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선정단] II-3권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시민도서선정단 2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by KEN

0.


202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단일 이슈를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부동산일 것입니다. 기준금리의 동결 소식과 김포의 서울 편입 논란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과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청년 세대의 자조를 넘어선 생존의 비명이 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10.15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김혜진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바로 이 시점, 이 장소에 정확하게 도착했던 겁니다.


25.10.15 부동산 대책관련 정부의 발표 내용과 투기과열 조정대상 지역 지도


김혜진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에 수록된 8편의 단편은, '집'을 매개로 하여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 소통의 불가능성, 그리고 노동의 윤리라는 주제를 관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가 안간힘을 써서 도착한 곳이 겨우 이 작은 방 하나"라는 당혹스러움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이 단지 절망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해 보입니다. 작가는 그 척박한 현실 한가운데서조차, 쉽게 포기되지 않는 어떤 마음, 다시 말해 ‘축복을 비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길어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을 건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묻고 있는 듯합니다.



1.


김혜진의 소설은 이 역동을 단면으로 잘라 그 역학을 집요하게 규명한다. 다시 말해, 김혜진의 세계는 언제나 ‘집’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구조와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집’을 무대 삼아 다양한 마주침과 충돌을 보여준다. 이는 당연히 계급, 젠더, 지역, 세대 등 어느 것 하나 무관할 수 없는 ‘전적인’ 부딪힘일 수밖에 없고, 이때 ‘집’의 경계선은 고정된 실선이 아닌 유동하는 점선으로 그려진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상품으로써의 집이 주거로서의 집을 압도하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최대 모순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여전히 ‘집’은 이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이다. 그 최대이자 최후의 것을 언제나 정면으로 응시하고 상대하는 것이 김혜진의 정공법이다. _ 이소 문학평론가의 「마음과 구조」, 책 273-274쪽


작품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집’을 매개로 하여, 하나의 중심적인 문제의식을 관통하며 전개됩니다.

먼저 「목화맨션」과 「산무동 320-1번지」에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권력관계를, 그리고 이른바 ‘하우스 푸어’가 처한 구조적 딜레마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집니다.


이어서 「미애」를 통해서는 중산층 내부에서 작동하는 배제의 메커니즘과, 흔히 미덕으로 여겨지는 ‘선량함’이 어떻게 계급적 성격을 띠게 되는지를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또한 표제작인 「축복을 비는 마음」을 중심으로는, 육체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감정의 노동’이 깊이 있게 고찰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와 세계」와 「사랑하는 미래」 등의 작품에서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한계가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이 가운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중 몇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보다 가까이 귀 기울여 보고자 합니다. 특히 ‘집’을 삶과 휴식의 공간인 홈(Home)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소유와 투기의 대상인 하우스(House)로 인식하는 관점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투기적 시선과 떠나고 싶은 마음


「이남터미널」의 ‘남우 사모님’은 빌라 투자를 목적으로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임장, 즉 현장 답사를 합니다. 그녀의 시선에서 낡고 허름한 동네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아니라, 미래의 수익을 보장해 줄 기회의 땅인 것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좋은 기회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말하며, 그 가능성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녀는 부지런하게 살았다. 매일매일 비슷해 보이는 골목을 돌고, 별다를 게 없는 집들을 살피고, 그러느라 자주 끼니를 놓치고 옆 사람의 입에서 허기진 구취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즈음에야 종일 먹은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로 성실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그녀를 움직인 건 허기를 잊을 만큼의 절박함이었고, 그것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건지도 몰랐다. _「이남터미널」, 112~113쪽 중에서
그녀가 처음 가졌던 건 집 하나를 갖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낯선 동네를 필사적으로 돌아다니게 했고, 남우빌라를 소유하게 했고, 이보다 나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밀어붙인 건 자라나고 계속 자라나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_「이남터미널」, 131~132쪽 중에서


그러나 이 희망은 현재를 긍정하는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부정하는 희망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은 현재의 안정이나 만족이 아니라, 언젠가 터질지도 모르는 ‘한 방’에 대한 기대입니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부동산 투기 공화국 한국에서 ‘희망’이라는 말이 어떻게 왜곡되고, 자산 증식의 논리 속으로 흡수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기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자산 가치 속에서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지금의 이웃은 더 이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경쟁자이거나 방해물일 뿐인 것이죠.


