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읽기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책장 정리 다섯 번째 것이다.
2025년 대한민국은 세계사적 흐름과 민족사적 관점에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윤석열 정권의 친위 쿠데타로 촉발된 민주 진영과 극우 진영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중심주의가 국제 질서를 뒤흔들며 우리의 입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평화의 시대가 저물고, 신(新) G2 시대의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한반도는 거대한 국제적 격랑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한명기 교수는 17세기 명·청 교체 시기가 한반도에 초래한 전란을 두 권의 저서에서 세밀한 고증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그는 병자호란을 비롯해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요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의 정리를 살펴보자.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요인에 대한 한명기 교수의 의견 정리]
【대외적 요인】
1. 강대국 간의 세력 변화: 기존 패권국의 쇠퇴와 신흥 강국의 부상 시기에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짐
(예: 명청교체기의 병자호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의 현재 상황)
2.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시기에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충돌 지점이 됨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 전쟁 등이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
3.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에 위치한 한반도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전쟁의 무대가 됨
(한반도가 ‘완충국가(Buffer State)’ 역할을 하면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
【대내적 요인】
1. 내부 분열과 갈등: 정치적 대립, 이념 갈등 등 내부 분열이 심화될 때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 증가
(예: 임진왜란 당시 조선 내부의 정치적 갈등, 한국전쟁 전 남북의 이념 대립)
2. 국가 지도력의 문제: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지도력의 부재가 전쟁 발발의 한 요인
(인조의 우유부단한 대응이 병자호란의 한 원인이 됨)
3. 자주국방 역량의 부족: 자체적인 방어 능력 부족이 주기적으로 전쟁을 초래하는 요인이 됨
(균형 외교와 자주국방의 병행 필요성 강조)
17세기 명과 청(후금)의 교체기 상황을 오늘날로 치환해 보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놀라울 만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이는 역사를 연구하는 저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책을 내면서>라는 서론에 해당하는 글에서 저자는 당시의 패전국 백성의 참상을 <안단>이라는 사람의 사례로 전체 글을 시작한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에서 이 글에서도 옮기면서 책 리뷰를 시작한다.
"1675년(숙종 1) 봄, 만주 벌판을 달려온 한 사내가 압록강의 중강에 도착했다. 사내의 이름은 안단安端. 청나라를 탈출하여 조선으로 향하던 도망자였다. 그의 역정은 기구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1636년, 안단은 청군에게 붙잡혀 심양으로 끌려가 노비가 된다. 그리고 1644 년, 청이 북경을 차지하자 자신의 주인을 따라 그곳으로 이주한다.
1674년, 오매불망 고국으로의 귀환을 열망하던 안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주인이 북경을 비웠던 것이다. 1673년 오삼계 등이 반란을 일으켜 강남이 혼란에 빠지자, 안단의 주인은 진압군으로 차출되어 강남으로 떠나게 되었다.
주인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안단은 탈출을 감행한다. 물경 38년 만의 시도였다. 북경을 출발하여 산해관을 통과하고 심양을 거 쳐 만주 벌판까지 무사히 가로질렀다. 탈출의 성공을 눈앞에 둔 안단은 의주의 조선 관리들에게 입국을 허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행운은 안단을 외면한다. 공교롭게도 의주에는 마침 청나라 칙사들이 입국해 있었다. 의주부윤 조성보는 안단의 사연을 칙사들에게 알렸고, 칙사들은 안단을 묶어 봉황성으로 압송해 버린다. 참으로 허망한 결말이었다. 끌려가면서 안단은 절규했다. '고국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 왜 나를 죽을 곳으로 내모느냐?' 고 말이다.
38년 만에 탈출을 시도했던 안단은 어찌 되었을까? 십중팔구 처형 되었을 것이다. 의주부윤 조성보는 이 불쌍한 궁조窮鳥를 보듬어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안단의 기막힌 사연을 떠올릴 때마다 병자호란이 남긴 고통의 그림자가 길고도 길었음을 새삼 절감한다."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권은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이 책은 17세기 조선과 후금(청) 사이의 외교적 갈등, 정치적 혼란, 전쟁의 과정과 그 이후를 조명하며, 단순히 사건의 나열을 넘어 다양한 관점에서의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기존의 역사적 평가들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고,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저자의 저술이 특출하다. 이 글에서는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분석하며, 이 책이 어떻게 병자호란을 재조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권에서는 병자호란이 발발하기까지의 과정이 면밀하게 분석된다. 저자는 조선과 후금(청) 사이의 외교적 갈등을 단순한 군사적 충돌로 보지 않고, 외교적 선택지의 한계 속에서 진행된 조선 조정의 정책적 대응을 강조한다. 17세기 초반 조선은 명나라와 후금(청)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내부의 붕당 정치와 외교적 현실이 맞물리면서 후금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조 정권의 명분론적 외교 정책이 현실적 외교와 충돌하며, 결국 전쟁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병자호란의 원인을 조선의 정치적 내분과 대외관계의 복합적인 요소로 분석한다. 흔히 병자호란의 원인을 조선 조정의 외교적 무능이나 명분론적 태도에서 찾지만, 저자의 연구결과는 당시의 외교적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즉, 조선이 후금과 친교를 맺을 경우 명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고, 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유지할 경우 후금의 압박이 심화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통해 조선 조정의 대응을 단순한 실패로 규정하는 기존의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2권에서는 병자호란이 발발한 후의 전개 과정과 그 이후 조선 사회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청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조선이 무력하게 항복한 과정과 삼전도의 굴욕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지만, 저자는 이 사건을 단순한 패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대안으로 바라본다. 이는 당시의 전황을 고려할 때 조선이 끝까지 항전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했음을 시사한다.
