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욥기 (욥기 32-37, 엘리후의 발언)

by KEN

주석가 ㅣ 캐서린 델 (Katharine J. Dell), 구약학자


엘리후의 발언 (욥기 32-37장)


욥기 32–37장에 해당하는 엘리후의 등장과 발언은 욥기 전체에서 독특하고 논쟁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엘리후의 등장 (욥기 32장)


엘리후는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로 소개됩니다(32:2). 이는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로서, 욥과 세 친구의 대화가 종료된 후 갑작스럽게 나타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등장 이유를 밝힙니다.


-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며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한 것에 분노 (32:2)

- 세 친구가 욥에게 답하지 못하고도 욥을 정죄하는 것에 분노 (32:3)


엘리후의 자기 변론 (32:6–22)


그는 젊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밝히며,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보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나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32:9).

그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지혜를 준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발언은 억눌렸던 진리의 외침으로 간주되며, 더는 참지 못하고 말하게 되었음을 밝힙니다(32:18–20).


엘리후의 등장과 발언은 구조적으로 별개의 단락으로 삽입된 것처럼 보이며, 전통적으로는 후대의 추가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나님의 발언을 예비하고 요약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엘리후의 발언 개요 (33–37장)


엘리후의 연설은 네 개의 주요 발언으로 구성되며, 각 발언은 욥과 친구들의 주장에 대한 교정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1) 첫 번째 발언: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욥 33장)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하나님은 꿈, 고난, 징계, 계시자(중재자) 등을 통해 반드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33:14–30).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교정하시기 위해, 즉 교훈과 회개를 위해 주시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엘리후 발언의 신학적 의미

- 고난을 형벌이 아닌 교훈으로 해석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하며, 중재자(해석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 이는 이후 하나님의 발언과 신약적 중재자 개념의 예표적 장치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발언: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다 (욥 34장)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은 정의롭지 않다고 암시한 것을 반박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며, 불의한 분이 아니심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34:10–12).

하나님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가리지 않고 보시며, 절대 권위자로서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34:19–24).


두 번째 발언의 신학적 의미

- 하나님은 절대 주권적 재판관이며, 불의와 무관한 분이라는 전통 지혜의 핵심을 재확인합니다.

- 단, 세 친구들보다 더 세련된 신학적 언어로 이를 진술합니다.



(3) 세 번째 발언: 욥의 교만과 말의 잘못 (욥 35장)


욥이 “하나님을 섬겨도 무익하다”고 말한 것을 반박합니다(35:3).

인간의 죄나 의는 하나님께 아무 영향도 주지 않으며,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얘기합니다(35:6–8).

사람들은 억울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진심 어린 회개 없이 그저 구출만 바라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35:9–13).


이 발언의 신학적 의미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인식하게 하며, 율법적 보상관계의 종말을 암시합니다.

- 욥의 “신정론적 의문”에 대해서는 인간의 이해 한계를 강조합니다.



(4) 네 번째 발언: 하나님의 위엄과 교훈적 고난 (욥 36–37장)


엘리후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은 권능과 공의를 겸비한 분이라 진술합니다(36:5–12).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인간을 훈련하시고 교정하십니다(36:15).

이어지는 37장은 폭풍우와 자연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과 신비를 강조합니다. 이는 이후 하나님의 직접 발언(38장)과도 연결되는 것이죠.


네 번째 발언의 신학적 의미

- 하나님은 멀리 계신 초월적 존재이면서도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 엘리후의 비전(폭풍과 우레)은 곧 이어질 하나님의 등장을 준비하는 예언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기의 내러티브 상 교착 상태를 해결하며,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 고난의 교육적 의미, 인간의 유한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입장에 더 가까운 인물로 제시되며, 욥기에서 신정론의 전환점을 이룹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 자신은 아니며, 그의 말도 최종적인 해답은 아닙니다. 그 해답은 하나님의 직접 발언(38–41장)에서 주어집니다.


삶에의 적용
엘리후의 등장은 오늘날의 신앙인인 나에게 여러 신학적·영적 교훈을 제공하는 느낌입니다.

엘리후는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 교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히 형벌로 고통을 해석하던 전통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섬세한 목적을 찾아가려는 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세밀한 귀기울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듯합니다.

엘리후는 지혜가 나이와 권위보다 성령이 주시는 통찰이라고 발언합니다. 이는 교회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이, 연륜, 지위보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됨을 교훈합니다.

아울러 엘리후는 욥의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말씀하신다고 전합니다. 지금의 신앙인인 우리들에게 이는 고통이나 혼란 중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활동하고 계심을 기억하게 하며, 영적 둔감함에서 벗어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하게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자기 의로움 주장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정의를 인간의 논리로 규정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태도보다, 하나님의 크고 깊은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의 자세가 더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자연현상과 하나님의 창조 권능을 통해 하나님의 압도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과학과 문명을 통해 많은 것을 알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여전히 인간의 이해를 초월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해보다 신뢰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엘리후의 발언은 ‘고난의 신학’을 단순한 응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훈련과 인도라는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심을 깨닫고, 자기 의가 아닌 경외와 순종의 길로 나아갈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훈련'과 또 다른 차원의 '인도'라는 가르침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참고서적

『IVP 성경연구주석 구약』 (오경・역사서・시가서)_고든 웬함, 존 골딩게이, 로널드 클레멘츠 외 지음, 2023,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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