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정리

노년(老年)의 현상학과 '네 가지 L'의 철학적 함의

오트프리트 회페의 《노년의 기술》

by KEN

2018년이었습니다. 막 발간된 마사 누스바움과 솔 레브모어가 ‘나이 듦’을 주제로 주고받은 대담 형식의 에세이집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을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실망이었습니다.


이미 상당한 부와 명성을 획득한 사람들의 위치에서 노년의 우정, 나이 듦, 사랑, 그리고 빈곤 문제 등을 논하는 방식이, 제게는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들만의 놀이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다소 프랙티컬 하지 않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그리고 독자인 제 삶의 조건과 위치 역시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텍스트를 바라보는 제 관점 역시 변했음을 느낍니다.


그럴지라도,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내용을 검토해보고 싶었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서 상황을 진단해 보고 싶었던 겁니다.



마침 오트프리트 회페의 이 책 《노년의 기술》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접근을 하고 있더군요.


특히 그가 주창하는 '잘 늙는 법을 위한 네 가지 L''어떤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앎의 기쁨 그 자체를 누리기 위한 행위로써의 배움'에 대한 권유는 무척 흥미로운 전개입니다.


"더 이상 경탄할 수 없는 자가 늙은 것이다." -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의 말을 인용


아울러, 치매와 같은 치명적 병을 대비한 연명치료에 대한 사전 의사결정 등과 관련하여 "과거의 이성적인 자아가 미래의 병든 자아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치명적 질문을 통해 그 문제를 숙고하게 만든 시도는 너무나도 유익한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 마사 누스바움이 다뤘던 키케로의 《나이 듦에 관하여》를 사실은 회페가 먼저 다뤘었다는 점을 발견한 것 또한 재미있는 포인트 중의 하나였습니다.


21세기의 문명사적 전환점은 기술 발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구 구조의 근본적인 변동에서도 비롯된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약 160여 년 동안 인류의 평균 기대수명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증가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분명 의학의 진보이자, 위생과 영양 상태 개선이 거둔 중요한 성취입니다.

스크린샷 2026-01-23 오후 8.16.37.png Our World in Data 사이트, “Life Expectancy”


그런데 문제는, 이 성취가 현대 사회의 담론 장에서는 종종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나 ‘위기’로 호명된다는 점입니다. 미디어와 정책 입안자들은 관성적으로 ‘고령화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늘어난 수명을 곧바로 연금 고갈, 의료비 급증, 경제적 활력 저하와 같은 부정적 지표들과 연결합니다. 그 결과 노년층은 사회가 축적한 자산이 아니라, 마치 젊은 세대의 미래를 잠식하는 ‘비용 요인’으로 대상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독일의 철학자 오트프리트 회페는 그의 저서 《노년의 기술》—원제 Die hohe Kunst des Alterns: Kleine Philosophie des guten Lebens—에서, 앞서 말씀드린 이러한 부정적 담론, 다시 말해 ‘위협의 배경’이라는 프레임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회페는 인구 고령화를 사회적 몰락의 징후로 읽는 시각 자체를 분명하게 거부합니다. 대신 그는 이를 ‘얻어진 세월’이라는, 훨씬 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관점으로 재정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회페에게 수명의 연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쟁취한 ‘상당한 성공’인 것입니다. 문제는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철학적 준비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노년을 여전히 청춘의 상실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실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시선 속에서 노인은 사회적 경험과 성찰을 축적한 존재가 아니라, 경제적 효용을 다한 잉여 존재로 쉽게 격하됩니다. 따라서 회페의 기획은 단순한 위로나 처방의 에세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노년의 고유한 가치를 회복하고, 오직 그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의 기술’을 사유하려는, 분명한 실존적 철학 프로젝트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서양 철학을 살펴보면, ‘잘 사는 법(Ars Vivendi, 아르스 비벤디)’과 ‘잘 죽는 법(Ars Moriendi, 아르스 모리엔디)’에 대한 논의는 매우 풍부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잘 늙는 법(Ars Senescendi, 아르스 세넨센디)’에 대한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트프리트 회페의 문제 제기가 시작됩니다.


회페는 노년을 수동적으로 닥쳐오는 운명이나, 단순한 생물학적 쇠퇴 과정으로 환원하는 의학적 모델을 분명히 거부합니다. 대신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노년은 배워야 한다(Altern will gelernt sein).” 즉 노년은 자연히 ‘당해지는’ 시기가 아니라, 주체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형성해 가야 할 능동적인 생의 주기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잘 늙는 것’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통찰에 기반합니다. 젊음이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면, 품위 있는 노년은 예술 작품과 같은 하나의 ‘성취’라는 말이지요.


