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1권 『젊음의 나라』손원평

시민도서선정단 2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이 평가서는 정말 오픈하고 싶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제다 보니...


글쎄요.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참으로 무력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떠셨나요?


읽는 내내 이 책은 또랑물 같았습니다.
개울도, 시냇물도, 더더욱 강물은 아니었지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우물가 옆을 흐르는 아주 얕은 또랑물 정도의 깊이였습니다.


복선도 없고, 숨긴 의도도 없었습니다.
고령화 문제, 인구 절벽, 일자리 문제, 자본 중심의 경제 구조, 세대 갈등 등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질문들을 너무나 직선적으로 나열할 뿐이었지요.
그 물음들 앞에서 오히려 사유는 얄팍해 보였고, 독해의 긴장감도 끝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읽는 시간 자체가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숙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굳이 평가할 필요조차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앞선 조가 어떻게 이 소설을 추천하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앞서 너무나 의미 있게 읽혔던 작품을 우리 조에서 애써 탈락시켰던 기억이 떠올라, 그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작품은 정말로 아쉬운 소설이었거든요. (안 비밀인데, 서유미의 <밤이 영원할 것처럼>이 그거예요)
그런 작품을 떨어뜨리고,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했을까—
그 질문이 끝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한데로 모이지 않고 흩어진다. 전에 품지 않았던 의문만 는 것 같다.
삶이란 뭘까. 죽음이란. 꿈이란…….
수많은 상념과 질문이 비눗방울처럼 보글거리다가 일시에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언젠가 나는 내 삶을 어떻게 돌이키게 될까.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물음이다." (『젊음의 나라』 208쪽, 6월 4일 일기 중에서)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다고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삶 자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점점 무서워졌어. 외롭고 좁은 길을 나 홀로 끝없이 걷는 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거든. 나는 그렇게 살았어. 어제까지.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젊음의 나라』 228쪽, 6월 13일 일기 중에서)


언젠가부터 저 또한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를 그저 견뎌내듯 살아가다, 점점 쇠퇴하고 병들어 결국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삶.
그런 시간 속으로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가는 삶이,
그리고 결국은 그런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될 삶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질문 말입니다.


손원평 역시 이 소설에서 바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합니다.
유나라의 의식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의 독백 또한,
어쩌면 이런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입니다.
이 질문은 더 깊은 층위로 파고들지 못합니다.
글이 그렇습니다.


제게는 끝내 단성적인 서술로만 읽혔습니다.
여러 목소리가 교차하거나, 질문이 스스로를 흔들며 확장되기보다는,
하나의 인식이 반복적으로 진술되는 인상에 머물렀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아쉬웠고,
읽는 내내 지치게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손원평의 《젊음의 나라》는 서사적 개연성이나 SF적 설정의 치밀함이라는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은 분명 ‘문제적 가치’를 드러내려 애씁니다. 인구 절벽과 노인들의 삶, 그리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젊은 세대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려는 시도 또한 분명히 읽힙니다.


그러나 그 접근 방식은 지나치게 표피적입니다. 너무 직설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기 형식이라는 선택이 지닌 특성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그 장점보다 한계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사유가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끝내 표면을 맴도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제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웅변하려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품 속 유나라가 ‘시카모어’라는 허상을 버리고 자신의 뿌리를 다시 현실에 내리기로 결단하듯이, 우리 사회 역시 ‘성장’이라는 과거의 환상에서 깨어나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서사의 깊은 울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이 연사 목놓아 외칩니다!”라고 외치던 웅변학원 학생의 음성처럼 들렸다고 해야 할까요.
의도는 분명했지만, 그 분명함이 오히려 작품을 성급한 설득의 자리로 밀어 넣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제게는 그랬습니다.
더 이상의 평가나 판단, 혹은 감상을 적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거의 일주일 넘게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읽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이 책 때문에 다른 책들마저 읽고 싶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게는, 정말로 그저 그랬습니다.



그래도 선정단의 추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평가는 남겨야겠지요.

물론 개인적 취향이 작동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게 이 작품은 지나치게 얕고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따라서 제 판단은 비추천입니다.
분명 개인적 선호가 작용한 평가이지만, 그 한계를 인식한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용 정도라면 어떨지...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5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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