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에 담긴 철학과 메시지의 이해 관점에서...
아침 의식을 치르듯 작업실로 들어와 혈압을 재고, 몸무게를 확인하고, 혈당을 측정하고 기록하고...
그 과정 중에 스포티파이는 늘 듣던 음악의 연관곡을 자동으로 재생합니다. 바로 그 순간,
레너드 코헨의 "송가"(Anthem)가 연주됩니다.
볼륨을 올리고, 잠시 멈춰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의식을 치르듯 샤워를 하고, 방 안에 향수도 뿌린 뒤, 의자에 좌정하여 그의 음악을 다시 듣습니다. 아마도 오늘은 종일 레너드 코헨을 들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인용하고, 해석하고, 평론해 온 그의 가사, 그러니까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그 구절을 읊조리면서 말입니다.
새들이 노래했지 동이 트는 순간에 / “다시 시작하라” 그들이 말하는 걸 나는 들었네
지나간 것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 머물러 있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지
아, 전쟁들은 또다시 벌어질 것이고 / 성스러운 비둘기는 다시 붙잡히겠지
사고팔리고 또다시 사고팔려 / 그 비둘기는 결코 자유롭지 않네
아직 울릴 수 있는 종들을 울려라 / 완벽한 제물은 잊어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어 /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우리는 표징을 구했고 표징들은 보내졌지 / 배신당한 탄생 소진된 결혼
그래, 모든 정부의 과부 됨이여 / 모두가 볼 수 있는 징표들이었지
나는 더 이상 그 무법한 무리와 / 함께 달릴 수 없네
높은 자리에 앉은 살인자들이 / 큰 소리로 기도하는 동안에
그들이 불러냈지 천둥구름을 / 그래, 불러냈어
이제 그들은 나로부터 응답을 듣게 될 거야
아직 울릴 수 있는 종들을 울려라 / 완벽한 제물은 잊어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어 /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부분들을 모두 더해도 전체는 얻지 못하리 / 행진을 시작해도 북소리는 없고
모든 심장, 모든 심장은 사랑을 향해 오지만 / 난민처럼 그렇게 다가오네
아직 울릴 수 있는 종들을 울려라 / 완벽한 제물은 잊어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어, 금이 /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
1.
끝없는 파열음을 내고 있는 균열의 시대를 위한 찬가이런가
1992년, 20세기가 그 황혼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어둡고도 예언적인 앨범인 The Future를 발표합니다. 냉전 종식과 소련의 붕괴, 베를린 장벽의 해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지각 변동 직후, 세계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낙관론과 새로운 형태의 무질서라는 비관론 사이에서 표류하던 시기였죠. 바로 이 시점에 등장한 수록곡 "Anthem"은 단순한 대중가요의 범주를 넘어, 무너져가는 문명과 상처 입은 개인을 위한 철학적 선언인 매니페스토이자 영적 생존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던 겁니다.
"Anthem"은 코헨의 창작혼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성(聖)과 속(俗)의 결합, 절망 속의 희망, 그리고 인간 조건의 근원적 불완전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는 평입니다. 특히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고,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든다(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라는 구절은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심오한 아포리즘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문학, 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는 겁니다.
레너드 코헨의 문학 작품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중요합니다. 1967년 데뷔 앨범인 《레너드 코헨의 노래들》 을 발표할 당시, 그는 이미 네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소설을 출간한 상태였습니다.
"
맥길 대학교 학생 시절, 코헨의 시적 재능은 그의 교수였던 캐나다 시인 어빙 레이턴과 루이스 두덱의 눈에 띄었고, 두 사람은 젊은 시인이 젊은 시절의 밀회 묘사에서 벗어나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표현하도록 이끌었다. 두덱은 1970년 위니펙 프리 프레스 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에게 그의 성생활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코헨은 "낄낄거리며" 자리를 떠났지만, 다음 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시 "참새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조숙한 재능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
하지만 이 텅 빈 하늘에
떠나간 여름새들의 정확한 흔적만이
여전히 옛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철새 이동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이 시는 후에 맥길 대학교에서 문학상을 받았으며, 맥길 대학교는 또한 코헨의 첫 시집인 1957년작 《신화들을 비교해 보자》 의 출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_ 그의 부고를 알리는 글 중에서
2.
