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 오라토리오

파블로 네루다의 서사시를 노래 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by KEN
책장을 정리하고 서재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이 음악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를 가사로 하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Mikis Theodorakis - Pablo Neruda: Canto General」음반이다.
네루다의 이 시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버금간다. 중남 미의 역사를 노래한 방대한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기적이다. 70대의 네루다와 40대의 테오도라키스가 피신지 파리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미오기전」 230-231쪽 인용)


유튜브 계정으로 구매해 소장한 영화 가운데 유일한 작품은 일 포스티노(Il Postino)입니다.


1994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정치적 이유로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망명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에게 우편을 배달하던 청년 마리오 루오폴로 사이에 싹트는 우정과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순박한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며 처음으로 ‘시’와 ‘은유’의 세계를 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삶을 표현하는 언어를 배워 나갑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시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천천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과정은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 마리오는 공산주의 집회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던 중 폭력적인 진압에 휘말려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비극적 결말을 통해 개인의 감수성과 정치적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을 응시합니다.


『일 포스티노』는 시와 사랑, 정치와 민중의 삶을 하나의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네루다의 낭만적인 시 세계와 마리오의 순진한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평가받아 왔습니다. 시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삶이 다시 시대의 거친 현실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원의원으로 있었을 때,
대 초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네.
그곳은 50년에나 한 번 비가 오는 곳이지,
그곳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네.
난 날 뽑아준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싶어 찾아갔어.
하루는 로타에 있는 탄광에서 한 사람이 나왔어.
땀과 모래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고생으로 찌들었고 먼지로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네.
그는 굳은살 박힌 손을 내밀며 말했어.

"어디에 가시든지 우리의 고통을 알려주십시오. 저 아래,
지옥에 살고 있는 당신의 형제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그때 난 인간의 투쟁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
고통받고 있는 자에 대한 시를.
그렇게 '모두의 노래'가 탄생했지.
_ 영화 <일 포스티노>의 50분경에 나오는 네루다의 대사 인용.


영화 속에서 네루다는 자신이 떠나온 칠레에서 저서 칸토 헤네랄(『모두의 노래』)이 비밀리에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마리오가 건네준 소포 속 녹음테이프를 통해 전해 듣습니다. 이 장면은 한 편의 서사시가 어떻게 억압의 현실 속에서 민중의 언어로 살아 움직였는지, 그리고 그 시대적 긴장과 열기를 짧지만 인상 깊게 엿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만...


영화 '일 포스티노'와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익숙했지만, 시나 생애를 체계적으로 읽어본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몇 편, 그리고 단편적으로 접한 몇 편의 시가 지금까지 제가 알고 있던 전부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미오기전』 4부에서 「모두의 노래」라는 에피소드를 읽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오라토리오 칸토 헤네랄이라는 작품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은 곧바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음악은 유튜브 뮤직을 통해 찾아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음반에 수록된 한 곡이 배경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칸토 헤네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합니다.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 만큼, 필요한 부분은 자료를 찾아 보완하고, 현대의 여러 도구들의 도움도 조금 빌릴 생각입니다. 다만 이 발제는 완결된 해설이라기보다, 한 시인과 그가 남긴 시와 음악을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를 함께 나누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이야말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자 기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4·19와 5·18을 거쳐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치열하게 쟁취해 온 민주주의의 역사적 궤적은 어쩌면 파블로 네루다의 칸토 헤네랄이 품고 있는 거대한 서사와 본질적으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억압과 폭력,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시민들이 함께 일어나 자기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려 했던 장면들은,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겪어 온 투쟁의 역사와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특히 「III. 정복자들」 부분에서 네루다가 서구의 정복 신화를 해체해 나가는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겪어야 했던 국가폭력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유럽중심주의적 승리의 서사 뒤편에 가려진 수많은 민중의 고통과 수치,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오래된 것인지를 네루다는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그의 이러한 ‘탈신화화’ 작업이 개인적으로도 큰 고통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그 서사가 이미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도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앞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또 하나의 감각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시대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며, 동시에 우리의 기억을 더욱 또렷하게 다듬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를 읽는 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인식의 깊이와 해석의 역량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문학을 이해하는 능력은 곧 역사와 사회를 꿰뚫어 보는 힘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네루다를 읽으며 더 깊은 해석을 갈망하게 된 이유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I.

