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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수 Aug 29. 2024

[단상] 삶의 변곡점, 그 후에 미친 영향

살아내는 과정 내내를 온통 영향을 줬던 그것.

살아내는 과정 과정 내내를 온통 영향 주는 것이 있다. 
그걸 변곡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생의 변곡점.

    내게도 그렇게 볼 지점이 있다. 기억이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국민학교 3학년 여름, 변산 해수욕장 곁에 있던 어느 국민학교에서의 일이다.




    1972년 여름, 국민학교 3학년이던 그때, 단복이 멋있어서 보이스카우트 단원이 되었던 때였다. 

그해 여름, 보이스카우트 단원 모두는 선생님의 인솔하에 보호자를 동반하고 해수욕장에 갔었다. 산골 마을에서만 지내던 우리는 바다라는 곳을 처음 가본 야외활동이었다. 


    변산의 기억나지 않는 어느 국민학교 교실을 통째로 빌려 그곳에서 먹고 자고를 2박 3일 했었던 듯하다. 분명 교실 창문으로 내다보면 모래사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놀고 있던 친구들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도착 첫날, 짐을 풀고 반바지만 입고 맨발로 모래사장으로 나가 바닷물과 놀고 있을 때였다. 물속 저만치 거무스름하게 솟아있던 바위가 보였다. 그곳에 오르면 물속으로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있던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저 없이 그곳으로 뛰어 올라갔다.


물속에 보이는 거무스룸하게 솟아있는 바위.
그곳에 오르면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위엔 온통 굴이 달라붙어 있었고 그 껍질의 날카로움에 내 조그만 발은 온통 상처를 입었다. 피가 나는 발바닥을 두려워하며 (아마도 엄마 등에 업혀) 숙소인 교실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만난 상처로 인해 나의 2박 3일은 엉망이 될 처지였다.


    인솔하신 선생님인지 그 학교 선생님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양호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교실에 앉아있던 나에게 책을 몇 권 가져다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던 말씀,


"저기 도서관이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빌려다 봐라"
그 순간이었다. 내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정적 순간1)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의 삶에 온통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인생의 변곡점과 같은 순간이.


    발을 다쳐 꼼짝을 못 하고 앉거나 누워 친구들이 바다에서 노는 모습이나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나에게 주어진 책 몇 권. 읽기 시작한 책은 그 야외활동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주어진 책을 다 읽고는 도서관에 들러 그곳에 있던 (당시 눈으로는) 상당히 많았던 책들 속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완전한 신세계를 맞봤다고나 할까. 토끼와 발 맞춘다 싶을 정도로 깊은 산골 고향 마을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지내던 그 시절에 드디어 책이 그리고 있던 세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도 도서관이라는 것이 있었다. 다만 낡고 관리되지 않는 도서관에서 별다른 책이랄 것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꼼짝할 수 없었던 2박 3일의 기간 동안, 석양 빛이 붉게 물들어가는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읽던 책과 그 정경과 당시 느꼈던 느낌 등등은 지금껏 내 일상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꼼짝할 수 없었던 2박 3일의 기간 동안, 석양 빛이 붉게 물들어가는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읽던 책과 그 정경과 당시 느꼈던 느낌 등등은 지금껏 내 일상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때가 국민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학교에서도 아마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 가는 학생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가을운동회에 시연될 기계체조 연습을 맨발로 한참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정수야, 너 전주에 가야겠다."
"왜요?"
"고전읽기반 도내 경진대회가 있는데, 네가 우리 학교 대표로 나가는 거야"
"제가 왜요? 전 고전읽기반도 아닌데요?"
"네가 도서관에서 가장 책 많이 빌려 간 학생이라는 얘길 듣고 교장선생님이 결정하신거야."
"부모님들께도 별도로 말씀드렸다. 선생님과 함께 가자."

    5학년 가을 운동회 준비 중에 갑작스럽게 전주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전주로 향했다. 그날 밤은 당시 치과 병원을 하시던 작은 집에 머물렀다. 그러고는 다음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곳은 수 개월 뒤 내가 전학을 오게될 전주 '중앙국민학교'였다. 전주 한옥마을 한가운데 '경기전'과 벽을 맞대고 있던 학교. 물론 그날의 성적은 밝히지 않겠다. 사실 모르기도 하고.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5학년을 마친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셨다. 


"너, 전주로 가라"
"가서 공부해라"

    몸이 유난히 약했던 나에게 아버지는 평생 일다운 일을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었다. 해 달라고 한 것이라곤 고작 모내기할 때 줄을 잡아 달라거나 농약 칠 때 경운기 약 줄을 모들이 다치지 않게 넘겨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도저히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경우에 아마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문제는 그렇게 서너 시간 땡볕에 나가 있으면 난 거의 온종일을 두통과 어지러움, 구토 증세로 앓아누웠다는 것. 때문에라도 아버지는 내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던 아버지의 말씀이 "가서 공부해라"였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이후의 삶 내내 영향을 미친 변곡점은 분명하게도 변산반도의 어느 해수욕장 근처 국민학교 교실에서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진다. 


    참고로 중앙국민학교는 6학년 3월 딱 한 달간만 다녔다. 그 전의 고전읽기 경진대회 성적이 걸려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전학 신청을 했고, 전주 '풍남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중학교는 전주에서,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나왔으니 내 풍상 많은 노마드2)적 삶도 변산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의 "가서 공부해라"는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산다. 평생을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면서...




1) 결정적 순간 (Moment of truth) : 경영학 및 마케팅 용어. 직역하면 '진실의 순간' 으로, 고객 서비스를 통해서 기업과 접촉하는 고객이 기업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흔히 MOT는 스페인의 투우 경기로 자주 비유된다. 투우사는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심하게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투우에 나서는데, 긴 투우 경기시간 동안에 서서히 소를 제압하거나 혹은 상처를 누적시켜 가는 것이 아니라, 소의 급소를 정확히 노려서 찔러 죽이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 순간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만일 실수하게 되면 투우사가 그 이전까지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경영학 밖에서는 '진실의 순간' 이라 하면 바로 이 투우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본고에서는 이 진실의 순간을 인생 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순간으로 표현했다.


2)  노마드 ([프]nomade) 들뢰즈에 의해 철학적 의미를 부여받은 말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 또는 여러 학문과 지식의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인간형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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