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의 『신학 공부 요강』을 통한 기본 재정리
2025년, 아카데미아를 통해 처음 접한 슐라이어마허는 이후 제게 ‘해석이라는 행위’와 '사유의 기준을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참고,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 8장을 통해 본 슐라이어마허)
강좌의 시작 시점에 던져진 질문, "이러한 학습이 자신의 삶에 어떤 유용함을 주는가?"에 저는 당시 대략적 답변으로 얼버무렸지만, 그 물음은 이후에도 계속 제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이 질문은 "나는 왜 공부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최종원 교수는 “그리스도인에게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공부란 개인의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지적인 노동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읽고 분별하며 성찰하는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같은 책에서 강영안 교수는 공부를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또한 공부가 단지 느끼고 즐기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스스로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공부의 엄격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저는 분명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응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가 강교수가 신학분과의 체계를 세운 최초의 사람이라고 언급한 슐라이어마허의 1차 저작 읽기였던 것입니다.
19세기 초 그가 집필한 『신학 입문 강의를 위한 신학 연구에 대한 간략한 개관』(원제: Kurze Darstellung des theologischen Studiums zum Behuf einleitender Vorlesungen)을 통해, 기독교 신학을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 정립하고 각 분과를 어떻게 정의하며 유기적으로 연결했는지를 기초부터 다시 살펴보는 일이 제게는 ‘반드시 필요한 또 하나의 작업’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전체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지도이자 출발의 기준점, 곳 네비게이터가 필요했던 겁니다. 아래의 내용은 바로 그 과정에서 파악하고 정리한 것이며, 여러 현대적 도구의 도움을 받아 정리한 결과입니다.
0. Intro...
19세기 초 독일 지성사는 계몽주의의 이성적 비판과 낭만주의의 감성적 부흥이 교차하던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의 중심인물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개신교 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 대학이라는 새로운 제도적 틀 속에서 신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재정립하려는 야심찬 기획을 시도했습니다.
그 결실인 『입문 강의를 위한 신학 연구의 간략한 개요』(이하 『신학 공부 요강』)는 분량은 짧지만, 이후 200년간 신학 교육의 방향을 규정한 높은 사상적 밀도와 체계성을 지닌 텍스트라는 겁니다. 이번 정리에서는 슐라이어마허가 구상한 신학의 체계와 각 분과의 학문적 성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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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슐라이어마허가 이 책을 집필하던 1810년대 초반은,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전쟁의 패배 이후 국가적 재건을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빌헬름 폰 훔볼트가 주도한 교육 개혁은 베를린 대학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슐라이어마허는 신학부 창설과 초대 교수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신학은 이중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①계몽주의 철학으로부터 신학이 과연 보편적 이성에 기반한 학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도전을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②교회가 국가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 속에서 그 자율성이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이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 안에서 정당한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성직자 훈련이나 교리 교육을 넘어, 근대 학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체계적 방법론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저서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서, 신학의 학문적 정당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교회의 실천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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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정의
슐라이어마허 신학 방법론의 핵심은 신학을 순수 학문이 아닌 ‘실증 학문’으로 규정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서론에서 "신학은 실증 학문이며, 그 부분들은 학문 자체의 개념에서 비롯된 필연성이 아니라, 특정한 신앙 양태, 즉 특정한 하나님 의식(God-consciousness)의 정형화와 관련된 공동의 관계를 통해서만 하나의 응집력 있는 전체로 결합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정의는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순수 철학이나 수학이 내적 논리의 필연성에 의해 전개되는 학문이라면, 실증 학문(법학, 의학 등)은 외적인 역사적 실체와 실천적 목적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라는 겁니다. 법학이 국가의 법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하고 의학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듯이, 신학은 '기독교 교회'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공동체의 보존과 지도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의 모든 분과—성서학, 교회사, 조직신학—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라는 궁극적인 실천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는 신학이 상아탑의 사변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언제나 교회의 구체적인 삶(Leben)과 연결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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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분과의 성격 설명(은유)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의 세 가지 주요 분과인 철학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나무’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이 비유는 각 분과가 서로 분리된 기능적 부속물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처럼 상호 의존하며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먼저 철학신학(Philosophical Theology)은 나무의 뿌리에 해당합니다. 나무가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흡수하듯, 철학신학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일반 종교사적 맥락 속에서 규명하고, 그 고유성을 식별함으로써 신학 전체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합니다. 이는 신학이 임의적 신념 체계가 아니라, 분명한 자기 이해를 지닌 학문임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 작업입니다.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은 나무의 줄기에 해당합니다. 줄기가 나무의 중심을 이루고 전체를 지탱하듯, 슐라이어마허에게 신학의 본체는 역사적 탐구에 놓여 있습니다. 기독교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된 실재이기 때문에, 성서학·교회사·교리사와 같은 역사적 분과들은 신학의 중심 구조를 이루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은 나무의 수관, 곧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철학신학과 역사신학을 통해 축적된 모든 인식과 통찰은, 교회를 실제로 지도하고 섬기는 구체적인 기술과 실천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실천신학은 신학 전체가 지향하는 목적지이며, 신학이 교회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역입니다.