회페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네 가지 기둥, 이른바 ‘네 가지 L’, 곧 Laufen(움직이기), Lernen(배우기), Lieben(사랑하기), Lachen(웃기)를 제시합니다. 그는 이 네 가지 실천을 통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정서적 자본이 축적되며, 바로 이 축적이 노년의 삶을 공허한 소진이 아니라, 밀도 있는 삶의 단계로 전환시킨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책의 내용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말입니다.



오트프리트 회페의 《노년의 기술에 나타난 실존적 노년학


1. 노년을 바라보는 관점


3단계 생애 모델의 한계와 '노년 단계 노동'의 재해석

산업화된 근대 사회는 인간의 생애를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명확한 세 단계로 구분해 왔습니다.

첫째는 교육과 학습의 단계, 곧 유년기와 청년기입니다. 미래의 노동력을 준비하는 시기이지요.

둘째는 노동과 생산의 단계, 장년기입니다. 사회적 생산과 부양의 책임이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은퇴와 휴식의 단계, 노년기입니다. 이 단계에서 개인은 노동으로부터 물러나 소비의 주체로만 남게 됩니다.


오트프리트 회페는 바로 이러한 기계적인 삼단계 구분이 노년을 사회적 생산성으로부터 단절시키고, 노인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은퇴가 모든 노동과 학습을 한순간에 중단하는 ‘단절’의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대신 회페는 노년기에도 학습(Lernen)과 노동(Arbeiten)이 지속적으로 통합되는, 보다 유연한 생애 모델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노년의 ‘노동’은 생존을 위해 강제되는 임금 노동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소명(Beruf)을 쫓는 활동이며, 마음과 영혼이 담긴 의미 있는 행위로써의 노동입니다.


회페는 교수나 교사와 같은 직종을 예로 들며, 완전한 은퇴 대신 노동 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은 사회적 역할을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사회는 노년이 축적한 지혜와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순환시킬 수 있습니다. 동시에 노인 개인에게도 이러한 방식은 삶의 활력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스크린샷 2026-01-23 오후 9.06.02.png 생애 모델의 비교

'세대 간 전쟁' 프레임의 거부

회페는 현대 사회가 노인과 돌봄 노동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언어 자체를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그는 이를 ‘공허한 경제적 언어’라고 평가합니다. 예컨대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서 이른바 ‘효율성 협약’이라는 이름 아래 비용 절감을 강요하거나 인력을 감축하는 조치를, ‘중복 제거’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화법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요양 보호 인력과 노인은 존엄한 인간이 아닌, 관리하고 줄여야 할 '비용 요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겁니다.


더 나아가 회페는 일부 미디어와 젊은 세대가 제기하는 ‘세대 간 형평성’ 논쟁이 자칫 노인 혐오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롤레이터 세대여, 나의 유럽을 망치지 말아 다오(Liebe Generation Rollator, macht mir mein Europa nicht kaputt)”와 같은 즉 바퀴 달린 보행보조기의 롤레이터를 사용하는 세대라는 자극적인 표현은, 노인 세대를 마치 젊은 세대의 기회를 빼앗는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회페는 이러한 갈등 조장 프레임이 세대 간의 연대를 파괴하고 사회적 신뢰 자본을 훼손한다고 봅니다. 그는 노년층이 축적한 자본과 경험이 사회 전체의 자산임을 강조하며, 노인을 짐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노년에 대한 관점: '황금률'을 생각해야

회페의 철학은 개인적인 차원의 수양론(修養論)에 머물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 윤리로 확장됩니다. 그는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성경의 황금률을 노년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다음과 같은 '노년의 사회윤리'를 정식화합니다.


