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2권 『청춘의 독서』 유시민

시민도서선정단 2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Intro...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자가 이 책을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딸에게 건네주기 위해 썼다”고 말했을 때, 그 의도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렴풋이 짐작은 갑니다. 저 역시 아들들을 키워 왔기 때문입니다. 커가는 아이에게 꼭 해주고픈 말이 있었던 겁니다. 설령 그 말의 의미를 아이가 다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며칠 전, 팔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고 나사 두 개를 몸에 심은 아들이 깁스를 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회사에서는 연말 종무와 개인 휴가를 겹쳐 열흘 남짓 쉬게 된 모양입니다.

그날 밤, 아들은 샤워를 마친 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책장을 한참 훑어보더니, 읽을 만한 게 없느냐고 묻더군요. 쉬는 동안의 무료함을 달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두 권의 책을 권했습니다.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들이라면, 내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전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입니다. 힘써 자기 삶을 살아내고 있는 아들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닿았으면 하는 말들이 있었던 겁니다.


유시민의 글에서도 바로 그런 태도가 분명히 읽혔습니다. 선정된 책들이 그러했고, 서술을 이끌어가는 논조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의 의도는 숨겨져 있지 않았고, 때로는 글을 쓰는 목적을 직접적으로 밝히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진솔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반드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 의도를 좋게 받아들였습니다. 선한 의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이 책이 과연 선정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잠시 망설임이 없지 않습니다. ‘올해의 책’이라는 기준이 당해 연도에 발간된 도서를 전제로 한다면, 이 책의 초판이 2009년이라는 사실은 분명 부담으로 남습니다. 다만 전면 개정판이 올해 출간되었다는 점 또한 사실이기에, 그 경계에서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1.


에세이류 가운데 제가 특히 높은 가치를 두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 ‘독서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는 글들입니다.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삼아 독서의 방향을 확장하고, 사유의 지평을 여러 갈래로 열어주는 안내서 같은 글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시민의 이 책은 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인 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누군가에게 권할 책이라면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서가에 꽂혀 있던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이미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고 느낍니다. 저자가 읽고 이해한 내용에서 나름의 통찰을 얻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동시에 ‘나의 읽기와 나의 해석’이 그의 읽기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발견해 가는 과정 또한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겠지요.


이런 시도, 함께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유시민이 제안하는 열다섯 권의 책을 다시, 혹은 새롭게 읽어 나가는 일 말입니다.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이라 칭해 온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특별 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2009년 초판이 세상에 나온 지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여전히—어쩌면 그때보다 더 절박하게—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그들에게 길을 물었다”고 고백합니다. 고전이란 단순히 과거의 유산만이 아니라, 혼탁한 현실을 항해하기 위한 오래된 지도이자 지적 신경안정제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읽어낸 고전들을 통해, 이 시대의 생활인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자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가 써 내려간 책들 가운데 예시적으로 한 권만을 골라, 그의 논지에 따라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2.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살펴볼 작품은, 그의 서술 가운데서도 어쩌면 저자의 감정이 가장 깊이 배어든 것으로 읽히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입니다. 유시민에게 이 책은, 이 시대 이 땅의 언론 권력이 지닌 부도덕성을 비판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날카롭고도 날 선 칼날로 기능합니다.


이 소설은 평범한 가정부였던 카타리나 블룸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사냥감이 되고, 그 과정에서 명예와 삶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유시민은 이 텍스트를 통해 보이는 것과 진실 사이의 거리를 포착하며, “언론의 자유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차이퉁’ 신문은 현실의 빌트지를 모델로 한 매체로,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뒤섞어 진실을 왜곡합니다. 저자는 소설의 맨 앞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Bild)〉와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유시민은 이 문구야말로 역설적으로 빌트지를 겨냥한 가장 강력한 고발임을 지적합니다. 이는 언론이 ‘자유’와 ‘면책 특권’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어떻게 개인의 인격을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살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유시민이 서술한 소설의 간단한 요약을 살펴보시죠. (276~282쪽)

