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그곳은 처음의 나무 (feat. 말로)"
"그는 전속력으로 로시난테를 몰아 맨 앞에 있는 풍차로 돌진하여 날개에 창을 꽂긴 했으나..."
- 미델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에서
한국에서 재즈의 토양이 점점 메말라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두 명의 젊은 음악가가 의기투합해 ‘한국재즈수비대’를 결성했다는 얘기,
선후배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노래했다는
이야기는 앞선 포스팅에서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왕 한국 재즈를 소개한 김에, 한 곡 더 선곡해 보려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말로가
재즈클럽 ‘야누스’에 헌정하는 노래를 부른 바 있습니다.
쓸쓸하고 절제된 그 노래는, 어딘가 비장감마저 전해집니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 한 곡 더 가 보시죠.
"야누스, 그곳은 처음의 나무"는 2021년 발매된 프로젝트 앨범 《우린 모두 재즈클럽에서 시작되었지》의 마지막 트랙으로, 한국 재즈계의 명소였던 재즈 클럽 '야누스'에 헌정하는 곡입니다. 이 앨범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에 처한 국내 재즈 클럽과 뮤지션들을 응원하기 위해 피아니스트 이하림과 베이시스트 박한솔이 주도해 41명의 뮤지션이 참여한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 중의 한 곡입니다.
'야누스'는 1980년대부터 한국 재즈의 산실로 불린 클럽으로, 수많은 뮤지션과 관객이 음악적 첫걸음을 내디딘 공간입니다. 곡 제목의 '처음의 나무'는 바로 이곳이 새로운 시작과 성장의 터전이었음을 상징합니다.
가사 “숲을 꿈꾸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아무 말 없이 이곳을 난 지켜왔네”는 오랜 시간 재즈 문화를 지켜온 클럽과 그곳을 지탱해 온 이들의 헌신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팬데믹으로 문을 닫거나 어려움에 처한 재즈 클럽들의 현실을 애틋하게 담아, 듣는 이로 하여금 한국 재즈의 역사와 그 소중함을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은 이 곡을 부른 말로(Malo)라고 하는 한국 재즈의 보컬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말로(본명 정수월, 1971.10.25)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보컬과 자유분방한 스캣 창법으로 국내 재즈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이는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걸로 파악됩니다.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그루터기’로 은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데뷔했습니다.
경희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재즈를 공부했으나 졸업을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한국어로 재즈를 노래하며 ‘한국어는 재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한국적 정서와 재즈의 융합을 시도해 왔습니다.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겸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깊이 있는 감성과 즉흥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Shade of blue》(1998), 《Time for Truth》(1998), 《벚꽃 지다》(2003), 《지금, 너에게로》(2007), 《This moment》(2009) 등의 정규 앨범과 한국 대중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한 ‘K-스탠더드 프로젝트’로도 유명합니다. 대표작으로는 《동백아가씨》(2010), 《말로 싱즈 배호》(2012), 《송창식 송북(Song Book)》(2020) 등이 있습니다.
영화 OST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송과 공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 또한 꾸준히 시도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스캣의 여왕’,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가창력의 재즈 여신’, ‘한국 재즈의 새 지평을 연 뮤지션’ 등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국 재즈 보컬리스트의 위상을 단순한 가수가 아닌 ‘목소리로 연주하는 음악가’로 격상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한 평가는 말로가 보여주는 한국적 정서와 재즈의 융합, 그리고 즉흥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음악 세계가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산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는 허스키한 음색과, 동네에서 소박하게 음악을 이어가는 ‘동네 가수’로서의 진솔한 면모 역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아울러 “재즈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는 그의 음악 철학은, 평생학습과 예술을 통한 소통의 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하는 행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야누스, 그곳은 처음의 나무」는 한국 재즈의 역사와 그 뿌리를 되짚으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고난 속에서도 음악과 공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로의 보컬은 이 곡의 상징성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는 재즈 클럽이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수많은 뮤지션과 관객의 꿈과 추억이 깃든 ‘처음의 나무’ 임을 노래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더해가도, 그 절박함 속에서 음악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음악을 지켜내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 그리고 그 결실인 음악을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사랑하는 것만큼, 그들에게 큰 힘이 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듣습니다.
함께 가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