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계듣기] 영화음악... 혼란의 미로 속 공감의 여정

영화 ⟪The Father⟫와 그 안의 음악들 이야기

by KEN

고대 근동의 역사를 학습하는 모임에서 영화 ⟪The Father⟫가 언급되었습니다.

치매(알츠하이머)를 다룬 몇 안 되는 영화 중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제가 아주 인상 깊게 봤던 관련 영화들이 있습니다. 가령 ⟪AMOUR⟫와 ⟪노트북⟫, ⟪스틸 엘리스⟫ 및 한국영화 ⟪리멤버⟫, ⟪장수상회⟫, ⟪로망⟫이 있고, 윤정희 주연의 ⟪시(Poetry)⟫가 있습니다. 오래전 제가 포스팅 한 블로그의 리스트를 참조하셔도 됩니다만...


영화는 다양한 시점에서 서사를 이끌어갑니다.

가령 ⟪스틸 엘리스⟫는 병에 걸린 본인이 자각하는 망각의 과정을 관찰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노트북⟫은 병에 걸리기 전 풍성한 삶을 누렸던 당사자와 그 주변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도 슬프게 이야기되죠. ⟪AMOUR⟫의 경우는 동행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극을 이끌어 간다고 거칠게 정리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얘기해 보고자 하는 영화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영화 ⟪더 파더: The Father⟫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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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로 탐색

플로리안 젤러(Florian Zeller) 감독의 2020년 영화 ⟪더 파더⟫는 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르 페르(Le Père)를 원작으로 했습니다. 치매를 앓는 주인공 앤서니(안소니 홉킨스 분)의 시점에서 바라본 혼란스러운 경험을 심도 깊게 탐구한 드라마입니다. 영화는 기억 상실을 겪는 사람의 주관적이고 파편화된 현실에 관객을 직접 몰입시키는 독특한 서사적 접근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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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연극 대본 Le Père와 영화 The Father, 그리고 박근형 주연의 번안극 '아버지' 포스터


이 영화는 단순히 질병을 묘사하는 것을 지양합니다. 관객을 주인공의 입장에 직접 놓이게 하여, 치매의 끔찍한 영향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는 관객이 캐릭터만큼이나 멍하고 혼란스럽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저 또한 영화를 볼 때 가빠오는 호흡을 스스로 진정시키면서 영화를 감상했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그만큼 관객을 그 경험으로 몰입하게 하는 것이죠.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단순히 증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선다고 하겠습니다. 수동적인 관람을 능동적이고 불안정한 심리적 여정으로 변화시켜서 감상하게 만듭니다. 확실히 이러한 지점이 앞서 언급했던 동일 주제의 다른 영화들과 ⟪더 파더⟫를 차별화시키는 주요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혼란: 주관적 현실의 해체

영화의 서사 구조는 앤서니의 악화되는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가장 혁명적인 측면이랄 수 있겠습니다. 이는 비선형적 서사의 흐름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사건들이 순서 없이 발생하며, 이해할 수 없는 산발적인 반복 고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영화적 퍼즐 상자는 보는 내가 무엇이 현실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죠. 그러면서 앤서니의 혼란을 재현합니다. 앤이 더 이상 아버지를 돌볼 수 없다고 통보하는 장면에서 아무런 사전 맥락 없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인 미디어스 레스'(in medias res/핵심 사건의 한가운데서 서술을 시작하는 기법) 오프닝은 관객의 정보 부족을 앤서니 자신의 혼란과 즉시 일치시키면서 극적 긴장감을 고취시킵니다.


영화는 주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이 제시한 '심리적 시간' 개념 내에서 작동합니다. 여기서 시간은 객관적이고 연대기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며 비선형적입니다. (물리학에서의 시간개념이나, 또 다른 철학자인 폴 리쾨르의 미메시스 이론으로서의 시간 개념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개념이죠. 아무튼...) 이러한 접근 방식은 현실과 환상, 기억과 현재가 동시에 제시될 수 있도록 하여 영화의 깊이를 확장시킨다고 할 것입니다. 앤서니의 현실 인식은 점점 더 파편화되어, 인물들의 정체성이 바뀌기도 하고(앤의 남편이나 앤 자신을 다른 배우들이 연기) 대화가 반복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우 교체 트릭으로 인지 능력 저하를 겪는 사람에게서 겪는 현실적 혼란을 그리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는 엔서니가 스스로 한때 탭 댄서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헛말, 폭력적인 분노와 편집증과 같은 모습으로 제시되어 치매로 나타나는 증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죠.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마치 앤서니의 악화되는 정신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인지적 거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파편화된 서사와 비선형적 서사는 그런 의미를 담아내려는 계획된 구성인 것입니다. 그것은 치매의 인지 과정, 즉 현실과 희미해지는 기억이 혼합되고 사건과 대화가 반복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모방하는 듯합니다. 마치 영화는 관객을 심리 게임에 끌어들이는 형식을 취하죠. 관객의 경험을 치매를 겪는 삶의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시뮬레이션 상황으로 만들어 보는 내내 깊은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호흡이 가빠졌던 제가 느꼈던 몰입의 상황을 만드는 지능적 연출 방식으로 읽힙니다.