파블로 네루다의 칸토 헤네랄(Canto General, 모두의 노래)


칸토 헤네랄은 총 15권의 연작으로 구성된 대서사시로, 그 시작은 식민 이전의 태초적 세계에 닿아 있고, 끝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 시집은, 마치 대륙 자체가 시인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고 있는 듯한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1950년 멕시코에서 초판을 출판한 이 작품은, 단순한 시집을 넘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정치적 투쟁을 아우르는 기념비적인 성취로 평가됩니다. 네루다는 자신의 개인적 삶의 경험과 남미 대륙이 겪어 온 집단적 역사를 엮어 하나의 거대한 노래로 직조해 냅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역사’를 다시 쓰려는 강한 의지입니다. 네루다는 유럽 중심의 기존 사관, 곧 승자와 정복자의 시선으로 구성된 역사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대신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원주민의 삶에 남긴 상처와 착취, 그리고 구조적 불평등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다른 방식의 역사를 시적으로 구성하고자 합니다. 그의 시선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축소되어 온 민중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끌어올립니다. 네루다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영웅의 업적이 아니라, 침묵해 온 수많은 공동체의 고통과 저항이 축적된 기억입니다.


『칸토 헤네랄』이 지닌 강렬한 이념적 색채는 네루다의 생애 경험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 내전을 직접 목격한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분명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 작품에도 역사가 억압과 저항의 변증법을 통해 전개된다는 그의 확신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민중 봉기와 혁명적 지도자, 억압에 맞선 투쟁의 순간들이 강렬한 시적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이 시집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혁명 연대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루다는 역사를 단순히 회상하거나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를 미래의 변혁을 향해 여전히 진행 중인 서사로 재해석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칸토 헤네랄』은 과거의 기록이자 동시에 미래를 향한 선언으로 기능하며, 네루다가 그리고자 했던 역사 인식과 비전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루다 공산당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1940년대에 집필한 이 작품은, 문학 작품을 넘어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지닌 텍스트로 평가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서사시가 혁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언어와 구조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네루다는 성서적 서사 구조를 전유하여, 억압받아 온 민중의 역사를 하나의 구원사로 재구성합니다. 그 결과 『칸토 헤네랄』은 마치 ‘해방의 복음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듯 보입니다. 공산주의자가 성서적 서사를 차용한다는 점은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영화 속 네루다가 가톨릭 신자처럼 그려지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그의 사유와 감수성 속에 종교적 상상력이 일정 부분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전통적 신앙이 제공하던 도덕적 에너지와 역사적 의미를, 혁명적 참여와 사회적 변혁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런 점에서 『칸토 헤네랄』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문학이자 동시에 일종의 ‘정치적 신학’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민중을 향한 도덕적 요청이자,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세속적 성전과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해석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단순한 정치적 선전물이나 프로파간다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네루다는 『칸토 헤네랄』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새롭게 해석하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읽힙니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강한 울림을 지니는 이유는, 바로 그 비전이 특정 시대의 정치적 구호를 넘어 역사와 인간,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라트리오 칸토 헤네랄은 15개의 칸토(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곡 링크: Mikis Theodorakis - Pablo Neruda: Canto General )


1. Amor América (지상의 등불 중 아메리카의 사랑)

이 곡은 칸토 헤네랄의 서문에 해당하는 대목으로, 식민 이전의 아메리카를 다시 불러내는 장면을 열어 줍니다. 네루다는 이 곡을 통해 대륙의 자연과 원초적인 생명력,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 왔던 조상들의 기원을 소환합니다. 마치 침략과 폭력으로 꺼져 버렸던 땅의 등불을 다시 밝히듯, 그는 아메리카의 본래적 얼굴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이 도입부는 이후 전개될 거대한 서사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네루다는 역사를 정복의 시점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기억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며, 라틴 아메리카의 시간을 ‘잃어버린 과거’가 아닌 ‘되찾아야 할 기원’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가발과 재킷이 존재하기 전부터 강, 핏줄처럼 연결된 강,
산맥이 있었다. 산맥의 들쑥날쑥한 물결 위에는 미동조차 없는 콘도르와 백설이 있었다.
그리고 습기, 울창한 녹음,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천둥, 지상의 평원이 있었다.