한편 「20세기 아이」의 세미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세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떠나고 싶어 하지만, 가족들은 그 문제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력합니다. 그와 달리 세미는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중고 물품을 거래하러 찾아온 외국인에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세미에게 ‘말한다’는 행위는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집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세미는 ‘20세기’라는 과거의 유산, 곧 낡은 집에 묶여 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접속하며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그녀의 수다스러움은 소통 그 자체를 향한 욕망이라기보다, 정체된 현실을 언어로 흔들어 보려는 절박한 몸짓에 가깝습니다. 말은 현실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저항으로 기능합니다.

세미는 말하고 싶다. 할아버지는 옥상을 엉망으로 만든 게 아니라, 망가진 옥상을 고치려 했다고. 그러나 할아버지 혼자 힘으로는 절대 옥상을 고칠 수 없고, 당장 이 집을 떠날 수도 없다고. 식구들을 점점 더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게 만드는 이 집이 미워 죽을 것 같다고.
아줌마, 이거 가지실래요?
그러나 세미는 명랑한 목소리로 반듯하게 접은 오렌지색 종이를 내민다.
이게 뭐니?
여자가 세미와 눈을 맞춘다. 세미는 동네 지도,라고 말하지 않고 비밀 지도,라고 말한다. 그건 시장에서 받은 오렌지색 홍보지로 만든 것이고, 세미만 아는 동네의 지름길과 비밀 장소를 표시해둔 것이고, 세미가 지금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이렇다 할 관심이 없다. 전화벨이 울리자 가볍게 손을 흔든 뒤, 차에 올라탄다. 차가 출발한다.
한 주가 지난다. 부동산 사장도, 여자도, 트럭도 더는 동네를 찾지 않는다. 동네는 다시 이전처럼 고요해진다. 모두가 이곳을 또 까맣게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 _「20세기 아이」, 74~75쪽


이처럼 두 작품은 각각 ‘투기적 희망’과 ‘탈출의 욕망’을 대비시키며, 집이 더 이상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를 왜곡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3.

모멸을 견디는 주문, '축복'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청소 노동자 인선과 경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들은 남의 집, 때로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단순히 물리적인 더러움을 제거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삶이 남긴 찌꺼기이자 실패의 흔적, 그리고 감추고 싶어 했을 치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처리하는 노동입니다.


작품 속에서 경옥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느냐”고 묻자, 인선은 이렇게 답합니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이 대화는 작품의 정조를 응축해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옥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받는 돈은 똑같은데 몇 배나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으냐는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인선이 답했고 경옥이 물었다.
축복요? 무슨 축복요?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경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인선을 돌아보았다. 인선의 얼굴에 엷게 웃음이 떠오르는 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경옥이 중얼거렸다.
에이, 설마. 진짜 아니죠?
왜 아니에요? 진짜지. 진짜예요.
진심으로요? 축복을요? 말도 안 돼.
진짜라니. 축복을 비는 마음이라니. 인선은 대답 대신 소리 내어 웃었다. 때마침 경쾌한 팝송이 끝나고 다른 곡이 흘러나왔다. 나의 꿈 나의 모든 것 어여쁜 꽃 한 송이 모진 바람 불어와서 내 꿈을 데려갔네,로 시작하는 인선이 좋아하는 노래였다. 인선은 창을 내리고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창틈으로 신선한 바람이 새어 들었다. 더는 한기가 느껴지지 않고, 이가 덜덜 떨리지도 않는, 정말 봄이라고 할 만한 공기였다.
_ 「축복을 비는 마음」, 책 270~271쪽 중에서


여기서 ‘축복’은 종교적 의미의 기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모멸감과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선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장치에 가깝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악취와 오물 속에서 노동을 지속하면서,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을 혐오하거나 저주하지 않기 위해, 인선은 억지로라도 축복을 비는 마음이라는 상태에 자신을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불행이 자신에게로 옮겨 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선이 고용주인 양 사장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좌절감 역시, 임금의 체불이나 삭감 그 자체보다는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양 사장은 사과하거나 설명해야 할 순간마다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인선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노동의 대가로서의 돈만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존중받고 있다는 최소한의 언어적 인정입니다.


