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읽고...
신문에 실린 칼럼이 재미있다. 더불어 의미 또한 깊다.
칼럼에는 해리 G.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를 언급한다.
"거짓말쟁이와 정직한 사람은 서로 다르지만 적어도 진실에 대한 관심은 공유한다. 하지만 개소리쟁이들은 진실에 무관심하다"라는 의미로 인용하는 칼럼 문구가 인상적이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프랭크퍼트의 글은 언급되고 인용된다. 그의 글 『개소리에 대하여』도 부지런히 찾아 읽어야겠다.
아침에 읽은 칼럼이 촉발한 '개소리론'이 결국 오늘의 화두가 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그 개소리에 대한(혹은 관한) 책을 책장에서 꺼내 정리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다.
원제) 『Post-Truth: How Bullshit Conquered the World』
부제)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_ 다산북스, 제임스 볼(James Ball), 2020.
오늘날 우리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거짓이 공공 영역에서 공공연히 용인되는 시대, 즉 ‘개소리’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제임스 볼의 저서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이러한 현상의 구조를 분석하고, 개소리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확산되는지를 탐색한다.
이 책은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개소리를 탐구했던 해리 G. 프랑크퍼트의 『On Bullshit』('개소리에 대하여', 2005)와 연결되는 동시에, 보다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개소리의 확산을 설명한다. 특히, 가짜 뉴스, 음모론, 정치적 프로파간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분석하며, 개소리가 현대 민주주의와 공적 담론을 어떻게 훼손하는지를 논의한다.
볼은 개소리가 단순한 ‘거짓말’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소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개소리는 단순한 허위 정보가 아니다. 개소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든 상관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거짓말이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개소리는 아예 진실에 대한 관심 자체를 배제한다.”
이러한 개소리는 특히 정치와 미디어 환경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볼은 브렉시트(Brexit)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2016년 미국 대선을 중심으로 개소리가 공적 담론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사례를 분석한다.
1) 트럼프와 탈진실 정치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 역시 개소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객관적 사실보다는 지지자들의 감정적 확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이끌어갔다.
볼은 이를 ‘탈진실 정치(post-truth politics)’라고 명명하며, 개소리가 단순히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경고한다.
“개소리는 단순한 정치적 언술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 결국 이는 정치적 냉소주의와 불신을 초래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2) 브렉시트와 개소리
볼은 브렉시트 캠페인에서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개소리 사례를 소개한다. 그중 하나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 주당 3억 5천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있으며, 이를 NHS(국민보건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팩트’보다 감정적 설득이 우선시 된 결과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개소리의 가장 위험한 점은, 그것이 한 번 퍼지고 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진 후에도 말이다.”
볼은 현대 미디어와 소셜미디어가 개소리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알고리즘 기반의 정보 제공 방식이 개소리의 증폭을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1)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알고리즘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개소리는 단순히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확산되고 강화된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현재의 'X') 등의 플랫폼은 사용자들에게 ‘좋아요’나 ‘공유’를 많이 받은 정보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개소리가 더 널리 퍼지게 만든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객관적 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클릭하는 콘텐츠를 선호할 뿐이다. 그리고 개소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콘텐츠이다.”
2) 필터 버블과 확증 편향
또한, 소셜미디어 환경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형성하여,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접하도록 만든다. 이에 따라 개소리는 쉽게 반박되지 않으며, 사람들이 점점 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게 된다.
볼은 이러한 미디어 환경이 민주주의의 건강한 공론장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소리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볼은 다음과 같은 대응 전략을 제안한다.
① 팩트 체크의 중요성
볼은 팩트 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팩트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개소리를 믿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②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교육 시스템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하여, 사람들이 정보의 출처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의미)
③ 플랫폼 규제 강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조정하여, 가짜 뉴스와 개소리의 확산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볼은 궁극적으로, 진실에 대한 집단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소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단순히 개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방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제임스 볼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는 현대 사회에서 개소리가 어떻게 생산되고 확산되는지를 분석하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가짜 뉴스나 거짓말의 문제를 넘어,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정보 환경의 위기를 지적하며, 우리가 진실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개소리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진실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바로 인식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