소설에서 신문의 ‘헤드라인’이 살인 사건을 부른다. 개요는 단순하다.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저녁, 스물일곱 살 먹은 젊은 여자 카타리나 블룸은 아는 사람이 주최하는 댄스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블룸은 한 번 이혼한 경력이 있는, 아주 착실하고 평범한 전문 가사관리인이다.
나흘이 지난 2월 24일 일요일 저녁, 블룸이 경찰관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녀는 낮 12시 15분경 자기 아파트에서 〈차이퉁〉 기자 베르너 퇴트게스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한다. 후회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 일곱 시간 동안 시내를 배회하고 교회에도 갔지만 조금도 후회하는 바를 찾지 못했다면서, 자신을 체포해 달라고 요청한다. 소설은 나흘 동안 카타리나 블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비극은 댄스파티에서 처음 본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한테 ‘필(feel)이 꽂힌’ 데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오직 괴텐하고만” 춤을 추었고, 파티가 끝나자 자기 아파트로 함께 가서 사랑을 나누었다. 괴텐은 자신이 어떤 이유 때문에 경찰에 쫓기는 중이라고 했다.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느낀 블룸은, 다음 날 새벽 몰래 아파트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파트 단지의 지하 통로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자기를 유혹하려고 치근댔던 어떤 남자가 준 별장 열쇠를 주고 거기 숨어 있도록 한다.
남자가 붙잡히면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그래도 그다음에 계속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범죄를 저지른다는 의식이 없이 남자에게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했다. 그게 전부였다. 더도 덜도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에 경찰이 들이닥쳐 카타리나 블룸을 체포했다. 그 현장에 〈차이퉁〉이라는 신문의 사진기자가 나타났다. ‘차이퉁(Zeitung)’은 ‘신문’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일반명사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정한 신문의 제호로 사용했다. 〈차이퉁〉은 카타리나 블룸과 루트비히 괴텐 사건을 특종 보도한다. 그녀가 체포되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게재하면서 실명과 얼굴을 그대로 내보냈다. 루트비히 괴텐의 ‘흉악한 범죄 혐의’를 마치 사실처럼 보도했다. 카타리나 블룸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나온 세세한 심문 내용을 지면에 중계했다. 〈차이퉁〉은 카타리나 블룸의 가족 관계와 이혼 전력, 재산 관련 사항을 비롯해 아주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남김없이 까발렸다.
〈차이퉁〉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카타리나 블룸과 주변 인물들은 심각한 범죄 의혹의 주인공들이다. 루트비히 괴텐은 “1년 반 전부터 수배 중인 은행 강도이자 살인자”이며 카타리나 블룸은 “강도의 정부(情婦)”다. 그녀의 죽은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였다. 겨우 스물일곱 먹은 가정부가 값이 11만 마르크나 되는 아파트를 소유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녀가 “은행에서 강탈한 돈의 분배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 카타리나 블룸은 “포르쉐를 모는 강도의 애무가 좋아서” 우직한 방직공 남편을 버린 냉혹한 여인이다.
중병을 앓던 어머니가 딸의 행실에 충격을 받아 숨졌는데도, 카타리나 블룸은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좌파 그룹의 지령”을 받고 “명망 높은 학자이자 사업가”인 S의 경력을 파괴하기 위해 그가 소유한 별장을 괴텐에게 은신처로 제공했다. 카타리나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파트 구입자금 대출을 알선해 준 “좌파 변호사” 블로르나 박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이며, 대학생 시절 “빨갱이 트루데”로 불렸던 부인 트루데 블로르나도 공학박사로서 카타리나 블룸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의 설계 도면을 다 알고 있었던 만큼, 괴텐의 도주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혹을 밝혀야 한다.
카타리나 블룸과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들의 일상은 한순간에 부서졌다. 우편함에는 저질 음란 편지가 쇄도했고, 누군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변호사인 블로르나 박사의 비즈니스는 엉망이 되었고 부인 트루데도 곤경에 빠진다. 이 모두가 〈차이퉁〉의 보도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보도를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카타리나 블룸을 욕했다.
진실은 무엇인가? 루트비히 괴텐은 은행 강도가 아니며 살인을 한 적도 없다. 군인들의 급여가 든 금고를 털고 무기를 훔쳐 도망친 탈영병일 뿐이다. 경찰은 괴텐이 댄스파티에서 카타리나 블룸을 만나기 전부터 밀착 감시하고 있었다. 블룸의 집 전화를 도청했고 S의 별장을 포위한 채 괴텐을 관찰했다. 그가 접촉하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체포 시점을 늦추고 있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괴텐과 블룸은 모르고 있었다. 카타리나 블룸은 “강도의 정부(情婦)”가 아니었다. 그녀는 범죄자여서 괴텐을 사랑한 게 아니라 범죄자인데도 사랑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남편과 헤어진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고 늘 “치근덕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아버지는 진폐증으로 사망한 노동자였을 뿐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녀는 은행 융자를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으며 원리금을 착실하게 갚아나가는 중이었다. 병든 어머니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냈고 절도죄로 감옥에 간 오빠에게도 종종 영치금을 보냈다. 어머니는 딸의 행실 때문이 아니라 담당 의사의 만류에도 몰래 병실에 들어가 인터뷰를 했던 〈차이퉁〉 기자 때문에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 블룸은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하고 병원을 나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명망 높은 사업가 S는 블룸을 유혹하려고 비싼 반지와 별장 열쇠를 떠 안겼지만 그녀는 눈곱만큼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와 관련하여 비난받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블로르나 박사 부부는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블룸 덕분에 살기가 아주 편해졌기에 고마운 마음에서 저금리 대출을 알선해 주었다. 