"네가 아이였을 때 원치 않았던 일은, 이제는 어떤 노인에게도 하지 말라!" (Was du als Kind nicht willst, das man dir tu, das füg auch keinem Älteren zu!)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31)
“사람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하되, 단순한 수단으로는 대하지 말라.” (칸트의 정언명령)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윤리적 함의를 지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미성숙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거나, 그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대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노인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졌다고 해서 그들을 어린아이 취급하거나 자율성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양 시설이나 병원에서의 돌봄 과정에서 노인의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침이 되는 것이죠. 노인은 보호의 대상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취약함이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회페의 이러한 윤리는 레비나스(Levinas)가 말한 '타자의 얼굴'에 대한 책임과 맥을 같이 하며, 노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임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2. 네 가지 L (Die vier L)의 심층 분석


회페는 노년의 쇠약함에 맞서 삶의 질을 유지하며, 더 나아가 실존적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네 가지 L'을 제시합니다. 이는 Laufen(걷기/운동), Lernen(학습), Lieben(사랑/사회적 관계), Lachen(웃음/유머)입니다. 이 네 가지 활동은 단순히 여가 시간을 보내는 소일거리가 아니라, 노화에 저항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수행(Askesis)이자 자본 축적의 과정입니다.


Laufen(걷기, 라우펜) — 신체적 자본(Körperliches Kapital): 존재의 확인

첫 번째 'L'인 'Laufen'은 문자 그대로 걷기, 달리기, 또는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이는 단순한 건강 관리 차원을 넘어섭니다. 걷기는 인간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확인하고, 세상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입니다. 노화는 필연적으로 신체의 위축과 운동 능력의 저하를 가져오죠. 이에 대항하여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공간을 점유하고 이동할 수 있다는 '자유'의 선언인 것입니다.


회페는 규칙적인 운동이 '노년의 쇠약함'을 지연시키고, 이를 먼 미래로 밀어내는(시간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의학적으로는 근육 감소와 심폐 기능 저하를 막는 것이지만, 실존적으로는 타인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자립성(Autonomie)의 물질적 토대를 구축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회페는 운동과 정신 활동의 불가분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Peripatetiker)를 소환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걸으면서 사유하고 토론했다. 이는 신체의 움직임이 뇌를 자극하고 사고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는 통찰에 기반한 행동입니다.


현대 뇌과학이 입증했듯이, 걷기는 뇌의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신경 가소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회페에게 있어 몸이 굳으면 생각도 굳는다는 것은 철학적 직관이자 경험적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Laufen'은 단순히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었던 것이죠. 또한,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기 입법'의 실천입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걷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무너져가는 생체 리듬에 질서를 부여하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효능감을 제공하게 된다는 겁니다.


Lernen(학습, 레른) — 정신적 자본(Geistiges Kapital): 노년에도 뇌의 가소성은 유지되기에...

두 번째 'L'인 'Lernen'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배움을 의미합니다. 회페는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다"는 통념에 반대합니다. 그는 현대 과학의 성과를 근거로, 뇌는 노년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다만 회페가 말하는 학습은 학교 교육과 같은 제도적 학습이나, 취업과 성과를 목표로 한 도구적 학습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그것은 외적 효용을 겨냥한 학습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적 가치를 지닌 배움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역사책을 읽고, 악기를 익히는 일은 어떤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앎의 기쁨 그 자체를 누리기 위한 행위입니다.


회페에 따르면 이러한 ‘자기 목적적 학습’은 노년의 삶을 밀도 있게 만들고, 노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인 권태를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겁니다.


학습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잃는 순간 정신의 노화는 시작됩니다. 회페는 노년기에도 새로운 지적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정신적 경직성을 예방하고 '정신적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더 나아가, 노년의 학습은 외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통합하는 성찰적 활동으로 심화됩니다. 회페는 마사 누스바움의 앞선 책에서의 견해를 빌려 "나이 듦은 경험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서전을 쓰거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행위는 파편화된 기억을 통합하여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고도의 지적 작업인 것이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노인은 단순한 '늙은이'가 아닌 '지혜로운 원로'로서의 권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키케로가 말한, 백발이나 주름이 아니라 인격과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권위와 일맥상통한 해석입니다.


Lieben(사랑, 리벤) — 사회적 자본(Soziales Kapital)

세 번째 'L'인 'Lieben'은 낭만적 사랑(Eros)에 국한되지 않고, 타인과의 폭넓은 유대, 우정(Philia), 사회적 참여, 그리고 돌봄(Caritas)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입니다. 노년기의 가장 큰 실존적 위협 중 하나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입니다. 은퇴는 직장 동료와의 단절을 가져오고, 배우자나 친구의 사별은 관계망의 축소를 초래합니다.


회페는 이에 대항하여 의식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고 확장할 것을 주문합니다. 자발적인 봉사 활동, 시민 단체 참여, 동호회 활동, 혹은 가족 및 이웃과의 교류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며, 위기 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Zoon Politikon)이며, 이는 노년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인 것입니다.


