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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수 Oct 07. 2024

[단상] 소설과 도서관, 그리고 북토크

조영주 작가의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를 읽다가...

    글이란 참 이상하다.



    내가 사는 oo아파트 주변에는 10분 이내에 세 개의 도서관이 있다. 관내 열다섯 개 공공 도서관 중 세 개가 그것이다. B 도서관은 5분, V 도서관은 7분, S 도서관도 9분 거리다. 그중에는 P 시청 관할의 대표 도서관인 B와 V 도서관 두 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살 집 선택에는 몇 가지 관심을 두는 것들이 있다. 작지만 소중한 소망 같은 거다. 가령 '거실에서 나무가 보일 것, 그것도 가능한 많이' 같은 조건과 '근처에 도서관이 있을 것' 같은 소소한 것들이다. 현재의 이 집은 그중 많은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으니 더 욕심부릴 이유가 없다. 


    며칠 전 우연히, V 도서관에 들렸다가 며칠 후 그곳에서 작가의 북토크가 진행된 다는 것을 들었다. 모르는 작가였기에 잠시 고민도 되었지만 마침내 신청했다. 막상 신청은 했으나 해당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없었으니 그 상태로 북토크 참석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대상 소설을 구입했다. 275쪽 정도의 소설은 단숨에 읽힐 분량이다. 예상대로 단숨에 읽었다.


    첫 문장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23시 52분.

그녀는 보름달이 너무 밝아서 죽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같은 걸 기대했었나 보다. '꽃이'와 '꽃은'을 두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는 어떤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글쓴이의 가치판단이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서술하는 '꽃이 피었다'로 결정했다는 그 작가의 말처럼, 첫 문장이 좀 더 심오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저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첫 문장에서 '그녀는'이 없었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몇 쪽을 읽는데, 사용한 단어와 문장이 계속 걸린다. 마치 문학소녀가 잔뜩 힘을 줘 일기장에 써넣은 글 같은 느낌, 가령 "꽃은 밟을 때 사박사박이 아니라 사뿐사뿐 소리를 낸다"라든가 '이지 리스닝 재즈 음악', '메조소프라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리넨 소재', '타사 튜더', '에스프레소 머신', '크레마', '투 샷', '라테아트'... 와 같은. 그 밑에는 연필로 이렇게 써넣는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 아닌가?>


    글이란 게 참 묘하다.

읽어가던 중,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질문을 봤다.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작가의 첫 번째 주제 글 같다는 생각까지.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을까요?

    이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다가 문득 '어떻게 하면 지금 이 순간이 살고 싶어 질까요?'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반전이라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난 지금은 작가의 저 표현이 적확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로는 '지금 이 순간을'이 맞다고, '지금 이 순간이'로 하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다고) 


인생에는 가끔 이렇듯 쉽게 열리는 문도 있어야겠지요?

    작가의 두 번째 주제 문장으로 보이는 글이다. 


    그래 참 묘한 소설이다. 시작했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뜯어 읽으며 '감각적 문장의 부재'라고 스스로 속단하면서 읽기를 계속하다가, 어느덧 문장이 아니라 서사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리게 되니 말이다. 주제 의식도 숨겨져 있고,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감춰져 있다. 읽고 나면 찾아지게 되는 것들로.


    작가는 등장인물의 말을 이용해 삶을 힘겨워하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망쳐도 괜찮아.
...

괜찮아요, 누나!
잘 안되면 다른 빵을 구우면 되죠!

라고!


     그렇다. 하다가 안되면 다시 하면 되는 거지, 이번 것을 망치면 다음 것을 하면 되지 뭐 이와 같은 말로 슬며시. 나름 설득력 있다. 위로도 된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읽었던, 그래서 조금은 냉소적으로 문장을 대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끝을 본 지금은 내 평가가 달라졌다. 나름 괜찮았다고. 


    다만,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는 것이 장애겠지만. 


    어찌 되었건, 작가와의 북토크는 기대가 된다.


    글이란 참 이상도 하다. 그래서 자꾸만 끌리게 되나보다.


조영주 장편,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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