이와 같은 삼분법적 구조는 이전까지 혼재되어 있던 신학의 여러 영역을 논리적 순서와 목적론적 방향성에 따라 재구성한 것으로, 이후 근대 신학 백과사전적(Theological Encyclopedia) 체계의 표준을 제시한 중요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제1부. 철학신학 — 신학의 뿌리와 본질의 규명
철학신학은 슐라이어마허의 체계에서 신학 연구의 논리적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철학신학은 기독교 신앙을 일반 이성이나 보편적 철학 원리로부터 연역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이 지닌 고유한 본질(distinctive nature)이 무엇인지를 식별하고, 그것이 다른 종교 공동체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해명하는 비판적 과제를 철학신학에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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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과 논쟁
철학신학은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우리가 섬기는 기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킵니다. 이 과제는 교회의 외부를 향한 변증학(Apologetics)과 내부를 향한 논쟁학(Polemics)이라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활동으로 수행됩니다.
① 변증학: 기독교의 역사적 필연성과 진리성 입증
전통적인 변증학이 불신자를 향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성경의 기적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면, 슐라이어마허의 변증학은 그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합니다. 그의 관심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있지 않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슐라이어마허는 역사 속에 나타난 다양한 기독교의 모습들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핵심, 곧 ‘기독교적 종교성’의 본질을 식별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 본질을 나사렛 예수에 의해 성취된 구원 사건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하나의 유일신 신앙 안에서 연결되는 종교적 구조로 이해합니다. 변증학의 과제는 바로 이 고유한 본질을 개념적으로 명료화하는 데 있습니다.
동시에 그의 변증학은 기독교 내부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론』에서 언급했던 이른바 “교양 있는 멸시자들”, 즉 기독교를 시대에 뒤떨어진 신앙으로 간주하는 외부 지성인들과의 대화를 중요한 과제로 삼습니다. 그는 종교철학적·역사철학적 논증을 통해, 기독교가 인류의 종교적 발전 과정에서 가장 고등하고 완성된 형태의 종교임을 보여주고,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연적인 진리임을 설득하려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변증학은 신학의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믿음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차원인 ‘절대의존의 감정’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세계관임을 드러내며, 그 지점에서 신학은 일반 학문 세계와 의미 있는 접점을 형성하게 됩니다.
② 논쟁학: 교회 내부의 병리적 현상 진단과 치유
변증학이 교회의 외적 정체성과 경계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면, 논쟁학은 교회의 내적 순수성을 보존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교회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이해했기 때문에, 논쟁학의 과제를 의학적 은유, 곧 건강과 질병의 개념을 통해 설명합니다.