인간은 흙, 질그릇, 말랑말랑한 진흙으로 빚은 눈꺼풀, 점토로 형태가 빚어진 존재.
카리브의 항아리, 칩차의 돌.
잉카제국의 잔, 아라우카 족의 규토로 만든 존재.
용맹스러우나 여린 존재, 그러나 그들의 촉촉한 수정 무기 손잡이에는 이 땅의 표식이 새겨 있었다.

그 누구도
후에 그 표식을 기억할 수 없었다. 바람은
그 이름을 잊었고, 물의 언어는 묻혀버렸고, 기호 체계도 잃어버렸다.
아니, 침묵과 피로 뒤덮여버렸다.

양치기 형제들이여, 생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야생의 장미 같은 빨간 방울
우거진 녹음에 떨어지자
지상의 등불이 꺼져버렸다.
_ 칸토 헤네랄 1부. 지상의 등불 중 '아메리카의 사랑' 도입부 (<모두의 노래> 31-32쪽)


2. Alturas de Macchu Picchu (마추픽추의 고산)

이 시는 칸토 헤네랄 전체에서 하나의 분명한 전환점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네루다는 마추픽추 앞에서, 고대 문명이 지닌 압도적인 영원성과 그 이면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민중의 고단한 삶을 대비시키며 정치적 자각에 이르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1943년 자신의 실제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눈앞에 펼쳐진 문명의 장엄함 아래 묻혀 있던 노동의 기억을 하나씩 소환합니다. 돌을 쌓고 길을 내며 문명을 떠받쳤으나 역사 속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네루다는 더 이상 폐허를 감상하는 시인에 머물지 않고,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말하는 증언자로 자리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당 칸토는 단순한 고대 문명에 대한 찬가를 넘어, 억압된 역사와 민중의 삶을 현재로 호출하는 선언으로 완성됩니다. 네루다는 마추픽추를 통해 과거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했던 무명의 삶들을 역사와 시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고자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옥수수처럼 타작되었다.
패배의 역사, 불행한 사건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곡물 창고에서, 하나에서 일곱, 그리고 여덟까지.
인간을 찾는 것은 하나의 죽음이 아닌 무수한 죽음.
매일 겪어내는 작은 죽음,
먼지, 구더기, 빈민가의 수렁에서 꺼지는 등불, 두툼한 날개의 작은 죽음이
짧은 창이 되어 우리 모두를 찌른다.
그리고 인간은 빵이나 칼에 쫓긴다.
목동, 항구의 아이, 쟁기를 모는 구릿빛 대장, 법석대는 거리의 쥐새끼까지도.
모두들 죽음을, 나날의 짧은 죽음을 기다리며 시들어 갔다. _III편 중에서 (<모두의 노래> 53쪽)


3. Los Conquistadores (정복자들)

이 장에서 네루다는 콜럼버스 이후의 정복 시대를 영웅 서사로 미화해 온 서구의 신화를 정면으로 해체합니다. 그는 이 시기를 문명의 진보가 아니라, 폭력과 배신, 파괴로 점철된 암흑의 역사로 재구성합니다. 정복자들은 더 이상 문명의 선구자가 아니라, 약탈과 학살을 실행한 가해자로 묘사되며, 반대로 원주민 공동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평화로운 존재로 재현됩니다.


이 과정에서 네루다는 라스 카사스의 기록에 기초한 이른바 ‘검은 전설(Black Legend)’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호출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정복과 식민의 폭력이 지닌 잔혹한 실체를 생생하게 소환하며, 기존의 승리 서사를 윤리적으로 전복합니다.


