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의 『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를 감상하며...

by KEN

"왜 사냐건, 웃지요!"


쿵.

새벽, 틀어둔 팟캐스트에서 강연자가 옮긴 시어 중의 하나.


먼저는 "왜 사냐건"에서 마음이 멈췄더랬습니다.

며칠째 이 물음에 시달리던 중이라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였겠죠. 이 시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다 "웃지요" 이 말에는

울컥 눈물과 함께 맘이 풀어졌습니다.


얼른 일어나 제 방으로 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이렇게 쓰여있더군요.


1930년대 한국 문학사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한층 강화되던 시기인 동시에, 한국 시의 미학적 성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20년대를 지배했던 카프(KAPF) 중심의 목적의식적 경향 문학이 일제의 검열과 탄압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면서, 문학의 자율성과 예술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순수시'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등이 주도한 『시문학』 동인은 시어의 섬세한 조탁과 음악적 율격의 형성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전원적 서정과 관조적 태도를 바탕으로 당대 지식인들이 가졌던 현실 도피와 자아 회복의 욕구를 투영하며 1934년 『문학』 2호에 발표되었다.

김상용의 전원주의는 단순한 자연 예찬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일제 강점기라는 극한의 결핍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인 동시에,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고 인간 본연의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론적 결단이었다. 당시 전원주의 시들은 김소월로부터 시작되어 이육사, 청록파, 신석정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김상용은 그중에서도 가장 간결하고 명징한 어조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을 노래했다.


아니다 싶어 그저 시를 다시 읊어봅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_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참 좋습니다.

시인의 행적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았던 것도 알지만.

오늘은 그저 내 감정에만 충실하고 싶습니다.


'내겠소', '매지요', '있소', '들으랴오', '좋소', '웃지요'...

나이 듬, 혹은 산촌 출신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시의 구어체 종결어가 주는 심상이 있습니다.

산골, 개울가, 봄날, 평안함 같은 느낌 말입니다.


이미지는 확실히 산골, 깡촌의 모양이고요.

검정 고무신에 코 흘리게 아이들의 꼬질꼬질한 행색이지만,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은 행복한 아이들과 주변 풍광이 아른거립니다.


저 짧은 시로

그 멀리만 느껴지는 산골의 시각, 촉각, 청각, 미각

(남향의 햇살, 괭이질과 호미질, 새 노래, 강냉이)을 다 아우르는 것도 신기하고.


인생을 달관한 듯,

"왜 사냐건 / 웃지요" 하고,

정말 순전한 웃음을 머금은 초로인의 밀짚모자도 보입니다.


존재론이니, 미학이니, 세속이니, 친일이니...

분해하고 분석하는 행위가

시를 감상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습니다.


그저,

아침 잠결에 들었던 두어 마디의 시어에,

쿵 하고

온 인생을 다 흔들어 놓는 그 감동이,

그 감각의 살아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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