논쟁학의 첫 번째 과제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교리적·실천적 일탈 현상을 식별하는 일입니다. 이단이나 분파주의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들은, 슐라이어마허에게 단순한 지적 오류가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적 생명력을 저해하는 ‘질병’의 징후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틀렸느냐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생명 구조가 왜곡되었는가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논쟁학의 목적은 이단을 정죄하거나 배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치유함으로써, 교회를 그 본질에 부합하는 건강한 상태로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논쟁학은 공격적인 논박의 기술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판적 자기 성찰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슐라이어마허는 변증학과 논쟁학의 상호의존성을 분명히 합니다. 변증학 없이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규정할 수 없기에 논쟁학 자체가 성립할 수 없고, 반대로 논쟁학 없이는 기독교의 내적 순수성이 훼손되어 변증학 또한 공허해집니다. 이 두 분과는 철학신학 안에서 서로를 전제하며 순환적으로 작동하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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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 규정
『신학 공부 요강』에서 제시된 철학신학의 핵심은 결국 기독교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이 문제를 그의 주저인 『기독교 신앙』(Glaubenslehre)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전개하며, 종교와 기독교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합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지식의 영역, 곧 형이상학이나 윤리적 행위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자리는 ‘감정’, 보다 정확히 말해 ‘절대의존의 감정’에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자이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자각하는 근원적 의식 상태를 의미합니다. 종교는 개념적 사유나 도덕적 결단 이전에, 이러한 존재론적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모든 종교가 이 절대의존의 감정을 토대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지만, 기독교는 그 감정이 ‘구속(Redemption)’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경험과 결합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곧 죄로 인해 왜곡되고 상실된 하나님 의식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고 완성된다는 경험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이룹니다. 철학신학은 이러한 기독교의 특수성을 일반 종교사적 지평 위에서 논리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이후 전개될 역사신학이 무엇을 탐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한정해 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제2부: 역사신학 — 신학의 본체와 실증적 탐구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체계에서 역사신학은 분량과 중요도 면에서 단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신학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때, 역사신학이 그 몸통을 이루며, 철학신학은 뿌리에, 실천신학은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역사신학을 중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독교는 추상적인 이념이나 관념의 체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사건과 공동체의 삶으로 실현된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역사신학은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잇는 방대한 지식 체계로 구성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를 세 영역으로 세분화하는데, 첫째는 성서 본문의 형성과 의미를 탐구하는 주석신학(Exegetical Theology)이며, 둘째는 교회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다루는 좁은 의미의 역사신학(Church History)입니다. 여기에 더해 그는 기독교의 현재 상태를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영역(Dogmatics and Statistics)을 포함시키는데, 이는 교의학과 교회 통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신앙 내용과 교회 현실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역사신학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변화해 왔는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신학의 핵심 영역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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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신학
주석 신학은 기독교의 원천인 초기 문헌, 즉 성경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에게 성경 연구는 교리 증명을 위한 텍스트 채굴 작업(proof-texting)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생동하는 신앙 의식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① 정경(Canon) 개념의 혁신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정경을 하늘에서 완성된 형태로 주어진 법전이 아니라, 초기 교회가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고 보존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선택하고 수집한 결과물로 이해했습니다. 정경은 곧 교회의 신앙 경험이 응축된 역사적 산물이며, 그 형성과 확정 과정 자체가 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이해에서 그는 정경을 닫힌 목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신교회는 정경을 더 정확하게 확정해야 할 과제를 끊임없이 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경의 범위와 권위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 입장은 성경을 절대적 권위의 대상으로만 고착시키기보다, 비판적으로 연구해야 할 텍스트로 이해하도록 이끌었으며, 성경의 형성과 전승 과정을 탐구하는 고등 비평을 신학의 정당한 학문 과제로 수용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슐라이어마허는 신약 성경의 우위성을 분명히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건에 있다면, 그 삶과 사역을 직접 증언하는 신약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구약 성경은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종교적 배경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기독교 신앙을 직접 규정하는 규범적 위치에 두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이었으며, 이후 신약 중심적 신학 전통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② 해석학(Hermeneutics)의 전개
슐라이어마허는 현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성경 해석의 방법론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는 성경 주석을 특별한 신학적 기술로 분리하지 않고, 모든 텍스트 해석에 적용되는 일반 해석학의 원리를 주석 신학에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텍스트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는 언어의 규칙과 문맥을 분석하는 문법적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저자의 내면세계와 창조적 개성을 재구성하려는 심리적, 혹은 기술적 해석입니다. 해석자는 단순히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가 형성된 정신적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저자의 사유와 의도를 재체험해야 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해석자가 “저자가 자신을 이해한 것보다 더 잘 이해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해석학적 원리는 성경을 신성불가침의 초역사적 경전이 아니라, 인간 저자의 신앙 경험과 고백이 담긴 역사적 텍스트로 읽게 만들었으며, 이후 근대 성서학과 비평적 주석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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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신학
주석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시작’을 다룬다면, 교회사학은 그 출발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교회사를 단순한 사건들의 연대기적 나열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사를 기독교의 본질이 각 시대의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전개되어 온 유기적 발전의 과정으로 서술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사의 핵심 주제는 연속성과 변화의 긴장 관계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역사 속에서 지속되지만,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제도와 교리, 예배 형태 등 다양한 차원에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교회사 연구는 바로 이 본질이 어떻게 구체적인 역사적 형식 속으로 ‘육화(Incarnation)’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입니다.
