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책 후기. 정재승, 열 두 발자국
작가가 했던 강의 중 12개를 추려 책으로 엮어냈다. #뇌과학자 이기에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 양상들을 뇌과학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책만 봐도 느껴지는데, 강의를 아주 기깔나게 잘할 것 같아서 찾아보니 유튜브에도 이미 영상이 올라와있다. 상당한 강의력의 소유자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상당히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누굴 가르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나와,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에선 지식의 한계가 너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에 있다. 누굴 가르칠만한 사람의 자격이 뭘 기준으로 정해지는 지는 잘 모르겠으니 패스. 우선 나는 내 지식의 깊이에 자신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이 서른쯤되면 누군가에게 주저없이 설명할만한 전문적인 지식이 하나쯤 생길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흔이고 쉰이고, 나이만 먹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말 잘한단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인데, 말을 잘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단지 말의 포장에 능한 사람들은 말이 길어질수록 내용이 얽히고설키질 않나,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용은 공허한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내용에 자신이 없을수록 포장에만 신경쓴다는 생각.
하지만 이 작가는 강의의 내용이나 표현들이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내용도 너무나 충실한데다 과하지 않은, 친숙하고 편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학술서를 쓸때와는 달리 강의는 동시성을 지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와닿는 표현들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청중들이라면 그 수준에 맞는 어휘를 사용하는 게 맞겠지만, 대중을 향한 강연은 그럴 수가 없으니. 그런면에서 책을 읽을수록 작가의 내공이 느껴져서 감탄을 마지않았다. 멋져벌임.. 반함.. 내가 알던 교수들은 본인 외엔 아무도 못 알아듣게 일부러 강의하나 싶었는데 ^^
정말 똑똑한 사람의 지혜가 담긴 열두개의 세션을 심지어 재밌게 읽었다. 2019년 1월에 읽은 책들 중 2위로 꼽는 책. (TMI-1위는 세여자)
(...)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혁명은 이상만으로, 믿음만으로, 열정만으로, 실천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합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데이터 과학자의 일자리는 늘어나고 연봉은 크게 오르겠지만, 단순노무자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연봉 또한 낮아지겠지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기술 관련 직종이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단순 업무라서, 사라진 일자리에 종사한 사람들이 새로 생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많다는 말은 공허합니다.
사라지는만큼 생길거라는 단순한 낙관 보다, 모든 일자리가 대체될 거라는 대책 없는 비관 보다 현명한 통찰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줄어드는 일자리만큼이나, 그 일자리에 누가 앉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한다. 노오력하면된다는 희망론으론 부족하다. 결국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권력은 집중될 것이다. 삶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라는 겁니다. - 179p
(...) 새해 결심은 왜 늘 실패하냐고요? 내년에도 새해는 오니까요.
내 결심이 실패한 이유를 찾았다!
문제는 결핍의 덫(scarcity traps)에 걸렸을 때 일어난다. 한 가지 일이 해결되고 나면 다른 긴박한 일이 생기고,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든 갑자기 생겨난 것이든 그 이상의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든다. 설상가상의 상황이 반복되는데, 마치 저글링을 하는 것과 같다. 결국 여러 개 공 가운데 땅에 떨어지려는 공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모든 게 엉망이 된다. 그렇다고 갑자기 저글링을 멈출 수도 없다.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결핍의 경제학》
“이런 문제는 신중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가 이유였던 거죠. 그래서 결국 그해에 결정이 안 났어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말에 누가 반대를 하겠어요? 이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나 옳은 명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결정 자체를 못하게 해서 변화를 막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지요. 얼마나 신중해야 신중한 것인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듭니다.
신중함이 절대적인 미덕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는 기민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기회들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중함이라는 모호한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실패하지 않을 계획이나 기약 없는 신중함.. 그런 모호하고 답 없는 요구는 많은 조직에서 나타나는듯 하다. 신중함과 결정 못함의 구별이 없는듯도 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민족이니 신중함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결국 신중하자는 끝에는 가장 보수적인 결정(하던대로만 하자)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최근에는 민첩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듯한데,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
‘가끔 나의 이야기는 이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Six Walks in the Fictional Wo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