영화는 주요 순간마다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맥락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앤서니의 혼란과 방향 상실을 함께 경험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서사적 접근은 주관적 몰입을 유도하는 동시에, 관객이 결국 사건의 잘못된 순서 배열과 인물의 혼동을 인지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극 중 앤서니 자신은 결코 깨닫지 못하는 부분이며, 이 지점에서 관객은 앤서니와의 인식의 간극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설은 의도된 연출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영화는 앤서니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명확성을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그의 혼란을 어느 정도 체험할 수는 있지만, 치매가 초래하는 실제 삶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은근히 상기시킵니다. 이처럼 관객의 이해와 앤서니의 끝없는 혼란 사이의 간극은 질병이 만들어내는 깊은 고립감을 강조하며, 동시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쯤에서 영화의 서사와 관련한 얘기는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이었던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boundary-breaking) 감상하기"를 시도해 볼까 합니다.

어려운 용어를 썼지만, 좀 더 명확하게는 '영화 안에 삽입된 음악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얘기입니다.^^


음악으로 그리는 풍경: 방향 상실과 부정의 교향곡

퍼셀의 "What Power Art Thou": 마지못한 각성

영화는 앤이 거리를 걷는 오프닝 장면에서 퍼셀의 ⟪킹 아서: King Arthur⟫ 중 'What Power Art Thou'의 상징적인 선율로 시작됩니다. 이 음악은 처음에는 비극적 배경 음악처럼 들리지만, 앤이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멈추고, 앤서니가 자신의 헤드폰으로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즉각적인 전환은 영화의 주관적인 시점을 확연하게 드러내면서 보는 사람을 앤서니의 내면세계로 이끄는 효과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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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아서⟫의 프로스트 장면에 나오는 이 아리아는 겨울의 정령(Cold Genius)이 잠에서 마지못해 깨어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가사("What power art thou, who from below / Hast made me rise unwillingly and slow / From beds of everlasting snow?" _ "그대는 누구이기에, 저 아래로부터 / 나를 마지못해, 더디게 / 영원한 눈의 침상에서 일으키는가?")는 앤서니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으로 마지못해, 그리고 방향을 잃은 채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내는 심오한 은유로 작용합니다. 겨울의 정령을 동반하는 떨리는 현악기는 치매의 신체적, 정신적 떨림과 유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아리아들

퍼셀 외에도 영화에는 다른 중요한 아리아들이 등장합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유명한 <노르마>의 'Casta Diva'와 비제의 <진주 조개잡이>의 나디르 아리아 'Je crois entendre encore'가 그것입니다. 이 곡들은 멜랑콜리하고 애원하는 정서를 지니며, 영화의 주제와 깊은 정서적 공명을 이룹니다. 특히 이러한 노래들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어떤 힘에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는 앤서니가 명료함과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절박하지만 종종 좌절되는 투쟁을 상징적으로 반영합니다.


특히 ‘Je crois entendre encore’의 삽입은 영화 속에서 메타텍스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이 곡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안소니 홉킨스가 수십 년 전 이 곡을 처음 듣고 깊이 빠져들었으며, 언젠가 자신의 연기에 이 곡이 사용되기를 바랐었던 기억을 되집어 연기자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감독이 주연 배우의 오랜 꿈을 실현해준 감동적인 사례이며, 동시에 인물과 배우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음악이 영화 속 캐릭터뿐 아니라 배우 개인에게도 깊은 의미를 부여한 드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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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앤서니가 아리아를 반복적으로 중단시키는 장면들—직접 음악을 끄거나, 레코드 플레이어가 멈추는 방식—은 영화 전반의 핵심적인 패턴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중단'은 파편화된 서사 구조와 앤서니의 인지적 혼란을 반영하는 의도적인 영화적 장치로 볼 수 있으며, 그가 자신의 통제력 상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상징합니다. 앤서니는 음악이 전달하는 은혜나 안식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면서도,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신을 도우려는 타인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아는 앤서니의 깊은 무의식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아리아를 반복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는, 자신의 상태 악화를 직면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부정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는 그의 내면에 자리한 심오한 심리적 층위를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은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소를 넘어서, 앤서니의 내면의 진실을 비추는 능동적인 매체로 기능하며, 동시에 그 진실이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킵니다. '중단'이라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파괴이며, 자신의 상태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앤서니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심지어 그의 무의식이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요청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영화 속 음악은 이러한 내적 갈등과 저항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혼란의 최면적 반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주로 그의 앨범 세븐 데이즈 워킹(Seven Days Walking)에서 가져온 것으로, 강력하고 종종 비극적이며 사색적인 배경을 제공합니다.