부인 트루데는 진심으로 인간 카타리나 블룸을 좋아했다. 그게 다였다. 이것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이 진실을 아는 것은 당사자들뿐, 수백만 독자들은 〈차이퉁〉이 보도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막혔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방식이 너무나도 ‘리얼’했기 때문이다. 내가 현실에서 보고 경험했던, 그리고 현재에도 목격할 수 있는 언론의 행태와 정말로 똑같았다. 〈차이퉁〉은 주로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는 검찰청 조사실에서 오간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중계방송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명국가의 형법이 금지하는 불법적인 ‘피의 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 중에 누군가가 〈차이퉁〉 기자와 ‘정보 밀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국가기관과 언론기관이 한통속이 되어 저지르는 불법행위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결코 원치 않았던 S의 아파트 방문, 얼마짜리 인지도 몰랐던 반지, S의 별장 열쇠 등에 관한 사항을 비롯하여 〈차이퉁〉이 내밀한 사생활 관련 정보를 왜곡 보도해 자신을 모욕하는 데 대해, 그리고 그런 일을 바로잡을 방법이 사실상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카타리나 블룸은 절망감을 느낀다. 작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 — 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 그사이 그녀는, 심문이 왜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심문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게 되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또 하나의 수법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한 말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것이었다. 〈차이퉁〉은 카타리나 블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내 인터뷰했고, 그녀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목적으로 그들이 한 말을 왜곡 인용했다. 어머니, 전남편, 오빠, 어린 시절 살았던 마을의 신부, 가사 관리를 해주었던 옛 고객, 과거에 근무했던 직장의 동료와 상사, 아파트 이웃 주민 등을 가리지 않고 인터뷰한 다음 그들의 입을 빌려 카타리나 블룸을 비난했는데, 다음과 같은 방식이었다.
고등학교 교감으로 퇴직한 히페르츠 박사와 그의 부인 에르나 히페르츠는 블룸의 행적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예상 밖”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 결혼한 딸 집에 머물고 있는 그들을 〈차이퉁〉의 한 여기자가 찾아냈는데, 그곳에서 고대 문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히페르츠는 — 블룸은 3년 전부터 그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 “모든 관계에서 과격한 한 사람이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군요”라고 했다.
히페르츠 박사 부부는 카타리나 블룸을 잘 알고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기자가 그들의 말을 비틀어 인용했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진실은 다음과 같았다.
블로르나가 나중에 히페르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카타리나가 과격하다면, 그녀는 과격하리만치 협조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적입니다. 내가 그녀를 잘못 보았나 보군요. 그런데 난 40년간 경험을 쌓은 교육자요. 사람을 잘못 보는 일이 거의 없는데요.”
소설에서 모든 신문이 이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다른 신문들은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고 사건을 보도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차이퉁〉 보도의 위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차이퉁〉은 가장 널리 읽히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들의 보도는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았지만, 그녀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차이퉁〉의 왜곡 보도에 대해 보도하고 비판하는 신문은 없었다. 신문이 다른 신문을, 기자가 다른 기자를 비판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소위 동업자들끼리 서로 비판을 자제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블룸을 감시하는 업무를 맡은 여성 경찰관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보인 반응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녀는 〈차이퉁〉 읽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는 블룸을 돕기 위해 잠시 동료에게 감시를 맡기고, 블룸이 연루되어 심문받은 내용, 그녀가 수행했을 만한 역할에 관해 철저히 객관적인 형식으로 보도한 다른 신문들을 문서실에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3, 4면에 실린 짧은 기사에서는 블룸의 성과 이름을 전부 밝히지 않고 가정부 카타리나 B양으로만 언급했다고 한다. 예컨대 〈움샤우〉에는 열 줄 정도의 기사가 났고, 물론 사진도 실리지 않았으며,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불운하게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유시민에게 이 소설은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었다고 그는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그는 이 텍스트를 읽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떠올렸다고 고백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인 양 유포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파헤치는 한국 언론의 행태가, 카타리나 블룸을 집요하게 몰아세웠던 1970년대 독일 언론의 모습과 섬뜩할 만큼 닮아 있다는 진단입니다.


