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켈리⟫ 노아 바움벡 그리고 8½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제이 켈리(Jay Kelly)"

by KEN

오직 ‘살아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모든 중장년들의 삶의 초상


Intro...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울음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끝끝내 차오르던 불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안쓰러움이 마지막 대사,

“다시 해도 될까요?(Can I go again?)”

그 한 문장에서 단숨에 터져버린 것입니다.


제이 켈리가 그린 세계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생활인의 고단한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직 ‘살아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중장년 삶의 초상이자,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스쳐 지나온 마음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에 대한 분명한 오마주라는 사실은 금세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1986년 초,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잠시 휴학했을 때, 대학로에 있던 영화카페 ‘8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펠리니를 극도로 흠모하던 한 단편영화감독 이세민이 운영하던 공간이었고, 금요일 밤이면 영화학도들이 모여 8mm/16mm 단편영화를 보며 밤새 뜨겁게 토론하던 장소였습니다. 저는 그 식당에서 가끔 영화 필름이나 음악을 틀고, 때로는 칵테일을 만들며 몇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절, 처음으로 페데리코 펠리니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관련 기사)


영화카페 ‘8½’의 모습과 영화 포스터
이세민은 그 이전의 충무로 세대와 달리 문화원 세대 출신으로, 새로운 영화운동을 실행하고, 충무로 현장을 경험한 이들 중 가장 먼저 1983년 <장미와 도박사>로 감독 데뷔를 했으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의 활동이 영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84년 2월, 그는 사업을 하는 대학 후배와 동업으로 대학로에 50평 정도 되는 '8½'이라는 카페를 차린다. 카페 내에 4평 정도의 사무실과 암실이 있었고, 카페 내 시사실에서 8mm, 16mm 영화상영과 세미나 등이 진행됐다. 영화를 공부하던 청년들이 모이는 아지트 역할을 하면서, 매주 1편 하루 3회씩 한국 단편영화와 프랑스 단편영화를 상영했다. _기사 중에서



1.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되거나 아무도 아닌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영화 '제이 켈리(Jay Kelly)'를 읽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바로 조지 클루니라는 실제 영화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노아 바움백은 의도적으로 ‘배우’와 ‘역할’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 듯합니다. 이는 대표적 무비 스타가 또 다른 영화에서의 스타를 연기한다는 복합적 구조를 통해 영화의 메타 서사를 그려냅니다. (NYFF에서의 감독과 배우들이 얘기하는 영화)


이러한 구도로 영화 속 제이 켈리의 위기가 단순한 허구적 사건이 아니라, 현실 속 중장년 생활인이 맞닥뜨리는 노화, 쇠퇴, 회환, 반성의 정서와 긴밀히 접속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첫 장면부터 이어지는 유려한 롱 테이킹 샷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영화 촬영 현장을 헤집듯 안내하는 이 장면은 제이 켈리의 통제 욕구를 드러내며, 동시에 젊은 시절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은밀히 비춰줍니다.


감독이 이미 만족했음에도 제이는 죽음 장면에서 “다시 해도 돼요?(Can we go again?)”를 요청합니다. 이는 결국 자신의 삶 자체를 다시 편집하고 반복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배어 있는 순간이기도 하고, 제이라는 인물이 겪게 될 정체성 혼란의 전조이기도 하다는 평가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세트피스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어떤 시기를 지나며 흔들려왔던 우리 모두의 모습,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의 초상을 동시에 불러내는 강력한 메타포로 기능하는 모양새입니다.

영화의 도입시 죽음 장면을 연기하는 제이 켈리, 그는 이 대사를 통해 영화 전체의 메타 서사를 예시합니다.



2.


2025년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제이 켈리'는 단순히 할리우드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드라마 코미디를 넘어서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명성이라는 화려한 외피 아래 서서히 무너져가는 정체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치밀한 캐릭터 중심 서사를 그려냅니다.


바움백과 에밀리 모티머가 공동 집필했다는 이 작품에서 조지 클루니는 타이틀롤인 유명 배우 제이 켈리를, 애덤 샌들러는 그의 헌신적인 매니저 론 수케닉을 맡아 앙상블을 이룹니다. 두 사람은 삶의 선택과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이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을 마주하기 위해 유럽을 종횡무진하는 여정을 함께합니다.


영화의 표면에는 명성이 주는 화려함, 유명세의 의례, 그리고 크고 작은 코믹한 사건들이 자리하지만, 그 중심에는 후회와 유산, 그리고 끊임없이 달려온 삶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형언하기 어려운 공허함에 대한 성찰이 놓여 있습니다. 제이 켈리는 한 중년 슈퍼스타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며, 풍자와 감정적 성찰, 그리고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 방식을 유려하게 결합해 냅니다.



3.


