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저, '세 여자' 후기
세 명의 #여성활동가 #허정숙 #고명자 #주세죽 의 삶을 담은 #팩션 이다. 그들의 조각난 삶을 잇고 붙이고, 상상을 더해 지은 #소설 . 어디서든 자신을 숨기고 흔적을 지워야했던 이들이기에, 이들을 기억할 단서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각조각 흔적들을 꿰메어 살을 붙인 작가의 이야기는, 물론 100퍼센트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들을 기억하기에 중요한 흔적이 되는듯하다. 그들의 자취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후문을 들으니 작품의 탄생도 이 여인들의 삶만큼이나 순탄치 않았겠구나 싶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 대신 <사서삼경>을 읽은 모양이야.”
“남자들 끼리끼리 하는 혁명 말이죠? 나는 가부장 의식으로 머릿속이 꽉 들어찬 남자들이 계급해방이니 민족해방이니 하는 말들 안 믿어요. 인정 안 해요. (...) 밥하고 빨래는 여자들 시키는 혁명이라면 나는 사양하겠어요.”
“차별 없이 평등하자면서 이게 뭐야? 조선공산당이나 공산청년회나 간부 중에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멀쩡히 같이 토론하다가도 밥 먹을 때 되면 여자들한테 밥해오라 그러고 말이야. 상투 틀고 곰방대 빠는 양반들이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지. 공산주의 하자는 젊은 남자들이 그러는 데는 정말 배신감이 느껴진다니까.”
(...) 그리고 질의응답 란의 변호사 답변 원고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답: 본남편이 불응하면 이혼할 수 없으며 본남편이 고소하고 나온다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정숙은 원고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채 서랍을 정리했다.
“형사책임이라니, 애 낳고 살았다고 감옥살이하란 거야? 나 원 참, 더러워서.”
(...) 정숙은 꾹 다문 입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녀는 처음 아버지에게 도전했고 첫 회전에서 승리했음이 분명했다. 그해는 기미년이었고 그것도 일종의 만세운동이었다. 거리에서 여럿이 부르는 만세보다 집 안에서 혼자 부르는 만세가 더 어려운 법이다.
#여성 의 설자리라곤 손바느질하는 아낙들의 사랑채뿐이였을 시대에 여성이자, 인간이자, #혁명가 이길 추구했던 이들의 삶은 얼마나 험난했을까.
(...) 막상 아이가 죽었을 때 그녀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불행의 무게에 비해 죽음의 무게가 오히려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이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
그 덕에 이런 시대나마 살고 있음을 읽는 내내 상기하게됐다. 고맙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이 시대가 충분하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나마도 이런 시대를 만들겠다고 몸 바쳤던 이들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다. #유관순 만큼이나 기억해야할 이름들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단체, 지명 등이 많이 등장해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이 풍부한 사람이 읽기에는 그 자체로 더 없이 좋을테고, 나처럼 무지한 사람이 읽기엔 조금은 생경하지만 좋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한다. 일일히 찾아보며 학습한건 아니었고, 간혹 궁금한 것들을 찾아볼 따름이었다. 완전히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이 책을 읽고나니 근현대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은 남는다.
“당신 날 사랑해요?”
“사랑하오.”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좀 오래됐소.”
“경성에서부터?”단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자유전卿子有田! 마땅히 농사짓는 사람이 자기 논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분 귀천도 없고 누구나 똑같이 농토를 나눠 가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우리 작인들이 다 자기 농사만 지으면 양반댁 농토는 누가 지어주나”하고 양반댁 걱정부터 했다.
자칫 지루한 혁명가의 일대기였을 수 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잘 다뤘다. 내가 느낀 충만하고 감동적인 기분을 글로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 ... 정말 사정이라도해서 읽게하고 싶은 책이다. 이 마음만은 알아주시길...
총평, 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