1992년, 과연 그 시대가 어떠했길래
1990년대 초반은 전 지구적으로 기존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혼란이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자유 진영의 승리로 여겨졌으나, 그 이면에는 민족주의의 부활과 파편화된 분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코헨은 이러한 시대적 난류를 예민하게 포착했던 듯합니다. 특히 앨범 제작 기간 중 발생한 1992년 LA폭동은 코헨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주었다는 전언입니다.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이 폭동은 도시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고, 코헨은 자신의 집 창문을 통해 불타는 LA를 목격하며 묵시록적 비전을 구체화했다는 겁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 "The Future"에서 코헨은 "Give me back the Berlin wall, give me Stalin and St. Paul(베를린 장벽을 돌려줘, 스탈린과 사도 바울을 줘)"라고 절규합니다. 이는 과거의 독재나 억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 적과 아군의 구분이 명확했던 과거의 질서마저 그리워할 만큼 다가올 미래("It is murder")가 도덕적 공백과 혼돈으로 가득 찰 것임을 경고하는 역설적 표현이라는 것이죠(참고). "Anthem"은 이러한 절망적인 세계관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곡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The Future"가 파국을 맞이한 세계에 대한 냉소적인 진단서라면, "Anthem"은 그 폐허 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처방전이라 할 수 있겠다는 해석은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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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불행: 아들의 사고
"Anthem"의 깊은 영적 울림은 코헨 개인의 뼈아픈 비극과 맞닿아 있어 보입니다. The Future 앨범을 준비하던 중, 코헨의 아들 아담은 서인도 제도에서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4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는 생사의 기로에 있었답니다. 이 기간 동안 코헨은 모든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병상에서 아들을 간호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과 무력감은 코헨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었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설까요. "Anthem"의 도입부에서 반복되는 "Start again(다시 시작하라)"라는 구절은 단순한 희망의 메시지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아들이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던 아버지의 피 맺힌 다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죠. 코헨에게 있어 '균열(crack)'은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아들의 부서진 육체와 자신의 무너진 일상을 통해 체감한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시기 코헨은 레베카 드 모네이라는 여배우와 연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녀가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코헨의 어두운 서사에 대중적이고 세련된 음악적 질감을 부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3.
가사에 실린 그의 철학적 사유
"Anthem"의 가사는 유대교 카발라, 선불교, 그리고 기독교적 메타포가 정교하게 직조된 다층적인 철학적 구조물이라는 설이 유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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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선불교적 '마음챙김'과 '다시 시작하기'
The birds they sang at the break of day / Start again I heard them say
Don't dwell on what has passed away / Or what is yet to be
1절은 코헨이 오랫동안 수행해 온 린자이(Rinzai) 선불교의 영향을 짙게 드러낸다는 평가입니다. 새벽을 알리는 새들의 노래는 자연의 순환과 현재성을 상징했다는 겁니다. 새들은 어제에 대한 후회나 내일에 대한 불안 없이, 오직 해가 뜨는 그 순간에 집중하여 노래하기 때문이죠. 더불어 "Start again(다시 시작하라)"는 명령은 과거의 업(Karma)이나 트라우마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을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라는 '초심(Beginner's Mind)'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입니다.
참고) Rinzai 선불교는 일본의 주요한 선종 중 하나로, 중국의 린지(臨済) 선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종파는 주로 갑작스러운 깨달음, 즉 '켄쇼'(kensho)라고 불리는 경험을 강조합니다. Rinzai 선불교는 명상, 공안(公案) 연습, 그리고 스승과 제자 간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수행자들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도록 돕는 방법을 사용한다는군요.
코헨에게 있어 "지나간 것에 머무르지 말라(Don't dwell on what has passed away)"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건 아들의 사고와 같은 통제 불가능한 비극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죠. 과거를 바꿀 수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도 없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을 다시 시작하는 행위뿐임을 역설한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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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구: 카발라적 구원론
Ring the bells that still can ring / Forget your perfect offering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 That's how the light gets in
이 후렴구는 코헨 철학의 정수이자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로 보입니다. "완벽한 제물을 잊어라(Forget your perfect offering)"는 구절은 구약성서의 제사 전통을 전복시킵니다. 율법적으로 '흠 없는 제물'만을 요구했던 신은 이제 '부서지고 상한 심령'을 원하고 있는 것이죠. 당연히 이는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해방의 메시지이기도 한 듯합니다.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고, 그곳으로 빛이 들어온다"는 구절은 16세기 유대 신비주의자 이삭 루리아의 '그릇의 깨짐(Shevirat HaKelim)' 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는 설명인데...
루리아적 카발라에 따르면, 창조 시 신성한 빛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우주의 그릇들(vessels)은 그 빛의 강렬함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로 인해 신성한 빛의 파편(sparks)들이 세상의 온갖 깨어진 조각들 속에 흩어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참고) 이삭 루리아의 '그릇의 깨짐'(Shevirat HaKelim) 교리는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의 중요한 개념으로, 창조 과정에서 발생한 근본적인 파괴와 그로 인한 혼돈을 설명합니다. 루리아는 이 개념을 통해 신의 무한한 빛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깨져버린 사건을 묘사합니다.
루리아에 따르면, 하나님(아인 소프)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무한한 존재를 축소(tzimtzum)하여 빈 공간을 만들었답니다. 이 공간에 신의 빛이 담길 그릇(세피로트)이 만들어지는데, 그러나 이 그릇들은 신의 강력한 빛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다네요.
그릇이 깨지면서 생긴 조각들은 우주에 흩어졌고, 이로 인해 세상은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깨진 조각들은 신성의 빛을 담고 있었으며, 이 빛은 물질세계에 퍼져 나간 것이죠.