회페의 'Lieben'은 동년배에 머물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는 교류를 지향합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노인에게 새로운 감각과 시대 흐름을 불어넣고, 젊은이들에게는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수정된 황금률'이 실현되는 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회페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는 능력을 강조합니다. 노년의 사랑은 자기 자신에게만 함몰되기 쉬운 노화의 자기중심적 경향성을 거스르고, 타자를 향해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윤리적 실천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노인은 사회의 짐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서적 결속을 다지는 구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Lachen(웃음, 라헨) — 정서적 자본(Emotionales Kapital)

네 번째 'L'인 'Lachen'은 웃음, 유머, 그리고 명랑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회페의 철학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평가입니다. 노년은 필연적으로 상실(건강, 지위, 관계)과 기능 저하를 동반하죠. 이때 유머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견디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자,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게 하는 초월적 힘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나 쇠약을 비관하는 대신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높은 수준의 정신적 성숙을 의미합니다. 이는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평정심(Ataraxia)과 맞닿아 있으며, 삶의 부조리와 모순을 웃음으로 껴안는 니체적 긍정과도 연결됩니다.


스크린샷 2026-01-23 오후 10.52.36.png 회페의 '네 가지 L'과 자본 유형 (요약)


회페는 독일의 시인 횔덜린(Hölderlin)의 시 〈저녁의 환상(Abendphantasie)〉에 나오는 "평온하고 밝은(friedlich und heiter)" 노년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합니다. 청춘의 격정과 불안, 야망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서는 고요한 밝음은 노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밝음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유한성을 긍정하고 불필요한 집착을 놓아버리는(Gelassenheit) 내면의 수행을 통해 획득됩니다. 잘 웃는 노인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며,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는 고립을 막는 강력한 '정서적 자본'이 됩니다. 반면, 불평과 분노로 가득 찬 노년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따라서 'Lachen'은 평온한 관계와 삶의 만족을 위한 핵심 전략인 것입니다.


저녁의 환상(Abendphantasie) _ 횔덜린(Hölderlin)
오두막 앞 그늘 속에 고요히 앉아 소박한 쟁기꾼, 그의 난로엔 연기가 오르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저녁 종소리, 나그네를 맞이하듯 울려 퍼진다.

이제 뱃사람들도 항구로 돌아오고, 먼 도시들에서는 시장의 분주한 소음이 즐겁게 사라지며,
고요한 정자에서는 벗들의 우정 어린 식탁이 빛난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보수와 노동 속에 살며, 수고와 쉼이 교차하는 삶 속에서 모든 것은 기쁘게 순환하는데
— 왜 나의 가슴에만 잠들지 않는 가시 하나가 박혀 있는가?

저녁 하늘에는 봄이 피어나고, 무수한 장미가 만개하며 황금빛 세계는 고요히 빛난다.
아, 나를 데려가다오, 자줏빛 구름들이여, 그곳으로!
그리고 저 위의 빛과 공기 속에서 사랑도 고통도 내게서 녹아 사라지게 하소서!

그러나 어리석은 소원에 쫓기듯 그 마법은 달아나고, 어둠이 내려앉아 나는 언제나처럼,
하늘 아래 홀로 남는다.

이제 오라, 부드러운 잠이여!
심장은 너무 많은 것을 원했으나, 마침내, 청춘이여, 너 또한 사그라들고 말겠지
—그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몽상적인 불꽃이여!
그 뒤에는
평온하고 밝은 노년이 오리라.



3. 철학적 계보학: 고대 지혜의 현대적 변용


회페의 노년 철학은 현대적인 자기계발서의 조언이 아니라, 서양 철학사의 유구한 전통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특히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와 세네카, 그리고 근대의 몽테뉴 등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그들의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합니다.


키케로의 《나이듦에 관하여(De Senectute)와 활동적 노년

회페의 '네 가지 L'은 사실상 키케로가 제시한 노년의 옹호 논리를 현대적으로 구조화한 것입니다. 키케로는 노년이 비참하다는 네 가지 통념(활동 배제, 체력 저하, 쾌락 상실, 죽음의 임박)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 활동의 지속: 키케로가 나이가 들어서도 농사를 짓거나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는 노인을 찬양했듯이, 회페는 'Laufen'과 'Lernen'을 통해 활동적 노년을 계승합니다.