결국 ‘축복을 비는 마음’이란, 타인—고용주이자 집주인—으로부터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인선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고안해 낸 슬픈 주문, 하나의 내면적 주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문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현실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아 주는 마지막 방어선으로 기능하는 것이죠.



4.

집(House)에서 집(Home)으로


문학평론가 이소는 해설에서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과정으로서의 집(Home as Process)’을 제시합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집은 더 이상 안정적인 정착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위협받고, 때로는 빼앗기며, 다시 지켜내야 하는 어떤 과정 속에 놓인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집에 거주하는 인물들의 마음 역시 고정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선인과 악인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단단한 윤리적 정체성을 미리 부여받지도 않습니다. 「목화맨션」의 만옥이나 「산무동 320-1번지」의 호수 엄마는 모두 부동산 시장의 변동과 자본주의적 위계라는 외부 압력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선택과 태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바로 그 유동성이 김혜진 소설이 지닌 리얼리즘의 핵심을 이루는 듯합니다. 이는 인물을 고정된 성격으로 설명하기보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마음’을 포착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봐요. 집주인이라고 하지만 나도 빚내서 겨우 그 집 샀어요. 나라고 왜 안 고쳐주고 싶겠어. 뭐든 척척 고쳐주면 내 마음도 편하고 좋지. 근데 정말 그럴 형편이 안 돼요. [중략]
다들 금방 재개발이 된다길래 나도 덜컥 그 집을 산 거예요. 아니면 뭐 하러 다 쓰러져가는 그런 집을 사겠어. 몇 년 안에는 틀림없이 된다더니 이제는 다들 모르겠다는 소리나 하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책임하대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빚까지 냈는데. 팔고 나면 다들 나 몰라라지. 개발이고 뭐고 이제는 진짜 신물이 나요. 평생 그 말 쫓아다니다가 나도 우리 아저씨도 다 굶어 죽게 생겼어. _「목화맨션」84쪽


김혜진의 소설은 이처럼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때로는 비관적인 정조를 띠고 있지만, 결코 냉소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작품 속 ‘집’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삶과 감정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조건이자 기억의 층위임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렁이가 나오던 집, 볕이 들지 않던 집과 같은 누추한 공간들 역시 결국은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소설 속 인물들 또한 약속된 미래를 손에 넣지는 못하지만, 대신 현재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미애가 독서 모임에서 배제된 이후에도 딸과의 삶을 이어 가는 선택, 인선이 더러운 집을 치우며 축복을 비는 마음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행위는 모두 미약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징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살아내는 최소한의 힘으로 제시되는 거죠.


바로 이 지점에서 김혜진의 소설은 절망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가능하게 남아 있는 삶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포착해 냈다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5.


「축복을 비는 마음」은 2020년대 한국 사회를 향한 처절한 보고서이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혜진 작가는 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든 계급, 젠더, 세대 간의 갈등을 굴절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집은 더 이상 사적인 안식처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조건과 관계의 윤곽을 드러내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 소설집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자산 가치로서의 집이 삶의 터전으로서의 집을 압도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타인을 이웃으로 감각할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더 나아가, 나의 생존이 타인의 축출을 전제로 성립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질문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물음 앞에서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물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입니다. 축복을 빌어야만 겨우 청소를 마칠 수 있는 노동자의 마음과, 전세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 앞에서 죄책감과 자기합리화 사이를 오가는 집주인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의 사정을 상상하려는 노력만큼은, 비록 닿지 않을지라도 축복을 비는 마음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이 소설집은 이른바 ‘부동산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아프지만 다정한 악수와도 같다는 평가에 동의합니다. 그 손은 거칠고 차갑게 느껴질지라도, 맞잡는 순간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가 그려낸 누추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피어나는 작은 환함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리하며...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출발점이 온전히 순수한 독서의 기쁨만은 아니었습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하기 위한 평가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문학 작품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계속해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과정 안에서 평가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작품 전반에 걸쳐 보여주는 따뜻한 시선이었습니다. 집을 오로지 투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좋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고정된 이미지로 단순화하지 않고 그 경계를 흔들어 보려는 시선 또한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를 쉽게 가해자나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구조 속에 놓인 인간들의 복잡한 마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라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시민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유입니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그 질문을 감싸는 태도 자체가, 지금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눌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 서는군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9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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