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의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첫 문장
촬영 기법 중 "줌인샷(Zoom-in Shot)"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에는 와이드 영상을 보여주다가 점진적으로 피사체를 향해 확대해 가면서 피사체를 중심으로 가까이 보여주는 방식이다.
김주혜의 장편 <작은 땅의 야수들> 첫 장면은, 꼭 그 줌인샷 카메라 워크와 같다.
소설은 수상 소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읽을거리가 차고도 넘쳐 소설류는 그다지 우선되지 않는 선택 대상이다. 드문드문 읽는다. 특히 뭔가에 속 시끄러울 때 집어드는 대상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은 얼마 전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그렇다면....
소설의 첫 장면은 와이드에서 클로우즈드 샷으로 움직이는 줌인샷 카메라 워크, 꼭 그것이다.
상상하면서 첫 문장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자.
천지를 촬영하다가, 아득히 먼 저 끝을 보여주다가, 해와 구름을 건너 땅으로 내려와, 소나무군과 그 숲 속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시각의 끝에 범의 발자국까지 줌인(zoom-in)해 들어간다.
첫 장면은...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다가 끝까지 빠져들지만...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 처음으로 해가 떠오르기 전 태초의 시간 같았다. 구름은 그들이 속해 있던 영역을 떠나 나지막이 내려와, 마치 땅에 맞닿은 듯 보였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창공을 둘러싸고 어렴풋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흔들림도 소리도 없었다.
이 아득한 세계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눈길에 난 작은 얼룩처럼 사람 하나가 홀로 걷고 있었다. 사냥꾼이다. 아직 부드러움과 온기가 남아 있는 짐승의 발자국 위로 몸을 구부린 채, 남자는 자신이 노리는 사냥감이 있는 방향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눈의 날카로운 냄새가 폐를 가득 채웠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약간의 눈이 내려 쌓이면 그 짐승을 더욱 쉽게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발자국 크기로 미루어 몸집이 제법 큰 표범 같았다.
이런 글은 반드시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
이북도 그렇고 특히 오디오 북으로 들을라치면, 그 행간의 장면을 놓치지 십상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나의 페이스북 포스팅 글(241109)을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