제이 켈리는 영화사적 선례들과 분명한 대화를 시도합니다. 유럽이라는 배경, 예술가가 맞닥뜨린 실존적 위기, 그리고 메타적 자기 성찰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¹와 우디 앨런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²의 계보를 따르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극 중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의 초상화³가 등장하는 장면은 바움백의 오마주가 얼마나 노골적이며 의도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드러나는 상호텍스트성은 제이 켈리를 해석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 비평적 경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주1)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1963)은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펠리니가 실제로 겪었던 창작의 위기와 예술가의 내면적 혼란을 자전적 방식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주인공 구이도(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가 차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 환상이 뒤섞인 상태 속을 표류하며 자신의 삶과 예술을 다시 마주하는 여정을 그려냅니다. (영화 해설) (씨네뮤직) (필름 Shorts)
주2) 우디 앨런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Stardust Memories, 1980)는 영화감독 샌디 베이츠(우디 앨런)가 자신의 회고전에 참석하면서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 과거의 회상,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8½》에서 분명한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예술가가 맞닥뜨리는 창작의 위기와 자아 탐구, 팬과의 관계, 사랑과 우정의 문제를 초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영화 예고)
주3)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의 초상화는 그가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전설적 배우이자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인물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과 《8½》을 비롯한 여러 걸작에서 희극과 비극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연기로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스트로야니는 단순한 영화배우를 넘어 이탈리아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며, 그의 초상화는 이러한 위상과 업적을 기리는 하나의 예술적 표상으로 기능합니다. (그의 삶 스케치)



4.


영화의 줄거리는 어쩌면 단순해 보입니다.
60세에 접어든 제이는 돌연 차기 영화 출연을 취소하고,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파리를 거쳐 캐리어 공로상 수상을 위해 토스카나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일정의 변경일뿐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내면을 향한 물리적이자 심리적 순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제이의 갑작스러운 결정은 매니저 론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행의 핵심 동기는 가족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바람입니다. 제이는 영화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놓쳐버린 큰딸 제시카와 이미 멀어진 상태이며, 유럽을 여행 중인 막내딸 데이지와는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데이지는 이미 독자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려는 제이의 시도는 어느 순간부터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제이는 결국,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경력과 업적이—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는—거의 아무 의미도 되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곧, 평생을 일터와 직업에 헌신해 온 많은 아버지들이 맞닥뜨리는 씁쓸하고도 보편적인 서사와 겹쳐 보입니다.


바움백 감독은 이러한 제이의 심리적 붕괴와 자기 성찰의 과정을 시각화하기 위해 독특한 서사 전략을 구사합니다. 제이가 자신의 기억 속 장면들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시퀀스를 통해, 과거와 현재, 후회와 욕망이 뒤섞인 그의 내면 풍경을 영화적 언어로 구현해 내는 것이죠.


카메라 워킹은 이 영화의 진정한 압권입니다.
제이 켈리의 심리적 변화는 서사만이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 자체에 명확하게 반영됩니다.


초반부, 제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시기에는 화면 역시 반듯하고 안정적입니다. 그러나 그가 유럽이라는, 덜 통제 가능한 환경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미묘하게 흔들리고, 때로는 주인공의 의지와 어긋나는 듯한 저항의 몸짓을 보입니다. 이는 제이의 내면이 균열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정교한 장치였다는 생각입니다.


관객은 이 흔들림을 단순한 촬영 방식으로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제이의 불안과 호흡, 초조함까지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그의 감정선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영화는 제이가 겪는 내적 동요를 관객인 나의 신체적 감각으로까지 확장해 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현실의 삶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심지어 딸과도 감정적으로 충돌한 뒤 목적 없이 숲 속을 달려가는 시퀀스는 제이 켈리라는 인물의 안타까움을 정점으로 끌어올립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역시—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저와 비슷한 모습을 품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 순간 제이 켈리는 더 이상 스크린 속 인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얼굴을 하고 있게 됩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남편 혹은 아내의 모습이며, 결국은 어느 시점에는 나 자신이기도 하는 겁니다.



5.


영화의 핵심 대사는

“다시 해도 돼요?(Can I go again?)”,

“다시 하고 싶어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는 제이의 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장면을 다시 찍을 수 있지만, 마지막 순간 제이는 또다시 같은 대사를 반복합니다.


“Can I go again?”(다시 해도 될까요?)
그 말이 스크린에 울릴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삶은…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살아왔든, 후회가 남든, 우리의 삶은 이미 흘러왔고 지금의 모습이 결국 우리가 선택해 온 것들의 총합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진실을 마치 오래된 상처를 조심스레, 그러나 깊숙이 건드리듯 쓰리게 깨닫게 하며 끝을 맺습니다. 주변의 모든 관객들에게서 만큼은 박수를 받는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던 듯싶지만 결국 자신의 스텝에게서도, 아버지도, 사랑하는 딸들에게서는 외면받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키며 얘기합니다.


"다시 해도 될까요?"


일부 평론가들의 평가는 다소 야박한 듯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충분히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길 권합니다.

삶을 천천히 반추해 보면서 말입니다.



제이 켈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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