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ildren of Sanchez』 by Oscar Lewis
학교를 졸업한 뒤 30여 년 동안은 주로 경영·경제 관련 서적을 읽어왔다. 전략, 마케팅, 혁신, 최적화와 같은 주제가 독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몇 해 전부터는 의외로 인문학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은퇴 이후에는 경영·경제 분야의 책은 거의 손에 잡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관심의 전환이 이루어지다 보니, 책장에 꽂힌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삼아 차근차근 시도해 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첫 손에 든 책이 바로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이다.
⟪산체스네 아이들⟫은 1950년대 멕시코시티 빈민가에 살던 한 가족의 삶을 기록한 인류학적 르포르타주로 정의된다. (부제: 빈곤의 문화와 멕시코 가족에 관한 인류학적 르포르타주)
(❮The Children of Sanchez❯ by Oscar Lewis, 1961, Random House)
☞ 초판: 1961, Random House | 한국어판: 2013, 이매진
☞ 저자: 오스카 루이스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 1914-1970)는 미국의 인류학자로, 빈곤 문화 이론가로 알려짐.
경력
- 1914.12.25. 뉴욕시, 유태인 랍비의 아들로 태어남
- 1940년 콜롬비아 대학 (인류학 박사)
-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서 인류학과 설립에 기여, 1970년 사망 시까지 재직
주요 연구
-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쿠바 등)의 빈민 가족들 대상 현장 연구 수행.
- 1959년 <다섯 가족: 빈곤 문화에 대한 멕시코 사례 연구> 발표, "빈곤 문화" 개념을 처음 소개
- 1961년 <산체스의 아이들> 출간, 큰 반향을 일으킴
- 1966년 <라 비다: 빈곤 문화 속 푸에르토리코 가족>으로 미국 국가도서상 수상
빈곤 문화 이론
- 빈곤은 단순한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독특한 하위문화"라고 주장
- 빈곤층은 ❲무력감, 의존성, 열등감 등❳의 특징적인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가진다고 봄.
- 이 이론은 1960년대 미국의 빈곤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빈곤층을 비난한다는 비판도 받음.
책의 구조와 방법론
- 오스카 루이스가 4년(1956~1959)에 걸쳐 산체스 가족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 아버지 헤수스 산체스와 그의 네 자녀(마누엘, 로베르또, 꼰수엘로, 마르따)의 1인칭 서술로 구성되었다.
저자가 서문을 통해 직접 기술한 내용이 책의 전체적 연구 방법론과 기술 형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은 멕시코시티에 사는 어느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다. 쉰 살 난 아버지 헤수스 산체스와 그 자식들 네 명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들 마누엘은 서른두 살, 로베르또는 스물아홉 살이며, 딸 꼰수엘로는 스물일곱 살, 마르따는 스물다섯 살이다.
이 글을 쓴 목적은 독자들에게 가족생활의 내면을 보여주고, 아울러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빈민가의 단칸방에서 자라난다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나는 1943년 이후 멕시코에서 조사 작업을 하면서 여러 차례 가족 연구를 시도했다. 《다섯 가족》이라는 책에서는 독자들에게 멕시코시티의 평범한 다섯 가족이 닷새 동안에 겪은 일상적인 생활을 보여줬다. 이제는 그중 한 가족의 생활을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쳐 보이려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을 써서 그 가족의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자기의 생애사를 털어놓게 했다. 이런 방식을 쓰면 각 개인이나 가족 전체, 나아가 멕시코 하층 계급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모습을 누적적이고도 다면적으로 파노라마처럼 살필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이라 하더라도 여러 식구들이 제 나름대로 다르게 보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만 맞춰봐도 그 많은 자료들이 얼마나 믿을 만하고 타당한지 검증이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자서전에 들어 있는 주관성이 얼마간 들통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식구들 간에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 지도 알 수 있다." (2013년 한국어판 17쪽 '책머리에' 글 중에서)
책 리뷰
오스카 루이스의 저서 ⟪산체스의 아이들⟫은 멕시코시티 빈곤층 가정의 삶을 기록한 대표적인 인류학 연구이다. 저자는 한 가족 구성원의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빈곤의 문화(Culture of Povert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책은 산체스 씨와 그의 자녀들이 각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독자는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가난이 개인과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이 중심 서사를 이끌어 간다.
헤수스(Jesus Sanchez): 가장으로서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빈곤과 사회적 억압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을 보여준다.
로사(Rosa): 여성으로서 전통적 성 역할과 억압을 겪는 과정을 통해, 가난 속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드러낸다.
