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도서선정단 2차 대상 도서 독서 후기 및 평가
Intro...
리얼리티 관찰 프로그램의 출발은 1998년 방영된 <트루먼 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영화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많아졌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더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부를 읽어나가는 동안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느꼈습니다. 사회학자도, 정치학자도, 혹은 평론가로서의 전문성이 충분히 검증된 인물로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서술의 어조로 인해, 솔직히 말해 “조금 젠체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먼저 들었던 겁니다.
결국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해당 프로그램을 직접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공유된 1편을 먼저 시청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상황이 조금 정리되기 시작하더군요. 1부는 단독으로 읽히기 위한 장이라기보다, 2부와 3부의 주장과 논지를 전개하기 위한 사전 개념 정리의 성격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제게는 저자의 접근방식에 의아함을 가지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이제는 어느 정도 맥락이 잡혔으니, 본격적으로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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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죠. 며칠 전에서야 비로소 수전 손택의 유명한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과도한 지성주의와 환원론적 비평에 맞서 예술의 자율성과 감각적 힘을 옹호하며, 모든 해석 행위가 지닌 한계를 논박한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해석은 지성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이 문장은 지적 분위기와 해석의 강박이 오히려 예술의 생명력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손택의 비판적 진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의미를 덧씌워 소유하려는 태도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해가 과연 정확한지는, 막 배달되어 온 그의 책 <해석에 반하여>를 정독해 보아야 분명해질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만, 제게 그렇게 다가온다는 정도의 조심스러운 고백에 가깝습니다.
이제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권성민의 글을 다시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는 사회적 현상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현상을 그 자체로 보기보다, 다소 성급한 해석을 덧씌운 나머지, 수전 손택이 경계했던 그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 것은 아닐까요. 판단은 유보하되,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1.
저자 권성민은 한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갈등을 막연하게 뭉뚱그려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년간 대략 1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사상검증 테스트’ 데이터를 분석하여, 우리 사회의 결을 깊게 베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칼날을 추출해 냈다고 밝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 계급, 젠더, 개방성입니다.
물론 이 모든 영역을 두루 살펴보기에는 제 역량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전면에 드러난 ‘정치’ 영역을 대표 사례로 삼아, 그의 문제 제기와 해석 방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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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파란색
한국 진보 정치(파란색)의 오랜 믿음은 운동장은 보수(빨간색)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 재벌, 검찰 등 기득권 카르텔이 보수를 지탱하고 있다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진보 진영의 패배를 설명하는 알리바이이자 투쟁의 동력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권성민은 이 책의 2부 2장 <기울어진 파란색>을 통해 이 도식을 과감히 뒤집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제도적 권력의 분포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문화 권력과 도덕적 담론의 주도권만큼은 이미 진보 진영,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 엘리트에게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근거로 자신의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제시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대중문화, SNS 공간에서 ‘옳은 말’, ‘깨어 있는 시민의식’, ‘개념 있는 발언’으로 칭송받는 가치들이 대체로 진보적 의제―정치적 올바름(PC), 페미니즘, 환경, 소수자 인권 등―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반대로 보수적 가치는 촌스럽고, 탐욕적이며, 무지한 것으로 희화화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입니다.
