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The Zone Of Interest>입니다.
영화는 <악의 평범성>을 넘어 <악의 정상성>에 관한 것입니다.
악이 악한 것은 잔혹한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악이 정말 악한 것은 평범한 얼굴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그렇게 행동했던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던 일군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의 글을 쓴 어느 인문학자 또한, 극히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오는 악의 얼굴을 <악의 정상성>이라 평가하며 경고하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옳은 얘기입니다. 악은 늘 정상성으로 위장하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영상 및 음악: https://youtu.be/1IuLpu8MNdU?si=i0B3fVr2fbrUK1X3)
영화가 시작되고 그러니까 어두운 화면에 제목이 떠오르다가 사라진 후, 느낌으로는 거의 3분여 동안 암막의 화면에 소리만 들려옵니다. 기괴한 연주 음과 소음, 자연의 소리가 뒤섞인 소리입니다. (Mica Levi가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https://youtu.be/RGbQCiZg6iM?si=ORQEKnVwsA_0RuTW )
그 어떤 시작보다도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했던 장면입니다. 같이 있던 와이프는 그 순간에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시종일관 소음이 계속되는 음향입니다.
어느 정도 지나니 제게는 구토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여러 의미가 담긴 신체적 반응이었습니다.
영화 중간에는 화단에 핀 붉은 꽃을 클로즈업하다가 온통 붉은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장면으로 멈춥니다. 이 붉은 화면 역시 객석을 압도하는 느낌입니다.
마지막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와 결국은 불 꺼진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독일군 장교의 모습으로 극은 끝이 납니다.
어두운 계단을 한없이 내려가는 모습. 감독이 그 무저갱의 입구와 같은 모습으로 계단을 그렸던 것은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내려가는 어두운 계단을 그런 메타포로 사용했음이 분명합니다. (영상 초기 참조 : https://youtu.be/34H3H7YH1Vs?si=sT0YYqkyv0xgMW34 )
그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구토를 합니다. 그 장면까지도 날 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구토증은 내가 느꼈는데, 저 자가 왜?"
...
기대했던 것만큼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지난 시간에 대한 분노와 그 태연함에 따르는 공포감 그 자체였습니다.
아울러 영화는 현재와 내일에 대한 공포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외신은 많은 나라의 정권을 극우 세력이 잡고 있음을 연일 전합니다. 유럽도 남미도 또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 저편에서 벌어지는 두 건의 전쟁 또한 러시아와 이스라엘, 하마스 등 극우 세력들 간의 싸움입니다. 4명의 자국민을 구하자고 274명을 죽이고 700여 명을 다치게 한 자들이 그들 중 한 세력입니다. 미국 또한 극우 인사가 차기 대권에 다시 도전한답니다. 우리는 또 어떻습니까. 연일 악다구니를 쏟아냅니다. 그저 끊임없이 분쟁을 조장합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또 다른 인종청소, 제노사이드가 발생할 조짐이 서서히 커가는 느낌입니다. 그러면 안 될 일입니다만, 그런 느낌이 커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내일이 두려운 이유입니다.
그 역설의 세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