결국 이 장은 단순한 역사 비판을 넘어, 정복 신화를 뒤집고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억압된 기억을 회복하려는 파블로 네루다의 문학적이자 정치적인 선언으로 자리합니다. 네루다는 여기서 역사를 다시 쓰는 시인의 역할을 분명히 자임하며, 침묵당했던 이들의 고통과 분노를 시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백정들은 섬을 초토화했다.
과나니 섬은
순교 역사의 1호를 기록했다.
흙의 자식들은 자신들의 미소가 부서지고,
사슴같이 여린 몸이 구타당하는 걸 알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묶였고, 상처를 입었고, 불에 달구어졌고, 화형에 처해졌고.
개에 물렸고, 땅에 묻혔다. _ 바다에 오다(1493) 중에서. (<모두의 노래> 75쪽)


4. Los Libertadores (해방자들)

‘해방자들’ 장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영웅들을 하나의 거대한 해방 서사 속으로 불러 모읍니다. 그는 이들의 개별적 투쟁을 고립된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대륙 전체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집단적 역사 장면으로 재구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호세 미겔 카레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같은 인물들의 희생은 단순한 전기적 사실을 넘어, 찬가처럼 울려 퍼지는 상징적 목소리로 형상화됩니다. 네루다는 이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해방의 의미를 개인의 영웅성에 국한하지 않고, 민중 전체가 함께 감당해 온 역사적 책임과 희망의 표현으로 확장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방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해방의 역사를 하나의 문학적 신전으로 세우려는 네루다의 정치적이자 시적인 의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를 통해 영웅을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해방 그 자체를 대륙의 기억 속에 영구히 각인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기 나무가 온다, 폭풍의 나무, 민중의 나무.
수액을 먹고 자라는 잎처럼, 땅에서 영웅들이 올라오고,
웅성대는 무수한 이파리를 바람이 흔들어대자,
다시 한번 빵의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
_ 해방자들 중에서 (<모두의 노래> 125쪽)


5. La Arena Traicionada (배신의 모래)

‘배신의 모래’ 장에서 네루다는 독립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가 맞이한 또 다른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그는 식민 권력이 물러난 자리에서 내부 엘리트의 부패와 미국식 신식민주의의 착취가 결합되며, 정복자의 얼굴만 바뀐 채 배신과 수탈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장에서 네루다는 외부의 침략만이 아니라, 내부의 공모와 타락이 대륙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결과 ‘배신의 모래’는 해방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을 응시하게 하는 대목이자, 진정한 해방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비판적 선언으로 기능합니다.

어쩌면, 지상에 대한 망각은, 겉에 걸치는 옷처럼, 점점 더 커질 수 있고, 숲 속의 어두운 부식토처럼, 삶에 양식을 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어쩌면, 어쩌면, 인간은 불에 다가가, 대장장이처럼 쇠 위의 쇠에게 무두질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석탄의 눈먼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눈을 감지도 않은 채, 무너진 곳, 물속, 광물, 파국을 향해 저 아래로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러나 내 그릇은 다르다, 내 양식도 다르다.
내 눈은 망각을 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내 입술은 모든 시간, 모든 시간을 향해 열린다.
시간의 한 부분만이 내 손을 허비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없애고 싶은 이 고통에 대해 당신께 말하겠다.
당신이 그 고통의 화상 사이에서 다시 살게 하겠다.
그것은 출발하기 위해서 한 역에 멈추는 것이 아니고, 이마로 이 땅을 치기 위해서도 아니며, 짠 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는 무한한 결심을 가지고 알아가면서 걷고, 올바른 것을 만지기 위한 것이다.
엄격함이 기쁨의 조건이 되어서.
우리가 무너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_ 배신의 모래 중에서 (<모두의 노래> 263-264쪽)


6. América, No Invoco Tu Nombre en Vano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이 장에서 네루다는 아메리카를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품은 하나의 생명체로 호명합니다. 그는 정복과 착취, 독재의 시간을 견뎌 온 대륙이 여전히 혁명적 잠재력과 연대의 힘을 간직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여기서 그의 호명은 단순한 이름 부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중이 겪어 온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공동의 의지를 새기는 일종의 서약으로 제시됩니다. 네루다는 시를 통해 대륙을 부르는 동시에, 그 대륙 위에 살아온 사람들에게 역사와 책임, 그리고 희망을 다시 맡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메리카, 나는 너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마음에 칼을 매달고 영혼에 떨어지는 방울을 참고,
창문으로 새로운 너의 날이 내게 밀려올 때,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나를 만들어낸 빛 속에 있고
나를 규정하는 그림자 안에서 산다.
포도처럼 달콤하나 끔찍하고,
설탕을 만드나 체벌이 기다리는 너,
너와 같은 종류의 정액에 젖어,
네 유산의 피를 마시면서.
너의 본질적 여명 속에서 자고 깬다. _ (<모두의 노래> 374-375쪽)


7. Canto General de Chile (칠레를 위한 모두의 노래)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거대한 대륙적 서사 속에서 칠레를 특별히 불러내며, 그곳을 자연과 민중의 투쟁이 깊이 얽힌 운명적 공간으로 제시합니다. 광물과 산맥, 바다와 사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역사적 주체로 등장하고, 칠레 민중이 겪어 온 사회적·정치적 투쟁은 시인의 신념이 형성된 근원으로 드러납니다.