전쟁 이후 조선 사회의 변화에 대한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며, 전쟁이 단순한 국난이 아니라 조선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초래한 계기였음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변화로는 군제 개혁, 청과의 새로운 외교 관계 설정, 그리고 지배층 내부의 의식 변화 등이 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실리적인 외교 노선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이는 후일 북벌론의 형성과 그 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저자는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병자호란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분석한다. 유학자들은 전쟁의 참화를 기록하며 명분을 잃은 조선 왕실의 입장을 성찰했고, 이는 이후 조선 사회의 사상적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성리학적 명분론과 현실적 외교 전략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의 변화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단순히 승패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외교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울 수 있다. 병자호란은 단순히 조선이 치른 치욕적인 전쟁이 아니라, 이후 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한명기의 분석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며, 오늘날의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주는 통찰은 더욱 의미가 깊다.
" 오늘의 우리 또한 국제 정세가 격변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격변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이다. 그리고 그것을 웅변하는 용어가 바로 'G2'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정치, 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버금가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태풍의 눈이다." _<책을 내면서> 중에서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는 2013년이다. 당시의 시대상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이 급격히 심화된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명기의 평가는 더욱 정확했음이 분명해진다.
관련서적 : ⟪역사평설, 병자호란⟫ 1,2권 _ 한명기, 2013, 푸른역사
병자호란의 참상을 다룬 한국 영화로는 ⟪남한산성⟫과 ⟪최종병기 활⟫이 대표적이다. 이 두 영화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들은 한명기의 저서에서 더욱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영화 ⟪남한산성⟫의 역사적 배경은 한명기의 저서 제2권에서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다❳ 편을 참고하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잘 알려진 ‘삼전도의 굴욕’, 즉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배경]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청나라의 침공으로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후, 47일간의 포위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다.
[주요 인물]
- 인조 (박해일 분)
- 최명길 (이병헌 분): 이조판서로, 항복을 통해 나라와 백성을 지키자는 주화파
- 김상헌 (김윤석 분): 예조판서로,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는 척화파
다만 이 영화는 병자호란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만, 상당 부분 허구가 가미된 ‘현대적 시각에서 해석한 병자호란’임을 고려해야 한다. 당연히 정사와는 다른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영화 ⟪최종병기 활⟫
이 영화의 배경은 한명기의 ⟪병자호란⟫, 2권의 ❲청, 병자호란을 일으키다❳부터 ❲처참한 후폭풍❳까지를 다룬 내용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중심 주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잡혀간 포로들의 참상을 다룬 ❲피로인들의 고통과 슬픔❳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요 인물]
- 남이 (박해일역): 주인공으로, 활쏘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
- 쥬신타 (류승룡 역): 청나라의 명장으로, 남이와 대립하는 인물
- 자인 (문채원 역): 남이의 여동생이자 서군의 약혼자, 청으로 끌려가는 포로
- 서군 (김무열 역): 자인의 약혼자, 남이를 구하러 애쓰는 인물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는 역적으로 몰린 가문의 아들로, 여동생 자인(문채원 분)과 함께 아버지 친구인 김무선의 집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김무선의 아들 서군(김무열 분)과 자인의 혼례식 날, 청나라 군대가 마을을 침공하여 서군과 자인 등을 포로로 잡아간다. 남이는 뛰어난 활 솜씨를 이용해 청나라 군대를 추적하며 동생과 서군을 구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청나라 황자를 죽이게 되고, 이로 인해 황자의 삼촌인 쥬신타 대장(류승룡 분)과 대결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포로가 된 백성’들의 참담한 사연은 서두에서 언급한 ‘안단(安端)의 사례’와도 맞닿아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전 세계가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