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년을 위로해 줘>를 읽고
어딘가 도망가고 싶은 기분에 선택했던 책. 설 동안 읽었는데, 5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읽히고 재밌다. 적절한 도피처였다. 가짜 어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면서, 적당히 위로도 해준다. 병을 약인 것처럼 주는 책. 좋았다. 좋다! 많은 가짜 어른들이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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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란 안 하는 것만 뜻하는 게 아냐. 심리학에서는 재미있어도 그만둘 줄 아는 힘, 귀찮아도 힘들어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절제라고 말하거든. "
- "그렇지, 참." 바쁜 숨을 몰아쉬며 태수가 투덜댄다. "온만큼 돌아가야지. 괜히 많이 왔잖아." 겨우 몇 블록을 뛰었왔을 뿐이지만.
- 혼자라는 건 싫지만, 혼자일 때는 어쨌거나 울어도 되니까.
-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왜 나에게는 어려운 걸까? 지금 나는 변명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후회를 하고 있는 걸까? 나라는 녀석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 "하기 어려운 말일수록 빨리 털어놓아야 일이 안 커지지, 상대에게도 덜 미안해지고. 그런 걸 바로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하거든."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연우야, 자존심은 지구평화 같은 거야. 반드시 지켜 줘야 하는 물건이라고. 네가 너를 소중하게 대해야 남들도 나를 존중해."
- "내가 가출한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돈은 좀 보태 줄 것 같은데, 찾지는 않을지도 몰라. 툭하면 뭘 잘 잃어버린거든. 도로 찾는 건 못 봤어."
"그렇구나"
채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가출하게 되면 나도 데려가 줘"
"그럴까"
- "아 참, 그렇지. 오늘은 9월 두번째 일요일. 아무것도 안 궁금한데?" 한 손에 맥주 캔을 든채 엄마가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이 된다. "연우야 내가 좀 따지는 성격이니? 사람들은 말야 대답하기 곤란한 걸 모르면 따진다고 말해. 같은 질문을 하는데도 그래. 어떤 때는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고 하고, 참 명쾌 하시네요, 하면서 칭찬을 하거든. 근데 어떤 때는 참견 좀 그만 하라고 해. 하지만 상관 없어."라고 덧붙이며 캔을 기울여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엄마.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의 말이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9월 두번째 일요일. 그래, 나 빼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관심 없는 날.
- 채영이 벤치에서 일어나는게 보인다. 손을 뻗어 흔들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분명 속으로 강연우라고 소리 치고 있을 거야. 알 수 있어. 내 이름을 부르는 거지. 나는 그것을 어느 늦여름 별이 딱 한 개만 영롱 했던 밤의 비밀 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 그 비오는 밤 나와 애인은 우리 집 앞에서 키스를 하고 헤어졌었다. 나를 만나러 오던 그 애는 자신의 친구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키스하는 장면 앞에서 급히 몸을 숨겼다. 습기가 남아있는 옷에서는 체취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그날밤 그 애가 그 검은색 미니원피스에서 맡은 냄새는 키스의 체취였을까. 그애는 그 옷 속에 자신의 몸을 집어넣어 순간이나마 사랑하는 남자의 키스를 받는 여자가 돼보았던 것일까.
- 나는 욕망 꿈 이런 거 없어. 불리한 내 삶을 책임지면서 살 뿐이야. 이런 불리한 조건으로 굳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불량품이라고 모멸감 느끼며 살고 싶진 않아 나 같은 사람이 자존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그저 그것뿐이기 때문이야. 내가 두려워하는 건 불행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존엄이 망가지는 거거든. 근데 나 꼭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졌다거나 굴복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피한 것도 아니야 나는 내 방식대로 삶을 선택한 것이고 거기 당당하다는 것만 알아 줬으면 해.
- 어떤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을 겁내게 돼. 나에 대한 무슨 권력 같은게 그 사람한테 생기는 거야. 말이 되니 근데 그런게 있긴 있거든.
- 17 살이라면 어린 나이 일까?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이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다.
- 그리고 말이야 이제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는데도 최후에 남는 건 절망이 아니야. 미련이라는 이름의 희망인 거지.
- 근데 말이야 좀 마음이 아픈 건 있어. 그거 어떻게 보면 상처 있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거든.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의 권력 같은 거지.
- 삶을 다양하게 해석하여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도 싸움의 한 방식인 것이다. 혁명이란 다른 혁명에 의해 무너질 수 있어야 진정한 혁명이다. 또한 약함은 약함일 뿐이지만 스스로의 약함을 표현하는 태도는 강함이기 때문이다.
- "그래도 누군가는 재미없는 반장을 해야하잖아." 재욱형이 끼어들었다. "역할이란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역할을 안 하면 시스템이 안 굴러 가거든." 마리가 고개를 돌려 재욱 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얼굴도 약간 빨개졌다. "하지만 시스템이 틀렸을지도 모르잖아요." "대부분 틀려 있긴 하지." 시니컬한 표정으로 한 발 물러서는 재욱형. "잘못된게 있으면 그런 건 바뀌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뒤에서 불평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발뺌하는 애들 전 그런 애들이 더 답답해요. 똑똑한 애들이 더 그런 거 같아요. 비판만하고 자기 할 건 다 했다는 식. 나름 우월감을 느끼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