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수 Aug 29. 2024

[단상] 삶의 결정적 순간, 그 후...

살아내는 과정 내내를 온통 영향을 줬던 그것.

살아내는 과정 과정 내내를 온통 영향 주는 것이 있다. 
그걸 삶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인생의 변곡점과도 같은.


    내게도 그렇게 볼 지점들이 있다. 일부는 기억이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1970년대 초반, 그러니까 국민학교 3~5학년 어간에 있었던 두 건의 에피소드가 일종의 그것이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




에피소드 1.


    1972년 여름, 국민학교 3학년이던 그때 스카우트 단복이 멋있어서 단원이 되었던 첫해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보이스카우트 단원 모두는 선생님의 인솔하에 해수욕장에 갔다. 산골 마을에서만 지내던 우리에게 바다는 경이 그 자체였다. 


    변산의 어느 국민학교 교실을 통째로 빌려 그곳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함께 동반한 엄마들이 그 교실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모여 밥먹고 함께 바닷가 모래밭에서 뛰놀곤 했다. 창문 너머로는 모래사장이 보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가늠이 될 만큼 교실은 바다와 가까운 거리였다. 


    도착 첫날, 짐을 풀고 맨발로 해변으로 나가 바닷물 일렁이는 해수욕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물속 저만치 거무스름하게 솟아 보이던 바위가 있었다. 그곳에 오르면 물속 위로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친구들과 선생님과 그리고 함께 있던 엄마에게 폼나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저 없이 그곳으로 뛰어 올라갔다.


    물속에 보이는 거무스룸하게 솟아있는 바위.
    그곳에 오르면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위엔 온통 굴이 달라붙어 있었고 그 껍질의 날카로움에 내 약한 살갓은 온통 베였다. 피가 나는 발바닥을 들고 (아마도 엄마 등에 업혀) 숙소인 교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만난 상처로 인해 나의 2박 3일은 엉망이 될 처지였다.


    인솔 선생님이었는지 변산 학교 양호 선생님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치료를 받은 후 앉아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책을 몇 권 가져다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던 말씀,


"학교에 도서관이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빌려다 봐"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의 삶에 온통 영향을 미쳤던 여러 변곡점 중의 하나와도 같은 결정적 순간이. 1)


    발을 다쳐 꼼짝을 못 하고 앉거나 누워 친구들이 바다에서 노는 모습이나 보고 있을 수밖에 없던 나에게 주어진 그 책 몇 권.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변산 나들이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주어진 책은 물론이고 도서관에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빌려 그 상상의 세계 속에서 2박 3일을 꼬박 보냈다. 움직이기 쉽지않아 어쩔 수 없이 시작된 책 읽기가 처음으로 그 재미를 알게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산과 들과 섬진강 상류의 조그만 실개천이 전부였던 나의 고향 마을의 세계에서 책이 그려낸 또 다른 세상으로의 창을 하나 덧댄 일대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깊은 산골 고향 마을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지내던 그 시절에 드디어 책을 통해 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아주 조그마한 틈을 발견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 때의 그 기억 즉 그 꼼짝할 수 없었던 2박 3일의 기간 동안, 석양 빛 물들어가는 바다와 읽던 책과 낡은 책의 냄새와 그 쓸쓸함까지도 이후의 내 삶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 꼼짝할 수 없었던 2박 3일의 기간 동안, 석양 빛이 붉게 물들어가는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읽던 책과 그 정경과 당시 느꼈던 느낌 등등은 지금껏 내 일상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때가 국민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학교에서도 아마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 가는 학생 중의 하나가 되려고 했었던 듯 하다. 




에피소드 2.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가을운동회에 시연될 기계체조 연습을 맨발로 한참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너 전주에 함께 가야겠다."
"왜요?"
"고전읽기 경진대회가 있는데, 네가 우리 학교 대표로 나가기로 했어"
"제가 왜요? 전 고전읽기반도 아닌데요?"
"네가 도서관에서 책을 제일 많이 빌려갔더라?
그걸 아시고 교장선생님이 결정하신거야.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선생님과 함께 가자."

    5학년 가을 운동회 준비 중에 갑작스럽게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전주로 향했다. 전주의 작은 집에 머물렀다가 다음날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곳은 수 개월 뒤 내가 전학 오게될 '중앙국민학교'였다.2)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경기전'과 벽을 맞대고 있던 학교다. 


    이러저러한 영향 때문이었을까. 5학년을 마친 어느 날 아버지가 부르셨다. 


"너, 전주로 가거라, 가서 공부해라"

    몸이 유난히 약했던 나에게 아버지는 평생 일다운 일을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었다. 해 달라고 한 것이라곤 고작 모내기 때 줄을 잡아 달라거나 농약 칠 때 모들이 다치지 않게 약줄을 넘겨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도저히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경우에만 아마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문제는 그렇게 두세 시간 땡볕에 나가 있고난 후에는 어김없이 거의 종일을 두통과 어지러움, 구토 증세를 앓았다. 때문에라도 농부인 아버지는 내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러던 초로의 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이 "가서 공부해라"였다. 내 삶에 미친 또 하나의 변곡점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두 장면은 이후의 삶 내내 온통 영향을 미친 삶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변산반도의 어느 낯선 교실에서의 경험은 책이라는 평생의 친구를 나름 친근하게 만든 사건이었고, 아버지의 "가서 공부해라"는 그 말씀으로 인해 이후의 삶이 방랑(노마드)의 그것이 되게 하기에 충분했다.3)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의 동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 말씀을 늘 마음에 품고 지낸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유훈과도 같다는 생각이기에.




1) 결정적 순간 (Moment of truth) : 경영학 및 마케팅 용어. 직역하면 '진실의 순간' 으로, 고객 서비스를 통해서 기업과 접촉하는 고객이 기업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흔히 MOT는 스페인의 투우 경기로 자주 비유된다. 투우사는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심하게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투우에 나서는데, 긴 투우 경기시간 동안에 서서히 소를 제압하거나 혹은 상처를 누적시켜 가는 것이 아니라, 소의 급소를 정확히 노려서 찔러 죽이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 순간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만일 실수하게 되면 투우사가 그 이전까지 아무리 최선을 다했더라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경영학 밖에서는 '진실의 순간' 이라 하면 바로 이 투우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본고에서는 이 진실의 순간을 인생 여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순간으로 표현했다.


2) 전주 중앙국민학교를 거쳐 풍남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해성중학교를 거쳐 서울의 성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가서 공부하라"는 말씀은 나의 방랑자(노마드)적 삶의 시작이 되었다.3) 결과적으로는. 


3) 노마드([프]nomade) 들뢰즈에 의해 철학적 의미를 부여받은 말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 또는 여러 학문과 지식의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앎을 모색하는 인간형을 이르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