 미만인 경우가 태반이다. 시간단위로 부려지며, 심지어 고용불안에까지 시달린다. 우리는 노동의 가치가 중요성, 책임, 노동강도 등에 따라 정해진다고 흔히 알고 있지 않나. 명색이 경영학부생에, 직업과 관련하여 인사관리 과목의 시험까지 치렀던 나에게 임금은 그러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돌봄전담사를 비롯해서 여성이 도맡아온 육아, 가사의 업무는 이러한 룰을 자연스레 빗나간다. 지지난해 남녀 성별임금격차가 37.1%로 OECD 최고수준이었다. 과연 여자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업군은 덜 힘들고, 덜 중요해서 그런걸까?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은 재생산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을 시작하고, 양육과 돌봄은 사회적 책임임을 밝히는 일과 같다. 

<혁명의 영점>, 실비아 페데리치


여자들이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우면 당신이 해보던가. 여자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사회는 귀기울인 적이 없다. '돈 많이 벌고 싶으면 그런 직업하면 되잖아'라고 쉽게 말하지말라. 돈 많이 버는 직업군에서 어떻게 여성을 거부하고 내쫓았는지 뻔히 알지 않은가. 육군이었나, 사관학교 졸업생 중 최고득점자가 여성이었음에도 일부러 점수를 깎아 남성을 최고득점자로 변경한 사례가 있었다. 일선에선 여전히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돼'라는 발언도 계속되고 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705500126&wlog_tag3=daum)


이런식의 채용성차별, 승진차별 등으로 여성들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육아출산등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면서 여성을 저임금 노동에 종속시키고 있는게 누군가. 과연 이것을 여성이 직업적 자유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같은 일을 해도 동일 임금을 주지 않는데다, “여자가 그 정도면 많이 받는거지”라는 인식을 당당히 드러낸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부수적일거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이 굳건한 와중에, 무슨 수로 여성들의 노동이 차별없이 평가받을 수 있겠는가. 여성이 쉬운 일만 했던 역사는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안팎으로 이중의 노동을 감내했다. 단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노동의 가치는 완전히 새롭게 다뤄져야한다. 성별에 따라 역할구분을 짓지 말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입직이 아닌 노동의 가치만을 제대로 따져야한다. 너무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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