또한 슐라이어마허는 교회를 개별 교파들의 느슨한 집합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의 보편적 생명체로 파악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사 서술은 분열과 대립의 역사를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전통과 형태 속에서도 유지되어 온 기독교적 일치의 흐름을 조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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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에 대한 역사적 지식: 교의학과 교계 통계학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체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부분은 바로 교의학(Dogmatics)을 조직신학이나 철학신학이 아닌, 역사신학의 범주에 배치한 것입니다.
교의학
전통적으로 교의학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 체계를 구축하는 학문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교의학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그에 따르면 교의학이란 “주어진 시점에 기독교 교회, 특히 개신교회 안에서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이 정의에서 핵심은 교의학의 현재성입니다. 교의학은 과거에 고정된 신앙 내용을 반복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 여기(hic et nunc)’ 살아 있는 공동체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지를 서술합니다. 따라서 교의학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며 가변적입니다. 시대적 조건이 변화하고 교회의 신앙 의식이 새롭게 형성되면, 교의학 역시 그에 맞추어 수정되고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슐라이어마허에게 교의학은 교회를 위한 봉사적 학문입니다. 그 목적은 절대적 진리를 선언하는 데 있지 않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현재 교회의 신앙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설교와 교육이라는 실천을 수행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이로써 교리는 형이상학적 사변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실제 삶과 신앙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 이해되며, 이는 교의학에 대한 기존 이해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계 통계학
교의학이 교회의 내적 신앙 상태를 기술하는 학문이라면, 교계 통계학은 교회의 외적이고 사회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교회를 순수한 영적 공동체로만 보지 않고, 사회 속에 실제로 존재하며 제도적으로 작동하는 구체적인 실체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교계 통계학은 교파의 분포, 교회의 조직 구조, 예배 관습, 국가와의 관계 등 교회의 현실을 경험적 자료에 근거해 분석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교회의 상태를 진단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교계 통계학은 오늘날의 종교사회학이나 교세 조사에 앞선 선구적 시도로서,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이 처한 목회적·사회적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효과적인 지도와 운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3부: 실천신학 — 신학의 왕관과 기술(Technique)
슐라이어마허는 실천신학을 "신학 연구의 왕관(Crown)"이라고 칭했습니다(1811년 초판 서문). 비록 1830년 개정판에서는 이 표현이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나, 실천신학이 전체 신학 체계의 최종 목적지이자 완성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철학신학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역사신학의 줄기를 거쳐 축적된 모든 지식은, 결국 교회를 실제로 지도하고 섬기는 실천적 행위로 결실을 맺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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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의 정의: 교회 지도의 기술
슐라이어마허는 실천신학을 "교회 지도를 위한 기술"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기술(Kunstlehre)'은 단순한 기계적 숙련이 아니라, 학문적 원리를 구체적인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예술적 경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실천신학은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와 같은 단순한 매뉴얼을 넘어서, 역사신학을 통해 파악된 교회의 '현재 상태'를 출발점으로 하여, 철학신학이 제시한 기독교의 '본질적 목표'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역동적인 과정(Becoming)을 다룹니다. 즉, 실천신학은 교회의 '존재(Sein)'를 '당위(Sollen)'로 변화시키는 변혁적 학문인 것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실천신학을 교회 봉사와 교회 통치라는 두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① 교회 봉사: 지역 회중의 양육
교회 봉사는 지역 교회의 내부적 삶을 지도하고 양육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실천 영역입니다. 이는 교회가 제도 이전에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라는 전제 위에서, 회중의 실제적인 신앙 경험을 형성하고 심화시키는 활동을 포괄합니다.
