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에서의 아리아
읽히지 않는 소설을 억지로 읽어가던 중에,
나지막이 틀어놓은 오디오 소리에 주의를 빼앗긴다.
‘Romance, Classical Moods’ 음악 묶음이 재생 중이다.
무언가 작업하고 있을 때면 늘 틀어놓던 곡들인데,
기온 탓일까. 오늘 밤엔 유난히 내 주의를 끈다.
아마도 활자가 지루해진 탓일 테다. 아무튼,
곡을 계속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다.
생각났다.
학교 방송국에 들어갔었던 1학년 2학기.
3학년 제작부장(PD)은 내게 10분짜리 음악방송을 맡겼다. 첫 방송이었다.
아침 등굣길에 시작되는 클래식 음악 방송이다.
이슬 머금은 교정을 아침 등교시간 전에 부지런히 걸을 때면 언제나 들려오던 고전음악이 좋았었다.
그래서 듣기 시작했던 클래식의 입문 장르가 오페라였다.
스토리에 흥분했었고, 특히나 아름다운 아리아에서는
아주 가끔씩 혼자서 스튜디오 조정실에 앉아 눈물을 찔끔대기도 했었다. 그랬었다. 베르디의 춘희를 들었고, 모차르트의 피가로를 들었다. 푸치니의 토스카, 베르디의 아이다를 들었고, 비제의 칼멘은 물론 푸치니의 라보엠과 베르디의 오텔로, 일 트로바토레, 나부코를 들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시니와 탄호이저의 바그너, 도니체티는 사랑의 묘약을 들었다. 물론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도…
그렇게 들었던 오페라 중에 드보르작은 없었다.
더 정확히는 방송국 LP 중에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는 없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다만, 어찌 되었건 루살카는 낯설다.
그런데 들려온 이 곡 "Měsíčku na nebi hlubokém" (깊은 하늘의 달이여)가 오늘 내 귀에 들어왔다.
아니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야 할지도…
아름다운 곡이다.
찾아보니 이 곡을 드보르작은 60세에 썼다는 기록이다.
오페라 루살카의 스토리 기반은 체코 민속 설화라고 한다.
루살카는 슬라브 민속 설화 물의 요정과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접목된 듯한 동화적 이야기다.
동화는 호수의 지배자인 물의 요정 루살카가 호숫가에 사냥을 오는 인간 왕자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루살카는 왕자와 함께하기 위해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아버지인 물의 요정 보드니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녀 예지바바를 찾아간다. 그 계약의 대가는 루살카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는 것이었다. 예지바바는 만약 루살카가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왕자는 죽고 루살카 자신은 영원히 저주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비극적인 운명은 '목소리'의 상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루살카가 겪을 비극적 추락을 앞두고, 그녀가 인간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표현하는 순간을 노래한 아리아가 바로 "Měsíčku na nebi hlubokém”(깊은 하늘의 달이여)다. 이 아리아로 그녀는 그가 가진 감정을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표현한다. 곧 다가올 불가역적 목소리 상실의 비극적인 테제 역할이다. 관객은 이 노래를 통해 그녀가 곧 희생해야 할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극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울수록 더욱더 간절하고 안타까움으로 말이다.
루살카는 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왕자가 꾸는 꿈 속에서라도 자신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루살카는 달의 광범위한 시야와 보편적 연결 능력을 인정하며, 자신의 수중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달을 호출한다.
"은빛 달이여, 내가 그를 팔로 안고 있음을 그에게 전해주오"라는 구절에서 루살카의 비록 수동적이지만 강렬하기만 한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인간의 영혼이 정말 나를 꿈꾼다면, 그 기억으로 그를 깨워주오!”라는 노래를 통해 루살카는 욕망의 핵심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을 넘어, 왕자의 꿈이라는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영역에 까지도 침투하여 그의 존재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강력한 바램을 담고 있다.
마지막 구절인 "Měsíčku, nezhasni, nezhasni!" (달빛이여, 사라지지 마, 사라지지 마!)를 통해 그녀는 그녀의 희망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지 보여준다. 이 절규는 그녀 운명의 위태함을 보여주는 장치이자 곧 있을 그녀 자신의 빛(목소리)의 상실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드보르작의 "깊은 하늘의 달이여"는 2시간 30분에 가까운 오페라 전곡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다.
극단적 아름다움은 언제나 비극적 ‘작별’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곡이 아름다운 이유 또한 어쩌면 그 ‘이별’의 정서에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살폈듯이 이 노래는 루살카가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음으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부르는 마지막 노래라는 점이다. 아마도 공연 현장에서 이곡을 듣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절절한 사랑의 마음에 한번 울컥하고, 아마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그녀의 결행에 안타까와 한 번 더 가슴 저미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늘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남겨준 작곡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이 곡을 반복해 들으며 읽다가 멈춰 선 ‘소설’에 빠져야겠다.
아마도 좀 전까지 읽히지 않던 그 소설의 서사에 빠져, 오늘 밤도 잠을 설칠 듯하다.
음악의 힘일 테다. 물의 요정의 선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