[참고] 이탈리아의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Seven Days Walking⟫앨범의 곡들은 두 개의 영화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는 지금 얘기 중인 ⟪더 파더⟫이고, 또 다른 하나는 ⟪노매드랜드: Nomadland⟫입니다. 스트리밍 서버스에서 둘 다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된 음악은 아래의 것들입니다.

- Cold Wind Var. 2 (Day 4)

- Cold Wind Var. 1 (Day 1)

- Low Mist Var. 2 (Day 1)

- Low Mist Var. 1 (Day 5)

- My Journey (Film Version for "The Father" / David Menke Re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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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악의 최면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은 앤서니의 혼란, 세부 사항에 대한 잘못된 기억, 그리고 인지적 불안정성을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에이나우디의 스타일을 눈에 띄지 않는 배경 소음이라고 묘사하지만, ⟪더 파더⟫에서는 바로 이러한 특성이 효과적으로 활용된 것이죠. 이는 앤서니 경험의 순환적이고 파편화된 본질을 미묘하게 강화시키는 장치로 작동됩니다.


내게 주는 울림 - 질병을 넘어서

이 영화는 때로는 미스터리처럼, 때로는 공포 영화처럼 작동하는 영화적 퍼즐 상자이자, 명백히 정신의 공포 영화로 묘사됩니다. (제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알츠하이머(치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포는 치매를 앓는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괴롭히는 극심한 혼란, 불안, 슬픔에서 비롯되며, 보는 사람들 또한 앤서니만큼 방향 상실을 느끼게 합니다. 이는 파괴적인 질병의 미지의 측면을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랄 수 있겠습니다.


⟪더 파더⟫는 정체성, 자율성, 존엄성, 그리고 기억 상실의 슬픔이라는 주제를 강력하게 묘사합니다. 앤서니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독립성을 주장하려는 끊임없는 노력("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그리고 내 아파트를 떠나지 않을 거야")은 인지 능력 저하에 직면한 존엄성과 자율성을 위한 투쟁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앤서니처럼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자신이 실제보다 더 유능하다고 믿는 치매의 흔한 증상도 다룬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젤러 감독은 치매를 앓았던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지만, 영화는 결국 모든 이가 이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극 중에서는 앤서니의 상태를 명시적으로 ‘치매’라고 지칭하지 않습니다. 질병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그 체험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영화는 의학적 용어를 피하고 상실, 혼란, 그리고 정신의 취약성이라는 주제를 보다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전달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인지 저하를 겪었거나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더욱 깊고 공감 가는 정서적 울림을 안겨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더 파더⟫는 단지 앤서니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복잡성과 앤과 같은 간병인이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부담에 대해서도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혼란에서 비롯된 분노와 폭언 등, 치매라는 질병이 수반하는 좌절스러운 측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이를 통해 치매를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끌어올리며, 종종 오해받거나 사회적으로 외면되는 이 주제에 대해 꼭 필요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연극적 특성은 ⟪더 파더⟫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제한된 공간 설정과 대사에 대한 강한 집중은, 미묘하게 변화하는 시각적 요소들과 어우러져 관객에게 앤서니의 정신 속에 갇힌 듯한 폐쇄적이고 연극적인 감각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연극적 뿌리와 영화적 표현 사이의 의도적인 긴장은 왜곡되고 제한된 현실감을 더욱 부각시키며, 정신적 혼란과 공포를 한층 생생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냅니다.




⟪더 파더⟫는 치매를 깊이 감동적이고 공감 어린 시선으로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관객이 ‘치매를 앓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질환을 겪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는 가족과 간병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단순한 의학 드라마를 넘어,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쇠퇴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영화는 쉽게 잊히지 않고, 마치 마음에 조용한 생채기를 남긴 듯한 인상을 오래도록 남깁니다.


부디 깊이 있는 감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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