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Night Train To Lisbon)
"내 인생은 뭐죠? 지난 며칠을 제외하고는요"
"다시 예전의 인생으로 돌아가시는군요"
...
"여기, 머무시는 건 어때요?"
"네?"
...
"여기, 계시면 안 되나요?"
영화의 마지막 저 대사, "Why don't you just stay?"가 마리아나의 입에서 나올 때, 나는 왜 울컥 했을까?
초여름의 슬럼프인가 보다.
무얼 해도 시큰둥이다. 읽던 책도 심드렁하다. 음악도 들어오질 못한다.
몸은 나른하고, 머리는 무겁다.
필경 변화를 적응 못하는 노쇠현상 아닐까 두렵다.
SNS에 포스팅된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인지했다. 마침 쿠팡플레이에 올라와 있음을 확인하고 Play.
몰입해서 봤다... 이상도 하다. 요즘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10여분 넘기기 어렵던데...
빌 어거스트 감독? 찾아보니 그의 작품 중 정복자 펠레, 레 미제라블을 비롯하여 최근작 에렌가르드가 눈에 띈다. 그 이외에도 꽤 관심이 가는 작품들이 다수다. 짬짬이 그의 작품들을 찾아봐야겠다.
이런 평가가 맘에 든다.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다시 쓰려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철학적 러브레터다."
“조용히 영혼을 흔드는 지성의 여행. 단 한 번의 ‘열차’로 삶의 궤도를 바꾸고 싶어지는 순간을 담다.”
공감이 가는 평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그러니까, "여기 머무르시면 안 되나요?"라는 말은 틀림없이 '삶에 대한 다른 선택을 제안받는 말'일 것이다.
굳이 내용을 나열하거나, 의미를 분석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마지막 느낌 그대로를 조용히 음미하고 간직하고 싶어질 뿐.
“Why don’t you just stay?”
이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영화의 테마가 흐른다.
Theme Of Night Train To Lisbon
이 테마 음악은 영화를 보고 난 나의 마음을 섬세하게 보듬어주면서 서서히 감정을 이완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찾아보니 작곡가 Annette Focks의 작품이다. 그는 이 음악의 중심을 피아노와 현악기로 주제를 끌고 가는 느낌이다. 글쎄 자료를 찾아보니 '주인공 라임문드의 내면의 고독, 회상, 그리고 깨달음의 여정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라고 평하는 글이 잡힌다. 이해되는 해석이다. 더불어 '이 음악은 감정을 선동하기보다 사유의 틈을 열어주는 음악적 여백을 만들어낸다.'는 해석도 유용하고 적절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인용하는 '아마데우의 책에 쓰인 문장'이 맘에 끌린다.
마침 찾아보니 몇 문장이 눈에 띄어 인용한다.
“우리가 어떤 장소를 떠날 때, 그곳에 우리 일부를 남긴다. 떠나도 우리는 그곳에 남아 있다. 또, 오직 그곳으로 돌아감으로써만 다시 찾을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다.”
“We leave something of ourselves behind when we leave a place. We stay there, even though we go away. And there are things in us that we can find again only by going back there.”
영화 속에서 라임문드는 이 문장을 통해 ‘리스본으로 가는 여행이 곧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는 여정’ 임을 깨닫게 된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시간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자유롭고 가볍지만 불확실성의 무게를 짊어진 채 열린 시간 속에서… 마치 꿈같고 향수 어린 바람처럼, 인생의 그 지점으로 다시 서서 완전히 다른 방향을 택할 수 있다는 뜻 아닐까…”
“What could – what should be done, with all the time that lies ahead of us? Open and unshaped, feather light in its freedom and lead‑heavy in its uncertainty? Is it a wish, dreamlike and nostalgic, to stand once again at that point in life, and be able to take a completely different direction…”
이 문장은 라임문드가 중년의 삶을 멈추고 새로운 길—리스본으로—나아가도록 결정하는 철학적 계기가 된다는 해설이다.
“인생의 방향을 영원히 바꾸는 결정적 순간들은 항상 드라마틱하게 보여지는 건 아니다… 이 놀라운 침묵 속에야말로 특별한 고귀함이 존재한다.”
“The decisive moments of life, when its direction changes forever, are not always marked by large and shown dramatics… in this wonderful silence resides its special nobility.”
영화 전반에 걸쳐, 라임문드는 거창한 사건이 아닌 ‘기차표 한 장’, ‘책 한 권’, ‘한 사람의 조용한 속삭임’ 같은 소소한 사건들이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경험한다는 해석도 이해될 만하다.
“독재가 사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다.”
“When dictatorship is a fact, revolution is a duty.”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소설적 혹은 영화적 이해가 뒤따른다. 이 문장은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독재에 맞선 아마데우의 저항 정신을 압축하며, 역사적 맥락 속에서 라임문드는 ‘행동과 책임’을 직시하게 된다는 해석이다.
우리 또한, 개개의 삶이 독자적인 것만이 아니라 결국 시대의 정황 그 한가운데서 상황과 함께 흐르는 것이 아닐까.
이젠,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