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맘마미아!>

평택아트센터 오픈기념 공연 관람기

by KEN

지난해 10월 말, 일찌감치 예매해 두었던 뮤지컬 <맘마미아!>를 드디어 오늘 관람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평택아트센터 개관을 기념해 상업 공연으로는 처음 무대를 올리는, 나름 의미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다는 생각에 예매 당시부터 설렘이 컸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집 근처의 남부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여러 작품을 감상해 왔지만, 공연장 규모와 설비의 한계로 인해 레퍼토리 선택에 제약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연말 준비를 거쳐 문을 연 평택아트센터에서 만나는 첫 공연은, 그 자체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기대 ‘만땅’의 상태로 마주한 이번 무대. 그 감상을 겸해, 오늘은 뮤지컬 <맘마미아!>를 차분히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뮤지컬 <맘마미아!>


1.


1999년 4월 6일, 런던 웨스트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맘마미아!>는 현대 공연예술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 작품이라는 평가입니다. 스웨덴 팝 그룹 ABBA의 히트곡 22곡을 엮어 만든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시장 환경 속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독자적이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한 모델로 확립했습니다. 단순한 향수 자극에 머무르지 않고, 서사적 완결성과 여성 중심의 이야기 구조를 결합함으로써 이 작품은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대중음악을 활용해 무대화한 작품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조사해 보면 <Buddy>, <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 등 <맘마미아!> 이전의 사례들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대체로 특정 가수의 전기적 삶을 다루거나, 콘서트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이에 비해 <맘마미아!>는 아바의 실제 역사나 음악 세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그 서사 안에 노래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북(book) 뮤지컬’의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이후 <We Will Rock You>, <저지 보이스>, <& 줄리엣> 등으로 이어지는 주크박스 뮤지컬 르네상스를 촉발한 결정적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맘마미아!>의 탄생은 프로듀서 주디 크레이머의 집요한 의지의 산물로 전해집니다. 1980년대 초반, 팀 라이스와 ABBA의 남성 멤버들인 베니 앤더슨, 비요른 울바에우스가 협업한 뮤지컬 <체스>의 제작 현장에 참여했던 크레이머는, 그 과정에서 아바 음악이 지닌 극적 잠재력을 간파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는 ‘The Winner Takes It All’을 들으며, 이 곡이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라 거대한 감정의 서사를 품은 연극적 독백에 가깝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당시 아바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값싼 향수 팔이 수단으로 소비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는군요. 베니와 비요른은 아바의 전기를 다루는 쇼나 단순한 트리뷰트 공연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이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회의적이었습니다. 크레이머는 그들의 음악을 반복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입혀 재해석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무려 10년 넘게 설득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결국 1995년, 비요른 울바에우스는 “우리의 음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인 서사를 가진 이야기를 만들어온다면 검토해 보겠다”는 조건부 승낙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이후 크레이머는 1997년,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던 캐서린 존슨에게 대본 집필을 의뢰합니다. 존슨은 아바의 노래 가사들을 면밀히 분석하며, 그 안에 내재된 여성들의 서사—사랑과 이별, 우정과 자립—를 포착해 냅니다. 그는 가사를 억지로 변형하기보다, 노래가 자연스럽게 대사의 연장선이 되도록 상황과 인물을 설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한 모녀의 이야기라는 독창적인 플롯이 탄생하게 됩니다.


여기에 연출가 필리다 로이드의 합류는 이 프로젝트에 결정적인 예술적 깊이를 더한 계기로 평가됩니다. 오페라와 연극 연출로 명성을 쌓아온 로이드는 당시 뮤지컬 연출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크레이머는 그가 지닌 드라마에 대한 통찰력이 작품의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톤을 단단히 붙잡아 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합니다. 로이드는 이 작품을 “단순한 쇼가 아니라,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는 딸과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해 가는 엄마의 심리 드라마”로 해석하며, 배우들에게 철저한 진정성과 감정의 설득력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로써 프로듀서 주디 크레이머, 작가 캐서린 존슨, 연출가 필리다 로이드로 구성된 여성 창작 트리오가 완성됩니다. 이는 남성 중심적이던 당시 상업 뮤지컬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합이었으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강한 여성 연대의식과 주체적인 여성상이 구축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2.


<맘마미아!>의 서사 구조는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정식화된 삼일치 법칙(Unity of Time, Place, Action)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극은 결혼식 전날부터 당일까지, 약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전개되며 시간의 통일을 유지합니다. 장소 역시 그리스의 가상 섬 칼로카이리에 위치한 도나의 펜션이라는 단일한 공간에 고정되어 있어, 장소의 통일이 분명하게 지켜집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은 ‘소피의 아빠 찾기’라는 하나의 중심 플롯을 축으로 연결되며, 행동의 통일 또한 명확하게 구현됩니다.


이러한 구조적 간결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복잡한 배경 설명 없이도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몰입하도록 돕습니다.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이 압축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캐릭터 각각의 심리 밀도 또한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효과를 낳습니다.


소피의 ‘아빠 찾기’ 여정은 고대 신화에서 반복되어 온 ‘아버지 찾기’ 모티프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유쾌하게 전복합니다. 소피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불완전함을 완성하고자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정한 목표는 제도의 완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전통적 가족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성장 서사로 방향을 재설정됩니다.


특히 1막의 엔딩 넘버 'Voulez-Vous'(영화, 뮤지컬)에서 소피가 겪는 혼란은 단순한 코믹 상황을 넘어섭니다. 세 명의 아버지 후보가 동시에 자신을 딸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소피는 정체성의 과부하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 장면은 그녀의 내적 혼란을 집단적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어지는 2막 초반의 'Under Attack' 악몽 장면은 이러한 심리적 압박을 시각화한 장면으로,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성인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결말부에서 소피가 결혼식을 취소하고 스카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선택은,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지 않고 성장 드라마로 귀결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동시에 도나와 샘의 결혼은 중년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재현하며, 로지와 빌, 타냐와 페퍼의 에피소드는 관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보입니다. 이를 통해 작품은 전통적인 핵가족 모델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가족과 관계가 지닐 수 있는 유연한 형태를 제시합니다.