이 대목에서 네루다는 대륙 전체를 노래하던 시인의 자리에서, 조국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섭니다. 그 결과 이 칸토는 라틴 아메리카의 집단적 역사 속에 칠레를 위치시키는 동시에, 시인이 자신의 뿌리와 신념을 고백하는 가장 진솔하고도 내밀한 노래로 읽힐 수 있습니다.

조국, 내 조국, 내 피를 그대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가 어머니에게 하듯, 애원한다.
거두어다오,
이 눈먼 기타와 잃어버린 이 이마를.
나는 세상으로 그대 자식들을 만나러 나갔다.
그대 눈(풀)의 이름으로 쓰러진 이들을 돌보러 나갔다.
그대의 순수한 목재로 집을 짓기 위해 나갔다.
그대의 별을 상처받은 영웅들에게 가져다주러 떠났다.

지금 그대의 존재 안에서 잠들고 싶다.
그대의 별이 빛나는 하늘, 항해의 밤, 가슴을 울리는 현을 들려주는 맑은 밤을 다오.

내 조국이여, 그늘에서 나오고 싶다.
내 조국이여, 장미를 바꾸고 싶다.
_ 찬가와 귀향(1939) 중에서 (<모두의 노래> 374-375쪽)


8. La Tierra Se Llama Juan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라틴 아메리카를 ‘후안’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하며, 대륙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온 노동자와 농민, 곧 익명의 민중 전체를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불러냅니다. 그는 이들의 고단한 삶과 소박한 희망, 그리고 억압 속에서도 끝내 지켜 낸 존엄을 과장 없이, 그러나 단단한 울림으로 그려 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네루다는 라틴 아메리카 역사의 중심을 다시 설정합니다. 그의 선언에 따르면, 역사를 움직여 온 주체는 위대한 영웅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이름 없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 칸토는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한 시적 언어로 확인하며, 민중의 삶 자체를 역사와 서사의 중심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해방자들 뒤에서 후안은 목공소에서, 젖은 광산에서 일하고, 물고기를 잡고, 투쟁했다.
그의 손은 땅을 경작하고 길을 가늠하는 데 썼다.
그의 뼈들은 산지사방에 있다.
그래도 산다. 흙에서 돌아왔다. 태어났다.
영생의 식물처럼 다시 태어났다.
순수하지 못한 밤은 밤새 그를 수장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명이 되자 그의 불굴의 입술만 확인했을 뿐.
그를 묶었으나 지금은 결연한 군인이다.
그에게 상처를 냈으나 지금은 원기왕성하다.
그의 손을 잘랐으나 지금은 그 손으로 두드린다.
그를 묻었으나 지금은 우리와 함께 노래하며 온다.
후안, 문과 길이 이제 당신의 것이다.
땅, 민족이 당신의 것이고, 진실은 당신의 피에서 당신과 함께 태어났다.

그들은 당신을 뿌리 뽑을 수 없었다. 당신의 뿌리,
인류의 나무, 영원한 나무,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오늘 강철로 보호받고 있으며,
괴로워하는 이리가 무는 것에 대비해 당신의 위대함이 철통같이 방어되고 있다.

민중이여, 질서는 고통에서 태어났다.

질서에서 그대의 승리의 깃발이 태어났다.