루리아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임무는 이 흩어진 신성의 조각들을 찾아내고 회복하는 것이랍니다. 이를 '티쿤'(Tikkun)이라고 하며, 우주적 회복을 의미한답니다. 인간은 선한 행동과 신의 계명을 통해 이 조각들을 재결합시켜 신의 완전한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
코헨은 이 신화를 빌려와, '깨짐'과 '균열'이 창조의 실패가 아니라 빛이 드러나기 위한 필연적 조건임을 주장합니다. 완벽하게 닫혀 있는 구조물(자아, 이념, 국가)에는 빛이 들어올 수 없는 것이죠. 오직 그것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길 때, 비로소 외부의 빛(신성, 진리, 타자의 사랑)이 내부로 침투할 수 있으며, 내면의 빛 또한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원리입니다. 코헨의 랍비였던 모데카이 핀리는 "당신이 부서졌다는 것을 모른다면, 당신은 신을 치유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불완전성 인식이 곧 신성 회복(Tikkun)의 시작임을 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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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사회상/인간상 비판
Ah the wars they will be fought again.
The holy dove she will be caught again.
Bought and sold and bought again / The dove is never free
"전쟁은 다시 일어날 것(The wars they will be fought again)"이라는 냉정한 인식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거부한다고 할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은 순환하며, 평화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위태롭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코헨은 평화와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자본과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포획되고 매매되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사고 팔리고 다시 사고', 결국 그 거룩한 비둘기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시인의 노래는, 신약성서 마가복음 11장 15-16절의 성전 정화 즉, 인간의 탐욕과 폭력성에 대한 메시지의 메타포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마가복음 11:15-16,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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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정치적 비판
The widowhood of every single government / Signs for all to see
3절의 "모든 정부의 과부하(The widowhood of every single government)"라는 표현은 매우 난해하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은유로 보입니다. '과부하'는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이나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배우자와 결합되어 있지 않고 홀로 고립된 상태, 즉 권력의 정통성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있는 살인자들(Killers in high places)이 올리는 기도와 같은 위선적인 상황 속에서, 코헨은 "무법한 무리"와 결별을 선언하며 제도권 밖의 예언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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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드럼 소리도 없는 난민의 행진, 그러나 희망과 사랑을 향하여
You can strike up the march, there is no drum
Every heart, every heart to love will come / But like a refugee
마지막 절에서 코헨은 행동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영웅적인 개선 행진은 아닙니다. 드럼도 없는 난민들의 행진인 것입니다. 이는 쇠락해 가는 육체, 불완전한 예술, 혹은 망가진 신념 체계를 상징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코헨은 바로 모든 마음으로 그 행진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올거라면서 말입니다.
그 행진의 목적지는 '사랑'이겠죠. 모든 마음은 결국 사랑(구원, 신)에게로 돌아오는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돌아가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자가 아니라 "난민(refugee)"처럼 돌아갑니다. 모든 것을 잃고, 지치고, 상처 입은 상태로, 오직 받아주기를 간청하는 겸손한 자세로 사랑 앞에 서는 것. 이것이 코헨이 제시하는 인간의 실존적 초상인 것입니다. 난민의 메타포는 현대 사회의 가장 소외된 존재를 영적 순례자의 지위로 격상시키며 깊은 휴머니즘을 드러낸다는 해석입니다.
5.
The Future 앨범 내에서 "Anthem"은 다른 곡들과 긴밀한 대화 관계를 형성하는 듯 보입니다. 코헨의 음악성이 지속적으로 연계되고 확장되는 것으로 보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지점일 것입니다.
특히 "Hallelujah"(1984)와의 비교는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두 곡 모두 '부서짐'을 다루지만, "Hallelujah"가 다윗 왕과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욕망과 신성의 충돌을 그렸다면, "Anthem"은 이를 더욱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Hallelujah"의 '차갑고 부서진 할렐루야(Cold and broken Hallelujah)'는 "Anthem"의 '균열(a crack)'과 정확히 대응하며, 코헨의 일관된 '상처의 신학'을 완성한다고 할 것입니다.
6.
부러지고 균열 간 세상을 위한 기도
레너드 코헨의 "Anthem"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수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도, 값싼 낙관으로 덮어버리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는 고통의 한가운데로 정면 돌파하듯 걸어 들어가, 바로 그 균열이야말로 빛이 스며드는 통로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회피가 아니라 응시, 위로가 아니라 통과를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이 곡이 우리에게 남기는 통찰은 분명합니다.
첫째, 완벽주의의 허상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부서짐 자체가 이미 신성함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균열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입니다.
둘째, 현재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과거의 실패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공포에 사로잡히기보다, 매일 아침 새들처럼 다시 시작하라는 요청입니다.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서만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셋째,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난민처럼 불안정한 존재들이며, 각자 제각기 ‘부서진 북’을 품은 채 사랑을 향해 행진합니다. 완전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이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합니다.
1992년, 묵시록적 세계 인식 속에서 태어난 "Anthem"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조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 오늘의 세계에서 그 울림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코헨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종을 울려라(Ring the bells)”라는 주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 한가운데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용기를 우리에게 건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그 부서진 북을 두드려야 합니다. 빛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숨기고 싶어 했던 바로 그 균열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