유시민은 책 293쪽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처음 읽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 주인공이 기자를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에서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진한 감정이입이 가능했던 것은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역시 그 장면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면 나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장면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과장 없이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지요. 검찰의 가택 압수수색 당시, 집 안으로 음식을 배달하던 배달원들에게 기자들이 던졌던 질문들을 말입니다. 자장면을 배달했다는 사실에 덧붙여, “집 안에 젊은 여성이 있었느냐”, “젊은 사람과 중년 여성이 함께 있었느냐”를 묻고, 그 질문을 장난스러운 웃음 속에 소비하던 장면 말입니다.


오늘날이라고 과연 다를까요.

2025년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 메시지는 오히려 더욱 절실해 보입니다. 이제는 거대 언론사뿐 아니라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한 1인 미디어까지 가세해, ‘조회수’를 위해 타인의 명예를 거리낌 없이 짓밟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유시민은 하인리히 뵐을 통해 독자들에게 분명한 요구를 던집니다.


정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라는 것, 곧 남의 머리가 대신 생각해 준 것을 내 생각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주문 말입니다. 스스로 해석하고, 스스로 판단하라는 요청이지요. 결국 이 장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위한 하나의 교본이자, 상실된 저널리즘 윤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로 기능합니다. 물론 제게 가장 강하게 다가온 지점은, 그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독자적 해석 역량의 확보’라는 요청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3.


이런 식입니다. 저자 유시민은 자신이 읽고 사유해 온 열다섯 권의 책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평가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겁니다. 그는 그 책들을 읽던 자신의 청춘의 시간을 함께 호출하며, 그 시절 자신이 무엇을 고민했고 어떤 질문 앞에 서 있었는지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지하게 묻습니다.


“내가 느꼈던 이 감각을, 그대들 또한 한 번쯤은 느껴보면 어떻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지도에 표시된 여러 갈래의 길을 하나씩 짚어 보이며, 그 지도 전체가 가리키는 북극성—인간의 존엄, 자유, 정의—을 향해 함께 길을 떠나보자고 제안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자유론
에 이르기까지, 윤리와 경제, 권력과 역사, 자유와 주권, 언론과 과학, 자연과 미래, 그리고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각 영역을 대표할 만한 책들을 선별해 자신의 삶과 사유 속에 녹여 풀어냅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독자들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역사를 다시 성찰하게 하고, 젊은 독자들에게는 지나온 근·현대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결국에는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는 결코 교훈이나 강요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조심스러운 권유의 형식으로 제시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생각이 많아지는 독서를 요구합니다.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을 권할 만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책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저자의 독서를 통해 각자의 세상 읽기와 경험을 축적해 갈 수 있는 동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책이 제안하는 길을 따라 한 권씩 따라 읽기를 시도해 보는 일 또한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정리하면...


그렇게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 마치 생존 키트이자 전투 식량과도 같은 책들을 건넵니다. 유시민은 고전을 통해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르고, 부당한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지적 근육을 단련하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끝에는, 당대의 조건과 권력과 흘러드는 뉴스들을 스스로 해석해 낼 수 있는 능동적 역량을 기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해 봅니다.

이 글은 시민들에게 추천해 봄직 하다고 말입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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