이 진단은 상당히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다는, 즉 현대 사회에서의 지배는 경제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 자본―취향, 언어, 지식, 태도―을 통해서도 작동한다는 겁니다. 권성민은 이 틀을 원용해, 이른바 ‘강남 좌파’로 상징되는 고학력·고소득의 진보 엘리트들이 문화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대중을 계몽하려 든다고 비판합니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우월감’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나의 의견은 단지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옳은 입장이 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특히 보수 지지자―은 악하거나 무지한 존재로 격하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기울어진 파란색’의 환경이 역설적으로 강력한 반작용을 낳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는 것이 청년 남성, 이른바 ‘이대남’의 보수화라는 겁니다. 이들은 진보 진영이 설파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윤리가 아니라, 기득권이 휘두르는 위선적 훈계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파란색은 정의가 아니라 검열이자 강요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민층의 선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정당을 찍는가?”라는 진보 진영의 오래된 질문에 대해, 저자는 도발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진보가 드러내 보이는 오만함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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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장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의 3부 3장 「누구에게나 인정이 필요하다」와 마지막 장인 4장 「‘위선’이 작동하는 사회」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성민은 이 두 장에서 진보 진영이 가장 아파하는 지점이라는, 곧 ‘위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저자에 따르면 진보 정치는 태생적으로 ‘도덕성’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너희도 결국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을 때, 대중이 느낀 배신감은 보수 정치인의 부패를 마주할 때보다 훨씬 컸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우월성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삼아 온 만큼, 그 균열이 드러났을 때의 충격 역시 더 클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응이었습니다. 저자는 일부 강성 지지층이 자기 성찰 대신 조롱과 공격을 선택했다고 지적합니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을 ‘2찍’이나 ‘토착왜구’와 같은 표현으로 호명하며 비인간화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 나아가 저자는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다소 불편한 조언을 덧붙입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 상대를 ‘혐오의 주체’로 규정하거나 ‘계몽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무지한 대중 vs. 깨어 있는 나’라는 위계적 구도를 전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진보 정치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계몽주의적 태도를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핵심에는 하나의 인식 전환이 놓여 있습니다. 상대방의 선택, 즉 보수 지지에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성과 맥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존에 대한 불안, 상대적 박탈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등은 정치적 선택을 형성하는 매우 현실적인 동기들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맥락을 외면한 채 도덕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한, 대화는 시작될 수 없고 정치적 확장성 역시 스스로 닫아버리게 된다는 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입니다.
2.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저자 권성민이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테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원칙은 저자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논리를 촘촘히 보강하려는 시도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저자의 해석이 올바른가 하는 점도 살펴봐야 하겠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비판적으로 짚어볼 지점은 분명 존재합니다. 저자의 분석 대상이 주로 2030 세대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그 관찰을 한국 사회 전체의 보편적 현상으로 확장해 서술하려는 듯한 대목은 자칫 오독의 여지를 남깁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누적되어 온 조직 문화의 문제, 노동 현실, 노령층 빈곤과 같은 중층적인 정치·사회 의제들이, 저자가 제시하는 ‘문화 전쟁’ 담론에 가려질 위험 역시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읽어내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저자의 주장과 논지를 이해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주변 지식과 참고 논의들이 나열되기 때문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계속해서 근거와 타 학자들의 주장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눈은 글을 따라가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질문이 맴돕니다. “그래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물론 이 책은 애초에 학술서를 표방한 작업은 아닙니다. 사회 현상을 다룬 방송 프로젝트의 결과를 글로 풀어낸 성격의 저작이며, 저자 스스로도 그것이 엄밀한 학문적 연구가 아님을 여러 차례 에둘러 밝히고 있습니다.
청자에게 주목하는 일의 중요성은 이 책에도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는 전문성에 있어서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 티」를 기획하고 연출한 피디로서,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담론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루려 한다. 프로그램을 소재로 쓴 책이긴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깔린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기 위해 방송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을 고려하여 글을 썼다. 나아가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의 언어로 쓴 책에서는 프로그램에 비해 좀 더 주관적인 관점들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예능 피디는 사회∙정치의 전문가가 아니니 이러한 시도가 독자에 따라서는 주제넘은 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의하는 바이지만, _<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9쪽 '들어가며'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보다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이 다분히 학술서에 가까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바로 그 지점이 독자인 제게 상당한 불편감을 안겨주었던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3.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이 상당히 많은 지식을 전달해 주는 텍스트로 읽힐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다만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끝내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묘한 불편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저자의 정치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나열된 수많은 인용과 참조들이 다소 젠체하는 태도로 느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 인상은 ‘과하다’는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주어진 역할상 추천 여부를 밝혀야 하는 상황입니다만, 제 판단은 유보입니다.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는 표현이 현재의 심정에 가장 가깝습니다. 사회학적 논의를 평가할 만큼 저 역시 전문성을 갖춘 독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를 단정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일반 시민들에게 이 정도의 책을 선뜻 추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글로 옮기고 나니, 애써 탈고했을 저자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주어진 과제의 일부라 여기며, 그 점에 대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참고]
◻︎ 선정을 위한 (임시) 도서평가점수 = 8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