쓰러진 모든 손으로 깃발을 들고, 모여든 모든 손으로 그것을 방어하고,
그대의 무적의 얼굴들이 별을 향해 마지막 투쟁에 나서게 하자.
_ 그 땅 이름은 후안이라네 (<모두의 노래> 448-449쪽)


12. Los Ríos del Canto (노래하는 강들)

이 칸토에서 네루다는 시를 고정된 언어가 아니라, 대륙 곳곳으로 흘러가며 민중의 의식을 깨우는 하나의 ‘강’에 비유합니다. 그는 예술을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기억을 보존하고 저항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살아 있는 힘으로 이해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칸토는 네루다 시학의 핵심을 응축해 보여 줍니다. 시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공동체와 역사 속을 흐르며, 사람들을 연결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매개가 됩니다. 네루다에게 시란 읽히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와 민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계속해서 움직이는 실천적 언어임을, 이 칸토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보게, 그 잔을 내게 주고 들어보게. 나는 축축하고
급류에 휩싸인 내 아메리카로 에워싸여 있다네.
때때로 침묵을 잃고, 밤의 화관을 잃는다네.
증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 한 허공의 허공,
강아지의 황혼, 한 개구리의 황혼이 나를 에워싸지.
그러면 드넓은 땅이 우리를 떼어놓는 것처럼 느껴.
자네 집에 가고 싶네. 나를 기다리는 걸 알고 있네.
우리만 선할 수 있으니, 그냥 선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빚진 게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자네에게 빚진 게 있지, 그건 조국. 기다려.

자네는 돌아갈 걸세. 우리는 돌아갈 걸세. 어느 날은
자네의 강 연안에서 황금빛에 취해, 자네와 함께
항구로 가고 싶네, 남쪽 항구는 그때 못 갔거든.
_ XII. 노래하는 강들 중에서 (<모두의 노래> 545-546쪽)


13. Coral de Año Nuevo para la Patria en Tinieblas (어둠에 묻힌 조국을 위한 신년 인사)

이 칸토에서는 어둠 속에 놓인 조국을 향한 집단적 희망과 해방의 열망을 하나의 합창으로 형상화합니다. 그는 절망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끝에서 새벽의 도래를 예감하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노래는 개인의 탄식이 아니라, 민중 전체가 함께 부르는 예언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네루다는 여기서 민중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이 각자의 고립된 외침이 아니라, 분절되었던 목소리를 회복해 하나의 합창으로 만들어 내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 칸토는 절망의 한복판에서조차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노래하는, 집단적 희망의 선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모든 다정한 땅을 껴안는 사람이다.
내 조국의 꽃피는 허리. 기쁨이 꺼지면 우리 서로 말하기 위해,
이 시간을 닫힌 꽃처럼 당신께 드리기 위해 당신을 부른다.
어둠 속에 놓인 내 조국에 새해 인사를.
우리는 함께 간다. 세상은 밀로 왕관을 썼고, 높은 하늘은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밤에는 순수한 높은 돌을 부수면서.
이제 일 분만 있으면 새 잔이 채워질 것이고, 우리를 이끄는 시간의 강과 합쳐질 것이다.
이 순간, 이 잔, 이 땅은 당신 것이다. 그것들을 정복하고, 여명이 어떻게 터오는지 들어보아라.
_ 어둠에 묻힌 조국을 위한 신년 인사 중에서 (<모두의 노래> 587쪽)


15. Yo Soy (나는)

마지막 장 「나는(Yo Soy)」에서 네루다는 더 이상 개인적 고백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대륙의 역사와 민중의 운명과 결합된 주체로 선언합니다. 여기서 그의 ‘나’는 사적인 자아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품은 집단적 목소리로 확장됩니다.


네루다는 이 장을 통해 앞으로도 노래하고, 기억하고, 싸우겠다는 혁명적 의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합니다. 시인은 역사 앞에 침묵하지 않는 존재로서 자신을 위치시키며, 시적 발화 자체를 하나의 실천으로 제시합니다.


그 결과 「나는」은 『칸토 헤네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존재 선언으로 묶어내는 장엄한 결말을 이룹니다. 대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이 한 문장 안에서 결집되며, 네루다는 시를 통해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라는 선언을 남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스페인, 꿈에 휘감겨, 이삭을 가진 머리칼처럼 깨어나는 너,
내가 본 것은 어쩌면 어둠과 민둥산 사이에서 태어나는 너,
경작하는 너, 떡갈나무와 산 사이에서 일어선 너.
그리고 상처를 안고 대기를 가로지르는 너.
그러나 옛날의 도적 떼가 모퉁이 요소마다에서 네게 공격을 가하는 걸 보았다.
그자들은 가면을 쓰고, 뱀으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죽음의 극지방 늪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자 잡초에서 떨어져 나온 네 몸이
상처 입은 채 모래 위에서 찢겼고,
세상이 무너져 내렸고, 고통은 가중되었다.
_ 전쟁(1936) 중에서 (<모두의 노래> 665쪽)