마누엘(Manuel): 교육 기회 부족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범죄와 폭력에 휘말리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리타(Rita): 가난 속에서 성장하는 여성으로서 다양한 사회적·성적 어려움에 직면하며, 여성의 취약한 위치를 반영한다.
⟪산체스의 아이들⟫은 단순히 한 가족의 기록을 넘어, 빈곤이 세대를 관통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이자, ‘빈곤의 문화’라는 논쟁적 개념을 학문적으로 제기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독자가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경험하도록 하며,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보다 감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느낌이다.
주요 주제 요약
가난과 생존: 가족 구성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교육과 기회의 부재: 자녀들은 교육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해, 부모 세대의 가난이 되풀이된다.
폭력과 억압: 가정 내 폭력, 범죄,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억압이 일상적으로 지속된다.
사회 구조적 장벽: 계급 이동이 사실상 차단되어, 빈곤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족의 유대와 갈등: 서로 의지하며 생존을 도모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관계를 유지한다.
생각해 볼 지점
(1) 빈곤의 문화 이론과의 연관성
오스카 루이스는 ⟪산체스의 아이들⟫에서 ‘빈곤의 문화’ 개념을 제시하며, 빈곤층이 공유하는 특정한 행동 양식과 가치 체계를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층은 낮은 경제적 기대, 교육에 대한 불신, 가족 해체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세대를 넘어 계승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학계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학자들은 루이스가 빈곤층을 고정적이고 변화 불가능한 집단으로 묘사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 제도적 한계와 같은 구조적 요인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2) 구조적 요인 vs. 문화적 요인
빈곤 문제를 해석하는 데에는 두 가지 주요 접근 방식이 있다.
구조적 접근: 빈곤은 경제적 불평등, 낮은 임금, 불충분한 교육 제도, 사회적 차별 등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지속된다고 본다. 즉, 사회 구조 자체가 개인의 기회와 성공 가능성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접근: 빈곤층 내부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행동 패턴이 오히려 가난을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이 책은 빈곤층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시도에서 탁월한 접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관찰 대상자들의 사생활 보호 문제나 사회적 낙인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는 점은 반드시 숙고해야 한다. 빈곤의 문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들을 규정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이는 학문적으로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점은 인권 감수성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특정 개인과 가족의 삶을 구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빈곤 문제를 감성적으로 전달한다는 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빈곤을 이해할 때 구조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사회 정책적 접근과 개별적 개입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 역시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 소위 ‘새마을운동’의 한복판에서 성장해 왔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을 읽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이야기이자, 늘 곁에서 마주했던 이웃의 삶이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마을을 떠나 도시로 흘러간 친구들, 그러나 그곳에서도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현실은 이 책 속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 책은 오늘의 아픈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에게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가 책임 있게 노력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함께 감상하기]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The Children of Sanchez)
☞ 주연: 앤서니 퀸(Anthony Quinn)
☞ 감독: 홀 바틀렛(Hall Bartlett)
☞ 음악: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 1978년에 개봉한 멕시코-미국 합작 드라마 영화
주요 출연진 및 내용
- 앤서니 퀸(헤수스 산체스 역)
- 루피타 페레르(산체스의 맏딸 꼰수엘로 역)
- 돌로레스 델 리오(할머니 파키타 역)
- 척 맨지오니(재즈 뮤지션, 영화 음악): 그래미상 수상
https://youtu.be/9-fgpG8yMT8?si=Lx6Ygu-mplfWRmJY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은 1978년에 발표된 영화 사운드트랙이다. 실제로 이 음악은 영화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학 재학 중, 학교 방송국 PD로 활동하며) 이 곡의 연주 파트를 특정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했던 기억도 있을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곡이기도 하다.
라틴 풍의 재즈 사운드와 팝적 요소가 조화된 이 곡은 맨지오니의 플루겔혼 연주가 돋보인다.(어느 누군가는 재즈 트럼펫 연주가 마일스 데이비스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단독 사운드트랙은 총 80분이 넘는 더블 앨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이 80년대 학교방송국에는 보관되어 있었다. 개인적 소장은 하질 못했다)
영화의 시작 시퀀스에서 연주되는 타이틀 트랙 "Children of Sanchez (Overture)"는 14분이 넘는 대곡이다. 돈 포터가 노래로 참여했다.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던 음악은 ⟪Consuelo's Love Theme⟫이다. 서정적인 이 곡은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https://youtu.be/Hmbtp_UPWCo?si=12-AduXTgMKJk_X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