- 권위: 키케로는 노년의 아름다움이 육체적 매력이 아닌, 존경받는 권위에서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회페는 이를 타인에 대한 책임과 'Lieben'으로 연결하며, 존경받는 노년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와 시간의 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은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낭비하기 때문에 짧게 느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회페가 말하는 '얻어진 세월'의 개념적 뿌리가 됩니다. 회페는 단순히 생물학적 수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의미 있게 채우느냐(Qualität)라고 강조합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짧은 것이며, 의미로 충만한 시간은 비록 짧아도 긴 것이라는 겁니다.


몽테뉴와 죽음의 수용 (Ars Moriendi)

몽테뉴의 "철학함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명제는 회페의 책 전반을 관통하는 또 다른 주제입니다. 회페에게 있어 노년의 학습(Lernen)은 결국 잘 죽기 위한 준비(Ars Moriendi)를 포함한 것입니다. 죽음을 금기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노년의 기술'을 위한 선결 조건인 것입니다. 회페는 몽테뉴의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Semper paratus)"는 조언을 받아들여,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과제로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4. 노년학적 딜레마와 죽음의 기술


자율성과 존엄: 발터 옌스의 사례

회페는 철학적 논의를 넘어 요양, 의료, 법적인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딜레마 또한 다룹니다. 특히 치매나 중증 질환으로 인해 자율성을 상실한 노인의 존엄성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합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저명한 수사학자였던 발터 옌스의 사례를 통해 치매와 안락사 문제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발터 옌스는 건강할 때 "정신적 명료함을 잃으면 삶을 끝내고 싶다"고 공언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치매가 발병한 후, 그는 소박한 현재의 삶(예: 농장의 소를 구경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이 지점에서 회페는 묻습니다. "과거의 이성적인 자아가 미래의 병든 자아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회페는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합니다. 그는 "어떤 인간도 타인에게 '너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할 권리가 없으며, 이는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와 같은 기계적인 문서가 노인의 현재 상태와 행복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회페는 치매 환자의 '식물적 감성'조차도 삶의 한 형태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들의 현재적 안녕이 과거의 선언보다 우선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타진합니다.


좋은 죽음을 위한 7가지 전략

회페는 '좋은 삶'의 완성을 위해 '좋은 죽음'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적 죽음관보다는, 죽음을 삶의 서사를 완성하는 마침표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대 철학의 지혜를 빌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7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삶과 죽음의 일치: 좋은 삶을 위한 노력과 좋은 죽음을 위한 노력은 본질적으로 같다.
불멸의 수용: 개인의 생물학적 불멸이 아닌, 업적이나 자손, 혹은 타인의 기억 속에 남는 사회적 불멸을 받아들인다.
준비된 태도: 죽음이 언제 닥치더라도 후회 없도록 항상 준비하는 자세(Mors certa, hora incerta).
자기 객관화: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완화한다.
통합: 삶의 고통과 불행까지도 전체 삶의 일부로 통합하여 받아들인다.
평정심: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는다.
희망: 평온한 죽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5. 결론: 노년, 쇠락이 아닌 완성의 시간


오트프리트 회페의 《노년의 기술》은 노년을 결핍과 상실의 시기로 규정하는 현대 사회의 편견에 맞서, 노년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를 철학적으로 복권시킵니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L'—Laufen, Lernen, Lieben, Lachen—은 단순한 건강 수칙이 아니라, 노년이라는 항해를 위한 네 개의 닻이자 돛입니다.

이들을 통해 축적된 신체적(Physical), 정신적(Mental), 사회적(Social), 정서적(Emotional) 자본노인 개인에게는 안녕을, 사회적으로는 성숙과 지혜를 제공합니다. 회페는 노년이 청춘의 모조품이 되려 애쓰는 시기가 아니라, 노년만의 고유한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는 시기여야 함을 역설합니다.


아울러 회페는 노년의 삶을 개인의 노력(네 가지 L의 실천)에 상당 부분 맡기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노인이 존엄하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와, 무엇보다 노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윤리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얻어진 세월을 축복으로 만들 것인가, 저주로 만들 것인가?" 회페는 그 답이 우리 자신의 태도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문화 속에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이 책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냉소적인 시대에, '노인을 위한 철학'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다시금 묻는 중후한 인문학적 답변인 것입니다.




[참고자료]

1. Die hohe Kunst des Alterns: Kleine Philosophie des guten Lebens; by Otfried Höffe, 2019.

2. 저자의 유튜브 대담 참조: https://youtu.be/qYJaEHlAOBI?si=buE_VaJ5g8VnKm6K

오트프리트 회페와 방송인 노르베르트 요아의 대담, <노년(나이 듦)의 기술>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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