먼저 예배학(Liturgics)은 공동체 예배의 원리와 그 구체적인 실천을 다룹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예배는 단순한 의무나 형식이 아니라, 회중의 종교적 감정을 고양시키고 이를 공동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행위였습니다. 예배는 교회의 생명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설교학(Homiletics)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회중의 신앙을 일깨우고 강화하는 기술을 다룹니다. 설교는 교리 전달을 넘어, 회중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신앙을 새롭게 인식하고 응답하도록 이끄는 중심적 수단으로 이해됩니다.
마지막으로 목회학(Pastoral Care/Poimenics)은 개인의 영혼을 돌보는 사역을 포괄하며,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영혼 돌봄(Seelsorge)과 교리교육(Catechetics)을 함께 포함합니다. 이는 회중 개개인의 신앙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고, 영적 성숙으로 인도하는 미시적 차원의 지도력으로서, 교회 봉사의 가장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영역을 이룹니다.
② 교회 통치: 교회의 관리
교회 통치는 개별 지역 회중을 넘어,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관리하고 교회의 대외적 관계를 조율하는 영역을 담당합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실체로서 질서 있게 기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차원의 실천신학입니다.
이 영역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교회법과 행정입니다. 이는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과 조직 운영의 원리를 다루며, 교회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자신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를 제공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특히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강하게 옹호하며, 교회가 국가 권력의 하위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고,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선교를 실천신학의 한 부분, 그중에서도 교회 통치의 확장된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선교는 단순한 개인적 신앙 전파가 아니라, 복음이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곳에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개척적 통치’의 행위로 파악됩니다. 이 과정에서 선교는 기독교 신앙의 확장뿐 아니라, 슐라이어마허가 이해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문화, 곧 신앙과 삶의 총체적 질서를 사회 속에 구현하는 작업과도 긴밀히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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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지도자상: 교회의 제후
슐라이어마허는 모든 신학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이상적인 교회 지도자상, 곧 ‘교회의 제후(Prince of the Church/Kirchenfürst)’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후는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종교적 경건(piety)과 학문적 정신(scientific spirit)이 최고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며 결합된 인물로 규정됩니다.
이러한 교회의 제후는 방대한 신학적 지식을 소유한 학자일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살아 있는 교회의 현실 속에 적용하여 공동체를 분별력 있게 이끌고 개혁할 수 있는 탁월한 실천가입니다. 신학은 그의 손에서 추상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설교와 교육, 제도와 개혁이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구현됩니다.
실제로 슐라이어마허 자신은 이러한 이상을 몸소 실현하려 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는 엄밀한 학자로 활동했고, 설교 강단에서는 회중의 신앙을 일깨우는 열정적인 설교자였으며, 사회와 교회 현장에서는 개혁을 주도하는 교회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생애 자체가 그가 제시한 ‘교회의 제후’라는 이상형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 해석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공부 요강』은 단순한 커리큘럼 가이드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계몽주의의 충격 속에서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학문적 엄밀성을 유지하면서도 교회의 신앙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기획서였던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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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을 ‘교회 지도’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실증 학문으로 규정함으로써, 성직자를 단순한 종교 기능인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성과 학문적 훈련을 갖춘 전문직 인물로 재정의했습니다. 신학은 개인적 경건의 표현이나 교리 암기의 기술이 아니라, 교회의 삶을 책임 있게 이끌기 위한 전문적 지식 체계가 된 것입니다.