비록 이러한 결말이 서구적 가치관에 기반하고 있어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느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이미 익숙해진 현대 대중서사의 한 전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3.


베니 앤더슨과 비요른 울바에우스의 음악은 단순한 팝 음악의 범주를 넘어, 분명한 극적 구조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평론가들이 아바의 노래를 두고 “대사로는 충분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잉여분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뮤지컬 넘버 본연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아바의 곡들은 서정적인 가사와 익숙한 멜로디 속에 이미 기승전결이 분명한 드라마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구조는 배우들이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을 연기하고 확장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확실하게 제공해 줍니다. 이제 그 특성이 특히 잘 드러나는 몇몇 주요 넘버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The Winner Takes It All

이 곡은 극 중 도나가 샘에게 지난 20년의 세월과 그 안에 쌓인 상처를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려 퍼집니다. 음악은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사랑을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리는 제로섬 게임으로 냉정하게 인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를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순을 정면으로 폭발시키는 곡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절제된 피아노 반주로 시작해, 점차 오케스트라가 층층이 합류하며 감정의 파고를 높여가는 구조를 취합니다. 이 점진적 고조는 도나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계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결과적으로 배우의 연기력과 감정 표현을 가장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순간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곡이야말로 맘마미아! 전체에서 배우의 역량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이 곡은 도나가 결혼식을 앞두고 소피의 머리를 빗겨 주는 장면에서 불립니다. 자녀의 성장과 독립을 지켜보는 부모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 곧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찾아오는 상실감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자꾸 클수록 내 곁에서 멀어져 갔어”, “시간을 멈출 수는 없을까, 그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나”와 같은 구체적인 가사들은, 관객 각자의 기억을 불러내며 강한 정서적 공명을 만들어 냅니다.


이 장면에서 울컥 치미는 감정은 결코 개인적인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관객들이 같은 지점에서 비슷한 감정의 파동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넘버는 <맘마미아!>가 단순한 유쾌한 코미디를 넘어, 가족의 시간과 관계를 진지하게 응시하는 드라마로서의 깊이를 획득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순간으로 기능합니다.


Lay All Your Love on Me

이 곡은 스카이와 그의 친구들이 다이빙 슈트를 입고 오리발을 신은 채 군무를 추는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이 장면은 전통적인 뮤지컬에서 여성 코러스 라인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해 왔던 관습을 의도적으로 전복합니다. 대신 남성들의 신체를 유희와 관람의 대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명확한 ‘여성적 시선’을 구현해 냅니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맘마미아!> 전반에 흐르는 여성 주도적 서사와 정서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남성 캐릭터들이 대상화되는 이 장면은, 이 작품이 젠더 권력의 전통적 배치를 어떻게 유쾌하게 재배치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반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맘마미아!>는 대중문화에서 오랫동안 주변화되어 왔던 중년 여성의 욕망과 삶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도나는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 생계를 일구고 아이를 키워낸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그녀의 친구들인 타냐와 로지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독신 여성들로 그려집니다. 특히 'Dancing Queen' 장면에서 도나와 친구들이 침대 위를 뛰어다니며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은, 나이 듦이 곧 즐거움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합니다. 이 장면은 중년 여성 관객들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와 임파워먼트를 제공하는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가 이전 글들에서 몇 차례 다룬 적 있는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리즘‘ 관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맘마미아!>의 무대는 일상의 위계질서가 잠시 해체되고, 해방과 전도가 허용되는 축제의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커튼콜에서 관객들이 손을 흔들며 'Waterloo'와 'Dancing Queen' 등에 함께 호응하는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집니다.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카니발적 느낌은 영화에서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도나를 비롯한 세 친구가 처음으로 부르는 Dancing Queen 장면을 통해, 온 섬의 여성들이 온통 일상에서 탈출하여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으로 승화됩니다.)


이러한 체험적 성격은 이 작품이 단순히 ‘보는 공연’을 넘어, 몸과 감정으로 함께 참여하는 ‘카니발적 경험’으로 소비되게 만드는 핵심 요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맘마미아!>가 대중적 오락을 넘어, 해방과 연대의 감각을 공유하는 현대적 카니발로 기능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해 보면...


<맘마미아!>는 평택아트홀 개관 기념 공연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전반적으로는 성공적인 출발이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계단을 내려오며 앞서 걷고 있던 모녀로 보이는 두 분의 짧은 대화가 오래 남았습니다.
“대학로를 가야 할 것 같다.”
짧지만 결정적인 한마디였습니다. 저희와 같은 2층에서 관람했던 관객들이었는데, 서울의 공연장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의미의 말이었습니다. 확실히 2층에서 체감되는 음향의 밀도와 균형은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예산상의 제약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공연장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음향 설비는 분명 보완의 여지가 커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지 인근에서 <맘마미아!>를 직접 관람할 수 있었다는 경험 자체는 충분히 신선하고 반가웠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작품답게 완성도와 안정감은 검증되어 있었지만, 음향의 한계와 더불어 일부 출연진의 가창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는, 전반적으로 기분 좋고 즐거운 공연 관람이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의 의미와 기억을 남긴 무대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https://youtu.be/goffmKfSgU8?si=GJejaVa2WYSK7cwY


https://youtu.be/XCo2fhl9cI4?si=nwt4NKFVpgwHtR9c


https://youtu.be/UiSfh6JMNtY?si=MpMAPmeV3IwGC3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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