II.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에게서 음악으로 새롭게 탄생한 오라토리오 칸토 헤네랄


칸토 헤네랄이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만나 오라토리오로 재탄생한 사건은, 단순한 예술적 우연이 아니라 냉전기 권위주의와 억압에 맞선 문화적 연대의 정치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루다와 테오도라키스는 모두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예술가로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인해 자국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네루다는 1940년대 후반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했고, 이 경험은 『칸토 헤네랄』 제10부 「도망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테오도라키스 역시 1967년 이후 그리스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1971년부터 파리에서 망명 작곡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두 사람의 협업은 바로 이 파리 망명 공간에서 197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테오도라키스는 이 오라토리오를 두고 “네루다의 투쟁적 영혼과 자유·독립·민주주의를 향한 인민 혁명에 대한 헌신을 음악으로 재현한 작업”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협업이 지닌 의미는 당시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을 시작할 무렵 그리스는 군부 독재하에 있었고, 칠레에서는 사회주의 대통령 아옌데가 집권 중이었으나 곧 쿠데타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칠레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붕괴되었고, 네루다는 그로부터 불과 12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테오도라키스가 1976년 네루다 추모 악장을 추가한 것은, 이 작품이 특정 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 반권위주의 저항의 메시지를 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시를 단순히 음악화한 것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대륙적 서사시를 그리스와 세계의 해방 투쟁에 대한 음악적 응답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는 〈아메리카의 사랑〉을 출발점으로 1972년까지 7개 악장을 완성했고, 이후 1974년 초연, 1976년 추모 악장 추가, 1981년 최종 13악장 완성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시대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네루다가 파리에서 직접 리허설을 지켜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고, ‘에밀리아노 사파타’나 ‘라우타로’ 같은 혁명적 인물을 다룬 시의 추가를 제안했다는 일화는, 그가 이 작품을 단순한 낭독이 아니라 ‘대륙적 저항의 교향’으로 확장하려 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결국 『칸토 헤네랄』 오라토리오는 네루다의 시와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이 결합해, 칠레와 그리스라는 두 민족의 투쟁을 잇고, 냉전기 억압에 맞선 우리 시대의 집단적 증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강렬한 서사시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오라토리오의 만남입니다. 이는 문학과 음악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역사와 역사의 만남, 그리고 공간과 공간의 만남으로 확장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연작시 칸토 헤네랄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오라토리오 작업은, 20세기 예술이 정치적 현실과 만날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네루다의 텍스트는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 경험과 독립, 혁명, 민중의 투쟁과 상상력을 하나의 대륙적 서사로 엮어낸 거대한 시적 건축물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인식과 해방의 미학이 결합된 이 작품은, 억압받는 민중이 스스로를 역사적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정치적 성전으로 기능했습니다.


여기에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생생한 호흡과 육체를 불어넣습니다. 그는 오페라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단순한 화성, 반복적 리듬, 그리고 그리스 대중음악의 핵심 악기인 부주키를 적극 활용합니다. 이는 이 오라토리오의 청중이 공연장의 특권층이 아니라 거리의 민중임을 분명히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음악은 예술의 장벽을 낮추고, 네루다의 정치적 언어를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는 매개가 됩니다.


망명을 경험한 두 예술가의 만남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지정학적 저항의 상징이 됩니다. 칠레와 그리스 모두 군부 독재 아래에서 시민의 자유가 억압되던 시기였고, 바로 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 작품은 반제국주의, 사회 정의, 민중 해방이라는 메시지를 국경과 언어를 넘어 보편적 연대로 확장시켰습니다.


결국 테오도라키스의 『칸토 헤네랄』은 음악으로 된 시집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넘어 울려 퍼지는 연대의 선언이며, 문학과 음악이 함께 역사적 폭력에 맞서 형성한 예술적 저항의 대표적 유산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관련자료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 파블로 네루다, 고혜선 역, 2016,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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