또한 그는 교의학을 역사신학의 하위 분과로 과감히 재배치함으로써, 기독교 교리를 시공을 초월한 영원불변의 명제가 아니라, 역사적 공동체가 특정한 시점에서 고백하는 살아 있는 신앙 표현으로 이해하도록 전환했습니다. 이는 교리가 역사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음을 정면으로 인정한 혁신적 시도였으며, 이후 현대 신학이 역사비평적 방법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나아가 철학신학이라는 뿌리, 역사신학이라는 줄기, 실천신학이라는 왕관으로 이어지는 그의 유기적 구조는, 이론과 실천, 학문과 신앙, 대학과 교회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공부 요강』은 이 모든 차원을 하나의 통일된 비전 안에 결합함으로써, 근대 이후 신학의 자기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기념비적 저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슐라이어마허 이후의 학자들을 통해 수많은 학문적 성취가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그 여정은 앞으로 더해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이라는 학문의 체계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보이는 1차 자료를 직접 읽는 일은, 이후의 논의를 평가하고 분별하기 위한 기준을 세운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입니다.
20세기 초 칼 바르트를 비롯한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며 역사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비판했던 것 같습니다.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가 신학을 인간의 종교적 의식에 대한 기술로 환원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초월성과 주도권을 약화시켰다고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러한 비판 역시 슐라이어마허가 (이미 이 책에서) 구축해 놓은 거대한 신학적 체계 위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부정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겠죠?
여기서 잠시, 서두에 언급했던 최종원 교수의 또 다른 진단을 인용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그 여파로 게토화 되고 있는 현실을 헤쳐 나갈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2025년 12월 3일, 일단의 친위 쿠데타 시도와, 그에 뒤따른 교회 현실―여타 교단과 교역자들까지 포함한 상황―을 지켜보며, 저는 최 교수가 말한 ‘게토화 되고 있다’는 진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 한 단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공부가 우리로 하여금 앞서 말한 ‘시대를 읽고, 분별하고, 성찰하는 능력’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신앙인인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공부를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으로 바로 세워 갈 수 있을까요.
적어도 타인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나 자신만이라도 어떻게 하면 그러한 관점의 공부를 지속해 갈 수 있을지 묻게 됩니다. 결국 제가 학습을 계속하려는 동기는 바로 그 지점에 가 닿아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슐라이어마허가 『신학 공부 요강』에서 보여주었듯이, 신학이 폐쇄적인 교리 수호에 머무르지 않고 인접 학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회적 실천을 지향해야 한다는 태도를 오늘의 조건 속에서 되살려 보려는 시도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신앙의 최소한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비록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교회의 제후’라는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그 이상이 가리키는 방향만큼은 붙들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대 사회 속에서, 지성과 영성을 함께 갖춘 리더십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것, 아마도 제 공부는 그 지점을 향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러한 학습은 자신의 삶에 어떤 유용함을 주는가?”
“나는 왜 공부하는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께서 처음 던지신 첫 질문은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요 1:38, 새번역)였습니다. 오늘의 제 삶 속에서 이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지금 제게 던져지는 질문으로 받아들이며, 저는 공부의 방향과 이유를 다시 정리하게 됩니다.
내가 믿는 기독교라는 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이 지닌 고유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지녔던 생동하는 신앙 의식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저는 '성경 해석학'과 '고대 이스라엘 역사', '고대 근동의 역사와 신화', 나아가 “성경은 어떻게 하나의 책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학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지식 축적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슐라이어마허의 제안처럼, 성경과 교회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하며, 기독교의 본질이 각 시대의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전개되어 온 유기적 발전의 과정임을 이해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의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인 우리가 회중의 실제적인 신앙 경험을 바르게 형성하고 심화시키며, 현실의 교회 안에서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회 안에서는 책임 있는 시민, 곧 민주 시민으로서의 사명을 올곧게 감당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슐라이어마허 읽기는 제게 단순한 신학 공부가 아니라, ‘해석’과 ‘시스템 사고’라는 평생의 학습 주제를 분명히 자각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그 인식에 대해 저는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칸트가 『교육학 강의』에서 “인간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된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때문에라도 공부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평생 계속해야 할 과제일 겁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참고자료]
1. Brief Outline of the Study of Theology, Friedrich Schleiermacher, 1811 and 1830 editions, The Edwin Mellen Press
2. 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Hermeneutics: An Introduction (2009년)), 엔서니 티슬턴, 2017, 새물결플러스
3. 기독교신앙(Glaubenslehre), 슐라이어마허, 2006, 한길사
4.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 강영안-최종원 대담, 2026, 복있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